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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Sep 30. 2024

하루 한 권 독서

[소로와 함께 한 산책]- 벤 새 턱

        ‘삶의 강을 건너는 법을 아는 사람’, 소로와의 산책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을 어렵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를 만났었지만, 그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산을 넘어야 했다. 그 어려워 보이는 산을 가볍게 산책으로 바꾼 저자는 화가이자, 작가 이자 큐레이터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다. 소로를 좋아하고, 그의 사상에 매료되어 그가 만났던 자연들을 통해, 소로가 느꼈던 감정들을 해석해 준다. 마치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넌지시 알려주는 기사를 읽는 느낌이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로에 대해 더 알게 되어, <월든>을 읽을 때보다 소로에 대한 호감이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저자는 케이피코드, 커타 딘산, 와추 셋산, 사우스 웨스트, 알라 가시, 그리고 다시 케이프코드를 걸으며, 몇 년간 일기를 썼다. 그 일기가 책이 되어 세상으로 나왔다. 밤이면 찾아오는 악몽과 라임병 그리고 왼쪽 중지의 손가락 한마디가 사라진 세상에서 저자는 살아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젊은 그 뜨거운 태양을 가슴으로 어떻게 받아 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열정으로 소로의 걸을 걷고, 그의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치료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첫 여정인 케이프 코드를 걷는 저자의 이야기는 홀로 걸어가는 사막이 연상된다. 반면, 다시 케이프 코드를 약혼자 제니와 걷는 편에서는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공원이 그려진다. 읽고 걷고, 생각하면서 서서히 사라지는 악몽처럼, 삶의 긍정성을 발견해 가는 저자가 보인다.


         책의 커버에서 시작하는 25살의 소로의 인용글이 인상적이다. 

이 평탄한 삶에도 정상이 있으며, 산꼭대기의 가장 깊은 계곡이 푸른빛을 띠는 이유를 이해할 것이다.’ 

각자의 삶에 정상이 어디인지 안다는 것은 삶의 산행 속도를 조절할 힘을 준다. 삶의 깊은 계곡의 푸른빛의 의미 해석은 사는 자의 몫이다. 내 삶의 푸른빛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은 미국의 자연환경과 저자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시의 삶은 자연과 일정 거리가 있다. 하지만, 저자가 보여준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 저자가 만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낯선 사람에 대해 친절하다. 결국, 세상 사는 곳은 다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도시의 삶은 무엇인가 해내야 하는 무언의 압박감이 있다면, 미국의 소도시에서 자연과 사는 사람들은 바쁘지 않아도 되고, 꼭 성공하지 않아도 되는 느긋함이 느껴진다. 낯선 이에게 선뜻 함께 음식을 나누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그 여유로움이 자연과 가까이 산 사람들의 품성 같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백인 남자는 낯선 집 문 앞을 두드려도 경찰을 부를 사람이 없을 거라고 표현하듯이, 조금은 인종의 덕을 본 것도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사회적으로 퍼진 편향된 문화나 선입견은 시간이 지나야 깎이고, 닦여야 하나의 조각처럼 멋스러움을 드러낼 것이다. 과거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 기념물 앞에 설 때 보다, 직접 참여할 때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노예 해방 찬, 반으로 일어난 남북 전쟁을 재현하면서 입은 군복과 총으로 저자는 그 시대의 잔옥함이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악몽 때문에 찾아간 심리 치료사는 저자에게 이야기한다. ‘나쁜 꿈을 꾸면, 마음한테 그곳으로 데려다 달라하세요.’ 어린 시절 자신의 집을 연상하지만, 결국은 소로가 남긴 책들에서 소개된 자연들을 만나면서 치유가 된 것 같다. 회색빛이 핑크빚으로 서서히 변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 같다. 

‘헨리가 자신과 자연을 이어주는 혈관을 찾아 길을 떠났다면, 나는 꿈을 털어 버리기 위해 길을 나섰다.’

 소로의 책 <메인 숲>을 읽으며, 그 길을 따라 걷는 저자는 마치 혼자가 아니라 소로의 영혼과 걷는 느낌을 준다. 44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소로의 자연 친화적 삶은 여전히 살아남아 그 누군가에는 삶의 위안을 준다. 


        길을 따라 걸으며, ‘전나무들의 기억을 내 생각과 기꺼이 바꾸고 싶었다.’라는 독백 같은 글을 읽으며, 머릿속이 복잡한 저자의 마음이 보인다. 다 내려 두고, 존재 자체의 모습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산의 정상은 미완의 세계에 속한다. 그곳에 올라가 신들의 비밀을 엿보고,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시험하는 것은 신들에 대한 가벼운 모욕이다.’ 소로의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산의 정상을 끊임없이 탐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별들은 오직 위안을 위해 쏟아 진다는 와추셋산은 살면서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은 곳이 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인용글인 ‘대지가 꽃으로 웃는 봄’을 수없이 지나왔지만, 그  웃는 모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할 시간임을 느끼게 해 준다. 


         자연은 미묘한 지성이 있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에 굴복할 때, 올바른 길로 인도됨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올바른 길이 있기에 자연을 찾는 것이다. 인간은 부주의함과 어리석음으로 잘못된 길을 가기 쉽다. 도심 속에서 살더라도, 자주 자연을 접해야 하는 이유를 만났다. 올바른 길이 자연에 있다. 


         소로의 책 <겨울 산책>을 읽었던, 소로지인의 에드 말도 인상 깊다. ‘소로를 더 잘 알지 못했다는 점이 몹시 후회스럽네. 중요한 질문도 하지 않고, 몇 시간, 며칠, 몇 달, 어쩌면 평생을 함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네.’ 오직 식물학과 조류학만 공유했던 에드가, 소로가 떠나고 없는 세상에서 책을 통해 소로의 사상에 매료된 뒤 느낀 아쉬움 섞인 말이다. 


         저자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26살에 만난 존과의 우정은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도 좋은 관계다. ‘존의 눈을 통해 보는 나의 삶은 26살에 시작된다.’ 

소로도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한해 중 맺어야 할 열매다’라고 했다. ‘우정은 꽃들에게 향기를 주며, 향기 없이 사과만 많이 따는 것은 실로 헛된 일이 아닐 수 없다.’ 

향기 없이 사과만 따내는 관계를 맺고 있는 건 아닌지......


         연인을 만나기 전의 수면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반드시 홀로 들어서야 하는 어둠의 영토’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약혼 후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눈을 뜨는 순간이 그것과 얼마나 상관없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삶의 푸른빛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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