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모든 여행의 여행]- 김민철

by 조윤효

기서 복할 것’이 여행이라는 그 누군가의 인용글이 가장 인상 깊은 책이다. 경험을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발휘하기도 한다.

행복을 향한 몸짓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여행 말고 또 있을까’ 그녀의 시작글이 눈에 들어온다. 여행이라는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정의 내릴 수 있어야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걸어 다니는 독서로 생각한 적도 있었고, 일상을 벗어나 타인으로 살아가는 체험으로도 생각했었다. 저자의 책은 매일 여행하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는 카피 라이터의 글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을 보는 눈이나 경험들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책은 여행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일상을 떠나 일상에 도착하는 여행, 일요일이 있는 여행, 단골집을 향해 떠나는 여행, 마법의 질문을 가지는 여행, 한 가지를 위해 떠나는 여행, 선입견을 내려놓고 떠나는 여행 등 무수한 여행법을 소개한다. 세계 각국의 여행, 국내 여행 그리고 제2의 고향이 된 서울 망원동에 대한 이야기는 갈수록 깊어지는 가을 단풍 같다. 재미로 읽다가 잔잔한 감동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책이다. 책들 사이사이 소개해 주는 여행에서 만나는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들도 따스하다. 그녀 혼자만이 본 이탈리아 ‘피엔자’ 사진은 몽환적이다. 자연과 오로시 자신만이 가진 그 비밀스러운 장면은 평생 간직할 수 있는 보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조용하게 써 내려간 시들은 그녀가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 진한 육수처럼.


사는 시간과 삶을 증언하는 시간을 따로 가져야 한다는 알뵈르 까뮈의 인용글도 여행과 일상의 경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증언하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여행을 가면 마음이 바빠지는 경우가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 때문이리라.

평일만 있는 일상이 잔인한 것처럼, 열심히 여행한 순간만이 가득한 여행도 잔인한 것이었다.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했다.’ 여행지에서 한낮을 숙소에서 느긋하게 엿가락 늘어지듯 시간을 보낸 자기변명의 최고 표현이다.


렘브란트 자화상을 보기 위한 여행도 기억에 남는다. 화가가 추하고 비굴해 보이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낸 이유가 저자처럼 궁금해진다. 쾰른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 사진이 직접 보고 싶다. 그림 속에 조용히 응시하는 또 다른 인물은 죽음을 상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이라는 커다란 명제 앞에서는 그 어떤 성공도 업적도 그저 내려놓아야 함을 렘브란트는 알고 있었을 것 같다.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남들과 상관없이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것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저자가의 조용한 외침이 큰 울림이 된다. 여행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눈과 귀 특히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 자기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어 보는 여행이 저자의 여행 같다. 닮고 싶은 여행법이다.

지금을 남김없이 살아 버리는 것, 다시없을 지금, 여기 다시없을 내가 있다.’ 그녀의 여행은 내면과의 독백이다.


‘큰 도시에서의 행운은 늘 모자라지만, 작은 마을에서의 행운은 밤늦도록 말할 수 있다.’ 유명하고 알려진 여행지가 아니라, 일상을 담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오히려 귀를 쫑긋 하게 만든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아닌 시골 한적한 곳의 삶을 눈으로 보고 현지 인들이 베푸는 작은 친절에 감동을 얻는 장면이 어떤 명화보다 감동적이다.


‘여행은 기어이 나를 또 다른 나에게로 데려가는데...’ 여운이 남는 글이다. 여행을 통해 만나는 자신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은 저자의 독서와 사색의 힘일 것이다.

‘여행이 내게 일상의 리듬을 가르친다.’ 여행을 통해 일상의 리듬도 변한다. 매일 여행하듯이 일상을 맞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사실 우리가 만나는 하루하루는 평생의 한번뿐이니 새롭지 않은 날이 없다. 여행자의 눈으로 익숙한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해 주는 게 여행이다.


때로는 여행을 떠나와 누군가의 일상이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위로가 될 때가 있다.’ 프랑스 여행 중 취미로 나무 공예에 몰두되어 있는 노년의 할아버지를 묘사한 말이다. 오전에서는 포도밭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나무 조각을 하는 삶을 쉼 없이 걸어온 할아버지는 분명 자신의 일상을 여행자에게 선물하고 있다. 수년동안 똑같은 일을 이어나가는 과정이 처음 만나는 누군가에는 삶의 무게와 세월의 무게를 알려 주기도 한다.


‘어떤 희망은 의무다.’ ‘당신에게 삶이란 무엇입니까?’ 내란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스리랑카의 아이들. 저자가 건네어준 풍선으로 맘껏 행복한 빛을 발산하는 아이들을 보고 느끼는 저자의 말들이 차곡 차곡 쌓인다.

햇빛 알레르기로 인해 겨울 여행을 많이 한 그녀는 오히려, 여행자들이 적어 혼자만의 사색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삶은 찬란한데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가끔 싶게 잊는다. 여행이라는 잠깐의 이탈들이 일상을 더욱 빛나게 할 것 같다. 여기서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기 위해 여행을 종종 해야겠다. 그녀의 여행은 결국, 다른 환경에서 만나는 자신과의 조우를 위한 작은 몸짓이다. 글들에서 우러나는 그녀의 사색들이 여행지의 사진들과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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