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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Mar 04. 2024

하루 한 권 독서

[프랑스 아이처럼]- 파멜라 드러커맨

시대가 아이를 키운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나 양육 방식은 시대를 닮아 간다. 유대인의 속담에 ‘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환경 속에서 영향을 받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데 의식적인 영향을 준는다는 의미도 있을 것 같다. 

미국인인 저자는 잘 나가던 뉴요커 기자였다. 어느 날 200명의 권고 해직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발견되고, 평소 호감을 가지고있었던 기자인 영국 남편 사이먼과 결혼하고 프랑스에서 살게 된다. 


 우연과 필연의 그 중간 정도에서 미국인과 영국인 부부가 프랑스에서 살면서 느끼는 양육 방식을 소개한다.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다. 미국사회의 양육 방식을 고스란히 들고 있던 그녀에게 프랑스 아이들과 엄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부부의 삶에 아이가 등장하면서 생활의 패턴이 깨지고, 아가씨 때처럼 예쁘고 단정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아기 가방을 둘러메고 허둥대는 자신의 모습과 하이힐을 신고 유모차를 밀고 들어가 식당에서 고요하게 식사를 하는 프랑스 여인들과 아이들을 보면서 당연 궁금했을 듯하다. 야채나 채소를 가리지 않고 전채, 메인, 휴식을 얌전하게 앉아서 먹는 아이들이 미국인 저자의 눈에 신기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첫아이를 낳고 부부가 식당에서 밥을 먹어을 때는 서로 교대해서 먹고, 아이들을 위한 메뉴가 따로 있는 미국 문화와는 다르게 프랑스 아이는 어른과 같은 음식을 먹고,  얌전하게 부모와 함께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것을 보고 당연 궁금했을 것 같다. 


아이는 어른과 같은 양이 아니라 같은 음식을 먹을 때, 비로소 자기가 어른 대접을 받는다고 느낀다.’  

 기자답게 그들의 생활방식과 양육에 대한 기본 원칙을 취재하듯 공부하듯이 책을 써낸 것 같다. 배운 내용들을 생활에 도입하면서 서서히 파리 엄마들처럼 아이의 양육과 자신의 삶의 경계를 명쾌하게 만들어 낸다. 그녀의 글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남편과의 다툼이나 아이를 기르면서 만나는 부정적 느낌을 직구가 아니라 완고하게 묘사해 내는 능력이 있다. 읽으면서 날카롭게 찔리기보다는 그 부드러운 직선으로 그녀의 감정이 이해가 되면서 따뜻한 웃음을 만들어 낸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가 있고, 단호한 제한 역할을 하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 같은 카드르 안에서 아이들에게 무한한 자율을 허락하는 프랑스 문화는 육아법 충돌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육아는 편안하고 협력적인 양상으로 기본 원칙이 자리 잡고 있어 몸에 익숙한 옷처럼 아이를 길러내는 일에 힘이 덜 들어가 보인다. 아이를 가지면 꼬박, 꼬박 육아 수당이 지급되고, 보육기관이 무료이고, 건강 보험을 걱정할 필요도 없으며, 대학을 위해 목돈을 준비해 둘 필요가 없는 사회가 프랑스다. 뚜렷한 육아 철학이 없다. 단지, ‘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다른 생각이 있을 뿐이다. 미완성된 아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인격을 가진 존재로 부모와 아니 모두 각자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하는 양육은 부모와 아이모두 안정된 정서적 교감을 주는 것 같다. 


 신생아도 자기만의 인격이 있기 때문에 엄마는 아이에게 어떻게 자신이 돌보고 있는지 이야기를 건네고, 생후 4개월 이후 부터는 밤낮이 바뀌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신생아 일지라도 오전 8시, 정오, 오후 4시, 오후 8시 수유 시간을 지키고, 밤에는 12시간 긴 잠을 자는 게 부모는 당연하게 여긴다고 한다. 한 밤중에 깨어나도 아이가 스스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부모의 자세가 비록 어릴지라도 무의식적으로 자야 하는 시간임을 깨닫게되 스스로 잠이 든 후 수면 패턴이 형성된다고 한다. 저자 또한 밤에 깨는 자신의 아이를 참고 기다린 일화는 이해가 된다. 첫날 아이가 한 밤 중에 혼자 15분을 울다 잠이 들 때, 부부 또한 안고 싶은 것을 참아내며 함께 울었다는 말에 그 긴 시간을 부모가 어떻게 버텨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리고 둘째 날은 5분 울었고, 셋째 날부터는 한밤중에 깨지 않고 푹잠을 자는 수면 패턴이 형성된 일례를 보여준다. 한밤중에 아이가 울면 달려가 안아주는 부모의 조급증이 아이들의 수면 패턴 흐름을 깬다는 것이다. ‘수면 사이클마다 부모가 끼어들면 매우 정교하고 정확하게 90분에서 2시간 수면 사이클마다 깨어나는 수면 문제의 원인이 된다.’


 프랑스는 수면과 식사에 대한 절제 규칙이 뚜렷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도 먹이다는 ‘feed’가 아니라 ‘식사’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수시로 아이들이 간식을 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후 4시 구테라 불리는 간식 시간에만 먹는다고 한다. 음식과 수면의 규칙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자연스럽게 길러 주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즐길 자격이 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믿음이 기본 정서로 깔린 문화다. 그래서 5살 아이도 주방에서 케이크를 혼자 만들어 낸 모습을 보고 저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만든 케이크를 바로 먹는 것이 아니고 오후 구테 시간까지 기다린 후 먹는 프랑스 아이들이 마치 마시멜론의 실험에서 보여 주듯 먹고 싶은 것을 참아낸 아이들이 어떻게 삶에서 강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지를 책에서도 다시 한번 언급해 준다. 즉각적인 만족을 지연하도록 습관화하면 더 차분해지고 회복력이 좋아진다는 것을 프랑스 부모 드는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 좌절과 기다림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아이가 자신만의 리듬이 있듯이 부모 또한 자신들 만의 리듬이 있다는 전제하에 양육이 시작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것 같다. 집에 손님이 와도 아이들 위주가 아니라 아이와 어른들의 삶의 구별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고 한다. ‘너한텐 너의 시간이 있고, 우리에겐 우리 시간이 있어. 그러니까 어서 가서 자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부모들이 조금은 냉정해 보이지만 서로 삶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는 듯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혼자 노는 법도 가르치는 것이 부모 역할이라는 것을 지인을 통해 알아가는 미국 엄마의 신선한 충격도 전달되어 온다. 

 제한이 없는 아이는 욕망에 소모된 에너지가 많다는 것을 알고 카드르라는 제한된 선을 제공함으로써 아이에게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세계를 부모가 제공하는 것이 프랑스 양육 방식이다. 그들의 양육 방식에 영향을 준 두 명의 사상가로 <에밀>을 쓴 루소와 돌토를 책에서 소개한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루소는 자신의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으로 보낸 모진 부모지만 그 기반 위 돌토의 사상이 프랑스 양육 전반에 깔린 사상이다. 모든 것을 다가진 것에 익숙해진 아이는 불행을 쉽게 느낀다고 한다. 모든 영역에서 엄격한 게 아니라 식사나 취침 같은 일정한 핵심사항에서만 엄격한 규율을 정해 둔다. 돌토는 아이에게 세심하게 귀 기울이고, 세상을 설명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많은 제한이 있고, 아이스스로 그것을 합리적으로 흡수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자가 부모라고 한다. 아이를 믿고 그 믿음과 존중을 바탕으로 아이들 역시 부모에 대한 같은 신뢰를 갖게 된다고 한다. ‘아이가 부모의 말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실질적인 생활이 꽤 달라진다.


 3세 미만의 3분의 1일이 다니는 프랑스의 탁아소는 크레쉬라 불리는데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5일간 나라에서 운영한다. 아이가 만나는 첫 공동체 경험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크레쉬는 미리부터 예약을 해둔다고 한다. 모유에 대한 강박 관념 또한 없어서 그런지 3개월이 지난 아이가 모유를 먹고 있으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회다. 아이다운 성격을 제대로 갖추는 게 필수적이고, 그 바탕으로 경계를 존중하고 자제력을 갖추는 것을 필수적으로 생각하는 사회가 프랑스다. 훈육이라는 말보다 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하되, 어떤 것이 용납이 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는지를 알려 주는 게 중심임을 알 것 같다. 잘못된 행동마다 일일이 엄겸 하게 반응하면 아이들이 어떤게 중요한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세워진 규칙을 바탕으로 예의에 관한 소소하고 예방적인 조정을 생활 속에 심어둔 프랑스 양육 방식이 왠지 모르게 미래 지향적인 양육방식 같다. 아이들이 완숙된 성인으로 잘 자랄 수 있는 정신적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 같다. 아이가 귀한 시대라고 하지만, 그 귀한 아이들을 훌륭한 인재로 길러내는 정신문화가 필요한 시대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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