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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Feb 19. 2024

하루 한 권 독서

[언제나 여행자처럼]- 이지상

일상과 여행을 무 자르듯이 싹둑 잘라 구분했었다. 일상이 분주해질 때 여행을 꿈꾸며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었다. 저녁 석양이 물드는 강가를 산책하다 보면 물 위를 튀어 오르는 고기들을 만나게 된다. 마치 사람들이 일상의 강물 속에서 강물 밖의 세상을 향해 힘차게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여행은 더 많은 산소를 주는 일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여행과 일상을 오가면서 삶이 여행이고 세상이 수행의 장이라는 말의 뜻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는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현재에 몰입했고, 생의 포만감을 누린 사람이다. 용감하면서도 철학적인 사람 같다. 30대 초반에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보고자 세계여행을 하면서 일상과 여행을 반복하는 삶을 살았고, 이를 통해 깨달은 삶의 정의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여행 동기가 공감이 된다. 안정된 직장을 찾음과 동시에 미래라는 문이 닫히는 기분이 느껴질 수 있다. ‘일상과 방랑의 권태 속에서 생을 다 살아버린 것 같았고, 삶의 의미도 상실되었다.’ 탕자의 쾌락이 아니라 무한의 세계에 대한 욕심이 마음에 자리 잡을 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무한과 하나가 되는 그 해방감과 자신이 사라지는 그 부재의 지점이 무한의 세계가 열리는 입구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다. 저자의 말처럼 방랑과 방황은 존재 자체의 숙명이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자 자신을 찾아가는 행위가 여행이라고 한다. 

나는 존재를 수단으로 대하며 속도전으로 몰아넣는 이 자본주의의 속도로부터 탈출해 ‘나는 살아있다’를 외치고 싶었다.” 그때 초월성의 세계가 눈앞에 번뜩임을 느꼈다고 한다. 


 그의 여행기는 고생이나 모험이 담긴 일반 여행서가 아니라 회상과 사색 그리고 철학적 관점이 들어간 이야기다. 자신만의 삶을 충실하게 만들어 가면서, 삶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발견한 과정이 보인다. 

어제 도착해 오늘 머물고 내일 떠날 것처럼 살아라.’

서역 지방의 메마른 벌판, 타클라마칸 사막, 북 아프리카의 리비아 사막, 아프리카의 대초원, 시베리아 지평선을 온몸으로 느낀 진지한 여행자이다. 


떠돎보다 힘든 것이 그 떠돎이 일상이 되어 권태를 느꼈던 저자의 솔직한 고백도 이해가 된다. 삶의 생기와 힘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 여행과 일상, 안정과 불안정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흔들릴 때 일어난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인도 여행 중 총기전이 수시로 일어나는 스리나가를 빠져나오면서 저자가 느꼈을 삶의 생동감. 그 신선한 맛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신화학자 조지프 켐벨의 인용을 통해 저자가 전하는 여행의 정의가 새롭다. 사람은 몸이 태어나는 탄생과 영혼이 태어나는 두 번의 탄생이 있다. 영혼의 탄생은 모험과 통과의례 같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통과 의례를 겪은 사람은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힘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유독 성인식을 독하게 치르게 하는 민족들이 있는데 그 기원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영혼을 흔들어 깨우기 위함은 아닐까. 여행을 통해 그 통과 위례를 만들고 싶었을 것 같다. 또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진실되게 노력하는 또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는 과정 그 자체만으로 동지애를 느꼈을 것 같다. 


 이념을 강요하는 사회, 대부분의 사람을 열등하게 만드는 구조속에서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해진 길로 순서대로 나아가야 안정감을 느끼도록 길들여 진건 아닐까. 세상으로부터 ‘출고’와 세상의 ‘중심’이 다 내 몸과 마음에 있다는 것을 느낀 저자의 깨달음은 한순간이 아니라 여행과 일상을 반복하면서 마음깊이 채득된 교훈 이었으리라.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문 열기’이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문 닫기’도 필요하다. 닫음이 있어야 ‘여는 행위’가 존재한다.”  깨어있는 마음이 있어야 자신의 의지로 문을 만들고 스스로 열고 닫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역동적 뿌리내리기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목표 지점에 다른 것이 아니라 끝없이 흔들리며 타자와 소통하는 가운데 존재를 싱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편하게 살다 보니 자신의 날개가 퇴화되어 인간의 도움 없이 살지 못하는 뉴질랜드의 키위새에 대한 비유는 깊은 생각을 심어 준다. 안정에 길들여지다 보면 우리 인간 또한 키위새처럼 자유를 향해 맘껏 뛰어오를 수 있는 날개가 퇴화될 수 있지 않을까. 현대판 유목인 디지털 노마디즘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휴대폰, 인터넷을 이용해 타자와 접속하면서 장소나 지배적인 하나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열린 구조속에서 탈 중심화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현재의 내 문제는 여행이나 체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사유하고 해석하는 인식의 지평이 좁아서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저자의 여행과 일상이 반복된 역동적 삶에서 정의되는 깨달음이 묵직하다. 공간이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행을 초월하는 꿈을 꿀 수 있어야 하고, 시선을 달리 하면서 존재와 현실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을 때, 현실적이고 이분적인 태도를 초월할 수 있고 상상력과 상상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아도 내 의식은 수많은 상징으로 나타난 영혼의 세계, 신의 세계, 무의식의 세게 속에서 전 우주를 유랑했다. 그 순간 너와 나, 삶과 죽음, 여행과 삶의 구분이 사라지고 몽상 속에서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다.’


자자의 깊어지는 사색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여행과 일상이라는 현실을 초월해 상상의 세계까지 삶의 영역을 넓혀야 함을 알 것 같다. 

세상은 넓다. 그러나 사유와 상상의 세계는 더욱더 넓다. 사유하고 상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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