[언어가 삶이 될 때]- 김미소
언어를 쓰는 삶. 그 길을 이야기할 것 같아 인연을 만든 책이다. 오래 걸어온 길이 타성을 만들기도 한다. 그 익숙함의 길에서 살짝 벗어나 다른 형태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저자의 책을 보며 가볍고 산뜻하게 언어의 길을 걸어온 느낌이 든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해서 20살이 된 그녀는 미국에서 5년간 박사 과정 전액 학비 지원뿐만 아니라 약간의 생활비까지 받았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주 20시간 근무는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2학기 동안 작문 수업을 해야 하는 그 큰 부담이 그녀를 더욱 성장시킨 것 같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고 했는데 , 책이 당시의 당혹스럽고 어려웠던 일화를 말하지만, 그녀를 키우기 위한 신이 주신 선물 같다.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마치 창가에 둔 화분에서 막 자란 새싹이 자신의 푸릇푸릇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느끼는 그 감정과 비슷하다.
졸업 후 일본의 한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지만 그녀의 나이는 28살. 영어를 잘하는 나이 어린 한국인 영어 교수. 학생들과 같이 있으면 누가 교수인지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영어는 잘하지만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또다시 밀려드는 언어의 장벽을 슬기롭게 하나씩 헤쳐나가는 그녀는 작은 거인 같다. 외국어 학습을 책이 아닌 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일본어를 못하는 외국인으로서 코로나 시절 그 답답한 기간을 나름 잘 살아낸 그녀는 강한 사람이다. 일본어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일본어로 영어를 강의해야 하는 상황은 마치 미국에서 영작문을 가르쳐야 하는 그 난감한 상황과 잘 매치가 된다. 그러한 상황이 그녀를 성장하게 만든 재료가 된 것 같다.
세계화의 끝과 끝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은 생각의 각도를 바꿔준다. 비즈니스 센터와 해외 대학교 캠퍼스가 있는 송도는 세계화의 밝은 면이다. 반면, 외국인 노동자, 공장, 저임금 단어가 연상되는 안산은 세계화의 어두운 면이다. 세계 곳곳에서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렇게 흑과 백처럼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친다. 좋은 것 만 취할 수 없다. 삶이란 이렇게 다양한 색채가 어우러질 때 그 고유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나는 건 아닐까.
‘선을 긋다 보면 좁아지는 건 나의 세계일 뿐이다.’ 저자의 말 중 가장 인상에 남는 표현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편견의 선으로 자신만의 작은 세계에 갇힐 수도 있다. 언어를 배우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고 해서 성인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아이보다 더 어렵다는 편견을 내려놔도 된다고 한다. 성인은 아이보다 습득 속도가 빠를 수 있고, 언어를 통해 쌓아 온 경험이 능숙도에 더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언어와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 더 값진 것이다.
지식 소비자에서 지식 생산자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로 명료하게 글을 쓰는 능력이 필수 라고 한다. 가끔 영어로 조금씩 글을 쓰지만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인데, 조금 더 빈번한 양을 생활 속에 쏟아 넣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생각을 더 간결하게 명료하게 쓰는 연습이 쓰기의 기본이라는 말은 도움이 된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특정 한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은 언어에서 더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매일 성장과 변화를 갖는 영어를 한 손안에 움켜쥐는 게 쉽지 않음을 알 것 같다. ‘학술 글쓰기는 그 누구의 모국어도 아니다.’
‘제2 언어를 가르치는 일은 학생들의 세계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제2 언어 세계를 함께 지어가는 과정이다.’ 저자의 말을 통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마음가짐을 배운다. ‘나 스스로 언어와 함께 정체성을 빛어가는 것이다.’ 모국어 외에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자신의 고유 정체성을 더욱 밝혀 줄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할 것 같다.
영어를 제1 언어로 쓰는 사람보다 싱가포르이나 인도처럼 제2 언어로 쓰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한다. 영어를 단지 제1언어인 백인과 대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대화하기 위해서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이 외국에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영어로 이야기하는 분이기가 지금 시대다.
‘영어를 배운다는 건 전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익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문화와 충돌하고 서로의 문화에 균열을 내며 세계를 넓혀가는 일이기도 하다.’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나의 시선으로 언어와 문화를 직접 보기 위한 것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마음에 든다.
인류학 개념인 ‘리미널리티 liminality’라는 의미가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A 그룹도 아니고, B 그룹도 아닌 문턱에 있는 시대를 의미하는 용어를 소개하는데 마치 저자의 상황을 보여 주는 것 같다. 하나의 언어 외에 다른 언어 및 의사소통지원과 엮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초언어 하기 Translanguagin’ 능력은 그럼에도 시대의 필수 능력이 되는 것 같다.
‘생각은 말로 변형되어 가면서 재구성된다’라는 인용글과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라는 비트게인 슈타인의 말은 책의 주제와 잘 맞는 것 같다.
분명히 똑같은 생각인데 한국어로 말할 때와 영어로 말할 때 그 표현 방식과 규칙이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한국어로 말할 때와 영어로 말할 때의 내 모습이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곤 했었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식이 뚜렷해진다.
중국어, 영어, 일어, 한국어가 저자의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저자의 성장이 기대가 된다. 그녀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빠의 제혼으로 같이 살고 있는 베트남 언니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는 세계곳곳 어디든 원하는 곳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어낼 힘이 저자 안에 있음이 보인다. 복잡해 보일 수 있는 가족사의 해석력도 명쾌하다. 삶은 해석자에 따라 그 내용이 가치가 달라지는데 그녀는 이미 자신만의 해석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 삶을 각기 다른 언어로 규정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작은 거인의 꿈틀거림에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