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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Jul 17. 2024

하루 한 권 독서

[한 번의 작은 생애]- 하정

삶을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시간이라는 자는 기준을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엿가락처럼 늘어나기도 하고, 잘못한 빨래 덕분에 줄어든 옷 같기도 한다. 수만 년을 살아내는 산에 비교한다면, 우리 생은 하루 살이 같을 것이고, 한철만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꽃들과 비교한다면 무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듯 느낄 것이다. 


 저자의 책은 시간의 느림을 선물한다. 섬세하면서 솔직한 감정들이 책을 읽어내는 동안 다급함을 요하지 않는다. 그저 느리게 느리게 흘러가도 괜찮을 것 같은 위로감을 준다. 한 번에 작은 생애라는 제목이 잘 어울린다. 크고 거창하게 사는 게 아니라, 만나는 모든 일상과 사람들을 통해 생을 느끼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직업 교육과 문화 혜택을 받으며 살 수 있도록 돕는 마을 형태의 공동체가 Camphill이다. 전 세계 100군데 정도가 있고, 그중 영국과 아일랜드에 48개가 있는데 저자는 아일랜드에 있는 캠프힐에 1년 가까이 자원봉사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전 세계에서 온 봉사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소정의 용돈과 의료 혜택을 준다. 개인적으로, 어학을 위해 연수를 가거나, 워킹 할리 데이를 가는 것보다 캠프힐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미리 알았더라면, 캐나다로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던 조카에게 이야기해 주었을 것을....... 


 저자가 만났던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의 아기 자기한 이야기와 생활 속에서 발견된 예쁜 소도구나 자연들 그리고 저자가 구워낸 빵들이 예쁜 책이다. 캠프에서 만난 첫 친구 소시, 히피 클라라, 영어도 한마디 못하는 독일인 사라에 대한 만남은 독특하다. 장애인과 봉사자들이 매주 화요일마다 회의를 하고, 공동체 삶에서 서로의 역할을 조율 해내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경험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솔직한 느낌과 힘듦을 이야기하고, 그런 마음의 소리를 조용하게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캠프힐 사람들의 인간 냄새가 좋다.

힘든 이야기를 남에게 하면, 못난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무엇에 고통을 느끼는지 알아 간다는 것, 그 과정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바깥에서 나를 바라보듯 이야기하는 경험, 나는 처음으로 이곳에서의 내가 좋았다.


다른 삶을 만나야 내 삶이 보이고, 갈길이 보일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니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건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은 것이 여행자의 마음이다.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경험하며,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다. 


 봉사자들의 취향에 맞춰 각기 다른 김밥을 싸는 저자의 손길은 바빴을 것 같다. ‘끼니마다 사람들의 이름을 손꼽으며,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지키는 방법,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무리에 희석되지 않으면서도 함께 어울려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에게 휘둘리는 이기적인 삶이 아닌 타인을 받아들이는 주체적인 삶을 말이다.’ 


 캠프힐을 미리 끝내면서 그곳에서 인연이 된 사람들로 인해 벨기에, 체코, 오스트리아, 프랑스 여행이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책이 저자로부터 나오게 된다. 봉사자로 가는 캠프힐이 분명 쉽지는 않지만, 그 낯섦의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장애자들을 도와 보는 경험은 값질 것 같다. 


낯선 세계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어 외로워 죽을 지경인 날이 많았고, 나의 속으로 파고들어 가기도 했다는 저자의 고백은 솔직하다. 

 ‘내가 온 길을 잃지 않는 법과 상처를 전가하지 않는 법, 문제를 드러내어 말하는 법, 먼저 손을 내미는 법을 나는 그들에게서 배웠다.’ 


 완벽할 필요도 없고, '어찌어찌 된다'는 캠프힐 생활을 하며, 터득한 삶의 위대한 진리는 둘에서 혼자가 된 저자의 삶에 큰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한 번에 하나씩 느리지만 자신의 속도로 작은 생애를 매일매일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살아도 꽤 괜찮은 인생이라는 생각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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