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윤효 Feb 16. 2024

하루 한 권 독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최은희

삶의 수레바퀴를 타고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바퀴에 잔뜩 낀 욕심으로 더 이상 나갈 힘이 없을 때가 있다. 그 찌든 때를 닦아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일독한 책이다. 마음이 다시 가벼워지고 산뜻해진다. 책을 읽으며 느리게 읽기 열풍을 일으킨 일본인 교사의 책 ‘은수저’가 떠올랐고, 여고 시절 감동을 주었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이 떠올랐다. 


 시적인 표현과 시골 학교 아이들의 일상을 표현한 사실적 표현들이 마치 한 겨울 군고구마와 동치미처럼 잘 어울린다. 책에도 마음이 있다면 저자의 책은 한겨울 가슴에 품어도 될 만큼 따뜻하다. 욕심으로 마음의 창이 더러워져 있다면, 이 책은 그 창을 닦아주는 도구가 될 것이다. 산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저자는 겨울이면 문풍지 사이로 솔솔 들어오는 바람과 함께 세 자매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들었다.  무엇인가 완벽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에서 원하면 어떤 곳으로도 그녀를 데려다주는 상상의 세계를 만났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림책으로 아이들에게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교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책에서 소개된 동화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그 책과 교감하고 일상과 어떻게 연결 짓는지 그리고 아이들의 닫힌 마음이 어떻게 스스럼없이 펼쳐지는지 잘 보여 준다. 책들 사이사이 꾸밈없는 아이들의 사진을 통해, 나는 무심코 그냥 읽어 주었던 동화책들을 저자는 섬세한 터치로 23명의 초등 2학년 생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잘 읽어주었음을 보여준다.

내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눈빛을 마주치는 것 또한 한 사람의 마음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결 고운 봄바람이 되고 싶어, 이슬 덜 마른 숲을 걸으며, 모두 다 다른 빛깔이라 아름답다, 겨울나무처럼 살고 싶다’라는 책의 소제목들이 보여 주듯이 한때 시인이 되고 싶어 했던 저자의 마음이 보인다. 책을 읽어 갈수록 시인의 손길을 가진 저자의 깊어지는 글을 만날 수 있다. 책을 고르고 선정하는 방법을 담고 있고, 아이들과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책이다. 인생의 모든 과정이 처음이라 늘 초보자로서 실수를 하는 게 삶이지만 책은 그 어설픈 길을 안내해 주는 안내자가 된다. 내 아이의 그 귀한 시간에 저자가 해주었던 방법으로 책을 고르고 읽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노년의 삶에서 돌아보는 중년의 시기를 어떻게 보냈어야 하는지를 담고 있는 책을 만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누군가 걸어왔던 그 길을 걸어가고 있기에.


 문학책을 보는 이유가 주인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전한다. 문학적 작품을 도덕적 훈화로만 여겨서는 안 되고, 등장인물의 상황과 삶을 이해하고 내 삶과 견주어 보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공감이 간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책이라는 저자의 조언이 도움이 된다. 


 어머니 어깨에 놓인 삶의 무게를 알려 주는 ‘돼지책’,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강아지똥’, 아이의 눈높이로 보는 마음을 알려주는 ‘지각 대장 존’, 나눔으로 빛나는 삶을 보여주는 ‘무지개 물고기’, 마음의 벽을 허무는 향기를 이야기하는 ‘아기 돼지 삼 형제’, 전쟁에 대한 바른 인식을 알려주는 ‘쇠를 먹는 불가사리’, 환경의 중요성을 들려주는 ‘갯벌’, 성폭력으로 상처 입은 영혼을 달래 주는 ‘가족 앨범’ 그리고 서로의 온기를 함께 나누는 방법을 알려 주는 ‘장갑’이라는 동화들이 다채롭다. 특히, 갯벌에 대한 그 중요도를 다시 한번 알려 준다. 갯벌이 생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8,000년이지만 파괴하는 데는 1~2년이며, 파괴된 갯벌을 회복시키는 것은 우리 세대에서 불가능하다는 말이 오래 남는다. 저자의 남편도 갯벌 살리기를 위해 삭발을 하고 서울까지 3보 걷고 한번 절하는 그 힘든 행보를 함께 했다는 말에, 부부의 생활 철학을 배운다.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겨울나무처럼 살 일이다. 딱 그만큼만 살아도 아름다운 인생이다.’ 저자의 글 후반부의 글들은 농도가 짙다. 가을산이 아름다운 이유가 각기 다른 색을 내는 나뭇잎들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아름다운 이유 또한 각기 다르기 때문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들녘에 핀 꽃이 다 다르듯, 나뭇잎의 색깔이 제각각이듯, 지닌 빛깔과 향기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이든 사람이든 아름다운 것이다.’


겨울이 다가오면 나무들은 하나씩 자신의 나뭇잎들을 욕심 없이 내려놓는다. 마치 나이가 들어가면 들고 있던 욕심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사람들처럼. 저자의 자작나무 사랑이 내게도 전염된다. 

자연은 이렇듯 흐르는 시간에 자신의 몸을 맞춘다. 살아남기 위해서 제 살점을 떼어내는 나무의 처절한 몸부림, 살기 위해서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아득 바득 탐욕을 부리는 사람에 견주어 보면 나무의 지혜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저자의 삶을 통해 인간미 넘치는 삶을 접했고, 조금 더 나를 아래로 내려놓아본다. 좋은 책은 향기가 난다. 저자의 책에서는 은은하게 퍼지는 아카시아 향이 난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 이 땅에 아름다운 사람들을 길러 내는 저자의 삶에 응원을 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하루 한 권 독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