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는 걸까?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이자 IT미리학자인 저자는 인터넷이 우리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2010년에 저명한 학자 400명 중 80%가 인터넷을 이용함으로써 인간 지능이 올라가고, 더 똑똑하고 나은 선택을 할 것이라 낙관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20년 실제 그런 낙관론이 틀렸음을 이야기한다. 뇌과부하와 집중력과 인내심이 산산 조각났고, 사고는 피상적이 되었으며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한다. 인간은 덜 사색적이 되었고 더 충동적이 되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매체가 과도하게 사용되면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까지 변한다.’
기술의 영향력으로 인식의 방식을 꾸준히 아무런 저항 없이 바꾸어 놓는다는 저자의 서두글들은 강한 의문을 갖게 한다. 인터넷 속에 푹 빠져 정보를 찾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회적 현상은 안전할까?
책은 문자혁명을 통한 인간 사고의 확장 그리고 인터넷이 생각을 넘어 뇌구조까지 바꾸는 것을 이야기한다.
기술의 변화에 따른 사회적 변화 또한 논리 정연하다. 글로 자신의 생각을 쓰다 보면 기억력이 저하된다고 생각했던 소크라스테스 때부터, 쿠텐베르크가 인쇄술 발견후 책의 대중화 이야기를 통해 인류가 기계적인 삶과 함께 걸어온 사고의 길을 만날 수 있다. 니체는 타자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글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산문은 보다 축약되고, 간결해졌다. 이 기기를 이용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갖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글쓰기용 도구가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데 한몫할 거라는 저자의 말은 컴퓨터로 글을 쓰는 나의 사고는 종이로 쓸 때와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현대 과학의 산물은 그 자체로는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기기의 가치는 그것들이 사용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컴퓨터 스크린은 하인 노릇도 충실히 하고 있어서, 사실은 이것이 우리의 주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저자의 일침은 긴장감을 준다.
인터넷은 단순한 정보의 유통 수단이 아니다. 웹을 더 많이 이용할수록 긴 글을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고, 한 페이지를 읽을 때, 이리저리 건너뛰며 관심 있는 정보만 읽게 만든다. 이렇게 정보를 습득하다 보면 우리 뇌가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국의 생물학자인 존 재커리영은 인간의 뇌세포는 사용할수록 더 커지고, 발전하며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린다고 했다. 따라서 모든 행동은 신경 조직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긴다고 한다. 온라인 세계를 열심히 헤집고 다니는 우리의 뇌에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변해 가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글을 쓰면서 추상적 사고를 시각화했다. 타인의 보이지 않는 사고를 글을 통해 만나면서 깊은 사고력과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게 되었다. 사고 변화의 예로, 지도와 시계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이 간다. 지도 제작이 발전할수록 지도 제작자가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독특한 방식까지 전파된다는 것이다. 수도자들의 하루 7번 기도를 하기 위해 교회의 종탑으로 시간을 관리했고, 결국 시계라는 발명품이 필수품이 되었다. 하지만, 먹고 자고 일하고 일어나는 시간을 내 감각으로 실행하는 능력을 시계에게 아웃소싱 하게 되었다.
공공 시계의 확산으로 더욱 통제된 사회의 일원으로 행동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시계의 체계적인 움직임이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인간의 탄생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모든 기술은 인간 의지의 표현이고 기술은 인간활동 보조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과 의미를 재구성하는 강력한 힘이 됨을 보여 준다.
뇌의 가소성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의 뇌가 위대한 이유가 모든 것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하면서 무엇이든 끝없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신경과학과 교수 올즈는 뇌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며 과거 방식을 바꿔 스스로를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뇌는 우리가 사고하는 대로 바뀐다는 것이다. 뇌 조직이 천재적인 이유가 개개인의 일생을 통해 또는 단기간에 걸쳐 요구를 담당하는 특별한 구조를 형성하고 주변의 환경적 요구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의 가소성이 역으로 온라인 속에서 만나는 정보들을 받아들이는 습관으로 인간이 귀하게 얻은 능력을 소멸시킬 수 있음을 책은 이야기한다. 구두 전달에서 문자로 전해지고, 낭독에서 묵독으로, 글자들이 띄어쓰기 없이 종이에 정렬되다가 띄어쓰기가 시행됨으로 써, 책 속의 글들이 독자의 사고 영역에 동요를 일으켜 유익해졌으며, 깊이 읽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고 받아들이는 일상이 분명 뇌의 변화를 가져와 인간이 사고하는 방법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이 된다. 웹을 통한 읽기는 숲이나 나물을 볼 수 없게 만들고, 단지 잔가지와 나뭇잎만 보게 한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인터넷이 뇌구조까지 바꾼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인터넷 문화는 미디어 소비 형태도 변화시켜왔다. 티브 또한 유튜브 형식으로 변화되어 구두 언어를 시각화해주는 말 풍선과 중간중간 보여주는 광고가 이를 느끼게 해 준다. 책은 신문을 극복했고, 축음기를 극복했지만,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는 읽는 방식을 바꾸며 굴복하고 있는 듯하다. 읽는 동안 정신의 일부는 이곳에 두고, 다른 일부는 다른 곳에 두는 방식으로 책을 읽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무형식과 즉각성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표현력과 수사법을 잃었다.’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대중화된 고요함의 의미와 사고의 일부였던 깊이 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소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수 있다.’ 독서 계층이라 부를 수 있는 소수만이 글을 읽고 쓰는 방식이 이미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정신세계에서는 이미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인터넷을 숙달되게 이용하는 사람의 뇌 앞쪽 부분에 초보 사용자와는 다른 신경회로가 생성된 실험의 예를 보여 준다. 하지만, 초보 사용자도 5일 이상 인터넷을 사용하자, 인터넷 숙달자의 뇌와 완전히 똑같은 신경 회로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인터넷 사용이 뇌의 변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5일만 해도 변하는데, 만약 수년을 지속적으로 독서 없이 인터넷만 사용한다면, 저자의 예언처럼 옛날처럼 생각을 할 수 없는 신문맹인이 생겨 날 수 있다. 종이로 된 글자들이 독자의 머리에 스며들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무엇에 집중해야만 하는지 아는 것이라 저자는 이야기한다. 휴대폰을 늘 들고 다니는 현대인들은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콘텐츠로 뇌의 능력을 변형, 축소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귀인 현상(실제 보다 자신이 똑똑하다 느끼는 현상) 때문에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등장시키고, 속임수가 만무하는 사회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휴대폰을 책상 위에 둔 그룹과, 가방 안에 둔 그룹 그리고 옆방에 둔 그룹 중 마지막 그룹이 지적 명민함 평가 실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휴대폰 존재 자체가 가시거리에 있을 때, 우리는 억울하게 우리의 명민함을 잃는 습관을 갖게 될 수 있다.
우리는 데이터를 가지지만, 그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는 시대를 살 수 있다. ‘이 문화적인 흐름을 수정하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인터넷의 유산이 될 것이다.’ 저자의 마지막 말이 강하게 남는다. 편한 게 들어온 지식은 휘발되기 쉽다. 쉽게 먹는 정보로 인해 우리 뇌가 기억이라는 훌륭한 도구를 녹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책이다. 기계에 기억을 아웃소싱하던 버릇을 내려두고,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기억이라는 자산을 당연시하지 말라’라는 말을 명심해야겠다. 인터넷은 망각의 기술일 수 있다. 그 유용한 도구의 장점만 적당히 취하고, 독서계층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