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기회]- 이명랑
저자의 이름이 청소년 문학과 참으로 잘 어울린다. 더위에 지치고, 책 읽기가 지루해질 때 가볍게 산뜻하게 완독 할 수 있을 것 같아 일독했다. 책의 무게는 가볍지만 다루는 주제가 무거운 책이다.
청소년기를 지나왔지만, 그 시절 삶의 무게감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면서 내면 속 나와 친하지 못해 갈등했던 기억은 있다. 저자의 책은 지금 청소년들이 겪고 있을 내면의 소동을 조용하게 내놓는다. 청소년 소설이기도 하지만, 정신적 안전막을 만들어야 하는 어른들도 읽어야 할 책 같다.
단편집들의 제목으로는 그 내용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물건도 주체가 되어 이야기하고, 몸속 심장과 두뇌의 이야기도 펼쳐지고, 심지어 값비싼 파카도 이야기를 한다. 화자가 누구지 하는 궁금증에 빠지다 보면 단편의 한 중앙에 서 있게 된다. 6편의 작은 이야기들이지만, 무거운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직 1등 만을 바라는 어른의 세계에서, 청소년들이 서로 우스꽝 스런 경기를 하고 있는 내용을 다루는 <단 한 번의 기회>라는 편은, 네플렉스 영화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킨다. VIP석에서 자식을 내려다보는 부모는 그 조부모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다. 친 자식이 아니라 경기에서 1등을 한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인 그의 조부모의 선택을 알기에, 1등을 간절히 원하는 아이는 안타깝게도 2등으로 경기를 마친다. 결말은 없다. 단지, 자신의 부모도 친자식이 아닌 자신이 아니라 경기에서 1등 한 우승자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불안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1등을 하지 못하는 아이는 '부모에게 선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묘한 불안감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아이의 심장과 두뇌 이야기는 결국,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심장의 떨림이 아니라 뇌의 냉철한 이성만으로 살아가야 함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 같다. 심장과 뇌의 갈등이 결국, 세상을 함께 떠나게 되는 결말로 종결되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감성과 이성 사이의 부조화를 이야기한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흙수저와 금수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전설>편은 색채가 더욱 어두워진다.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로 초대되어 조롱의 대상이 되는 현실 세계는 분명 머물 수 없는 곳이다.
한때 청소년들 사이에서 값비싼 파카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고가의 파카를 사고, 학교 폭력에 휘둘리는 아이를 바라보는 파카이야기는 어른들이 실수로 만들어 놓은 함정 같은 느낌이 든다. 물건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아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유하려는 분위기를 보여 준다. 아이들 만의 잘못은 아니다. 상업수단으로 동원된 광고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아의 아이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쏟아져 버린 결과리라.
<준비물>이라는 책은 숨 가쁜 부모의 삶을 보여 준다. 자녀의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한 부모를 보는 아이들은, 그 돈을 훔쳐 자신의 꿈을 위한 준비금으로 생각한다. 준비금의 용도가 아이들과 부모가 다를 때 나타나는 일탈은 서글프다. 경험하고, 누리는 삶을 위한 준비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 가는 과정이 청소년기의 시간은 아닐까.
<이제 막 내 옆으로 온 아이에게>에서 노란 머리는 세월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라앉는 배안에서 아이들이 겪었을 극히 일부분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너무 무거워 다 꺼내놓고 펼치기에는 용기가 필요해서 일 것이다. 아직도 그 상처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삶이 온통 회색빛이리라. 그 회색빛을 감히 거부할 수 없다.
작은 싹이 하나의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따뜻한 안전막이 필요하다. 비바람 속에서도 언제든 따뜻한 햇살과 마음을 달래 주는 바람이 존재한다는 믿음만 주어도, 가을 낙엽 떨어지듯이 어린 자아들이 스스로를 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런 사회적 책임도 함께 지겠다는 각오를 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