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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Mar 06. 2024

하루 한 권 독서

[위로받고 싶은 날들]- 조재도

하늘 가득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고 있는 사람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쏟아지는 비를 창문너머로 지켜보며 집이라는 평온한 공간에서 그 비를 바라본다. 전자는 저자를 보는 나의 느낌이고 후자는 나라는 사람 같다. 행여 비가 옷을 젖게 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편안한 삶에 길들여진 나는 비속에서 추는 춤이 어떤 맛인지 모른다.

 

 저자의 책을 읽어가면서 비를 무서워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자신을 던지는 삶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책의 제목을 ‘위로받고 싶은 날들’이라고 정한 것 같다. 온몸을 던지듯 살아낸 삶에서 결국, 작은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된 5부의 이야기를 통해 제목이 갖는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걸어온 그 긴 길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교직 생활을 하며 문학, 운동, 청소년이라는 큰 틀 안에서 31년간 가르치는 삶을 살았고, 그중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며 24년을 보냈다고 한다. 근 현대의 역동적인 물살 위를 걸어온 그의 삶은 순응과 복종과는 먼 삶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라는 거친 바다에서 마치 파도를 읽어내는 서퍼처럼 살아내려 균형을 잡지만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저자의 모습이다. 다행히 이제는 시대의 파도를 타는 힘을 가진 저자의 모습이 보인다. 


 성장과정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내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며 어른의 손길이 없는 청소년이 불량 친구들과 마음껏 사회를 향해 거부의 몸짓을 휘둘렀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안타까웠다. 흔들리는 아이에게 위로와 격려는 자신으로 살아갈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도 저자의 어머니가 ‘네가 어련히 알아서 허겠니’라는 마음의 균형점은 안도감을 준다. 


‘누가 간섭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해 어떤 일을 처리해라. 인간의 자주성과 자율성, 책임의식을 담고 있는 이 말은 그 후 나의 인간과 인간행위를 바라보는 척도가 되었다.

 그 시기 그 흔들림을 맘껏 누린 저자는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컵에 그의 눈물을 담아 혼을 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하루 17~18시간 혼신을 다해 공부했던 지독한 몰입력은 저자의 기본성향을 보여준다.


 고등학교 평준화로 인해 온 힘을 다해 공부한 저자의 의지력이 무기력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읽으면서도 답답함이 느껴졌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입학해 특수반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불편함을 느낀 저자는 결국, 일반반으로 가고 나서야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흔들리는 청소년인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앞을 향해 질주하는 삶을 보았다. 중학교 졸업 후 혼신을 다했던 그 공부의 잔재로 고등학교에서 맘껏 흔들렸던 생활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아버지의 조언데로 공주 사범대학을 지원하고 합격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저자의 정신적 기둥이 되는 책들과 몰입해서 만나는 과정을 소개해 준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단 2권의 책인 이어령의 <흙속에 저 바람 속에>와 박계형의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을 통해 다른 세계를 맛보았던 계기가 대학에서도 책에 대한 욕구를 부른 것 같다. 


대학 시절의 독서경험을 표현한 구절도 기억에 남는다.‘철학, 문학, 역사, 사회, 과학등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석삼년 가뭄에 갈라 터진 논바닥에 물을 대는 격이었다.’ 

 대학시절 읽었던 도서를 통해 인문, 사회적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고, 전두환 정권 집권 시 학생 운동에 연루되어 몰래 숨어 살던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한 개인이 작은 나뭇가지라면 어찌 큰 물을 막겠는가. 하지만 그 잔 가지가 많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역사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수많은 작은 희생들이 모여 역사의 물길을 바꾼다는 것을. 우리 전 세대의 용감한 선배들이 자신들의 안위보다는 더 큰 대의를 위해 용기를 내었던 행동들로 인해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되고도 자신의 소신 데로 학급을 이끌어 가면서 부딪치는 시대와의 충돌도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학급 문구를 만들어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죄가 되는 세상을 개인은 어떻게 버텨냈을까. 전교조 운동을 했고, 한 인간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 싶지 않은 시대를 만약 나라면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저자의 형이 무지와 가난으로 인해 몸이 불편하게 되어 말을 못 하게 된 삶의 아픔도 기억에 남는다. 경기가 난 아이를 병원에 보낼 생각은 못하고 침으로 치료하다가 결국 평생 불구로 살아가는 형을 보며, ‘형이 하는 말을 내가 대신 받아 적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저자는 시막이 터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가장 작은 요소로 ‘시’를 이야기한다. 시가 저자에게 다가온 것이라면 기도는 저자가 신을 찾아 다가갔다고 한다. 어느 순간 삶의 작고 소소해 보이는 것들을 놓치고 살아온 저자가 신을 향해 손을 내민 것이다. ‘위태롭지 않은 경우 인간은 자신이 모든 일을 다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위태로워지면 신을 찾는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삶의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지나 보니 나의 의식과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어 다른 곳을 살피지 못했다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작가의 삶의 조명은 온통 운동, 문학, 청소년에 집중되어 있었다. 조명받지 못했던 삶의 소소한 것들을 ‘비로소 생활이 눈에 들어오다’라는 표현을 통해 이야기한다. 

 책들 사이사이에 소개된 저자의 시들은 삶의 진지함이 묻어난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도 형도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퇴장하고,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삶에서 미치도록 한 가지 일에 집중해 본 경험은 인생의 강을 건너게 도와준 단연 큰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으리라. 


 ‘멀리서 바라 볼 때 하나의 숲이었지만, 그 숲에 외틀어지고 비틀어진 나무들이 있었다.’ 삶을 잘 표현한 글이다. 멀리서 보면 다들 비슷하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개개인마다 보이지 않는 자신들만의 문제로 비틀린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살아낸 삶, 살아온 삶,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한번 삶을 생각해 본다. 저자의 맺음말의 외침이 잔잔하게 파도치듯이 마음에 남는 책이다. 

 ‘그러니 살아보자. 천천히, 천천히 걷을수록 인생은 커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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