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한국사]- 임소미

by 조윤효

사람의 욕망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가 돌고 도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의 주체가 되는 사람을 직시 할수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 책이다. 나무의 뿌리를 안다는 것은 나무의 몸통과 줄기 그리고 잎들 까지를 예측하는 일이기도 한다. 대통령의 계엄령 후 사후 처리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우리 역사를 다시 읽어 보고, 남의 눈이 아닌 나 자신의 잣대로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고조선에서 시작해서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곰을 토템으로 믿는 부족이 호랑이를 토템으로 믿는 부족을 이기고 고조선의 역사가 시작된다. 중국 위만족이 고조선 준왕의 도움으로 정착해 살다가, 자신들이 왕이 되어 다라를 다스린다. 초기 국가들로,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마한, 진한, 변한이라는 작은 나라들이 뭉치면서 다시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삼국으로 나뉜다.


고구려의 발전 과정을 읽다 보면, 중국과 근접해 있어서 그런지 나라 발전의 폭이 넓어 보인다. 고구려는 농부였던 을파소를 중앙 최고 관리자로 들이고, 인재 발굴과 중국 견제정책을 효과적으로 실천했다. 고국 천왕대에 실시대된 진대법(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추수 후에 돌려받는 나라제도)은 한국 최초의 사회복지제도다. 소수림왕의 탄탄한 국정관리가 광개토왕이 더 큰 활약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중국과 접견 국가라서 늘 위험을 의식하였기에 더 강하게 성장한다. 30만 명의 수나라 군대가 고구려를 침략했지만, 을지문덕 장군의 활약으로 물리친다. 오직 2700명 만이 살아 돌아간 ‘살수 대첩’은 학창 시절 단골 시험문제였었다. 고구려 하면 광야를 뛰어다니는 야생마가 떠오른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백제 문화를 잘 이야기해 준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백제 문화가 일본으로 많이 전파되어 일본의 아스카 문명에 영향을 주었다. 3000년 궁녀와 함께 자결을 선택한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도 승자의 기록으로 평가되어 있어, 조금 더 공부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백제는 소박하게 혼자 피는 수국이 연상된다.


여왕이 출현한 유일한 국가가 신라다. 진평왕의 딸 선덕여왕이 신라 27대 여왕이 된 이후로 진덕여왕, 진성여왕이 그 뒤를 이었다.

신라 아래 작지만 강해 보이는 가야는 철기 문화로 번영했던 소국이었다. 20~30대 여전사가 있었던 나라였다. 가야금을 만들어 낸 가야의 문화는 다채로운 색채를 지닌 나라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해 고려왕조 500년을 열었다. 3번에 걸친 거란의 침입 이야기 중 서희의 외교술로 오히려 강동 6주를 차지한 고려는 북쪽 국경의 안정성으로 더욱 번창하게 된다. 하지만, 고려는 몽골군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천연 요새 역할을 해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30년을 버텨낸다. 당시, 민초들이 몽골군대를 향해 대항했던 시절의 삶을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힘없는 백성들이 도망간 왕을 위해 나라를 지켜낸 역사는 일제 시절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고관대작들은 일본에 굴복해서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 삶을 선택했지만, 수많은 백성들은 끊임없이 마지막 남은 몸까지 과감하게 희생하면서 까지 나라를 지켜내기 위한 독립운동을 했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큰 소망을 가슴으로 품고 산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은 희망을 위해 뚜벅뚜벅 역사의 길로 걸어 들어간다.


명나라에 출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최영 장군과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성계. 아이러닉 하게 출병을 주장한 최영 장군이 아니라 이성계 장군이 명나라로 출병을 한다. 그리고,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군대를 동원해 위화도로 돌아와 왕이 된 이성계. 고려 왕조를 지키고자 하는 신하와 새로운 왕을 새우기 위한 신하들의 다툼 속에서 민생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지금 우리나라 정국을 닮아 있다. 이성계 아들인 이방원이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를 향해 부른 노래,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 하리’에 대한 화답으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단심가가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문신들의 부패가 무신들의 정권 탈취의 원인이 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57세 최고령으로 왕이 된 태조 이성계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518년의 조선 역사의 첫 장을 연다. 이성계 아들들의 왕권 다툼으로 결국, 조선 임금 중 유일하게 과거 급제한 아들 이방원이 왕권을 차지한다. 태종 이방원은 현명한 선택으로 셋째 아들인 세종대왕에게 왕권을 물려준다. 장자가 아니라 세종이 왕이 되었기에 조선의 기반이 된 기조석이 강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세종 대왕의 아들 문종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훌륭한 기골과 인물이 좋았지만, 여자에 관심을 두지 않아 사랑을 갈구하는 왕비가 왕의 사랑을 받기 위한 무속까지 동원하게 된다. 세종대왕에게 알려져 나란히 왕비 세 명이 폐위가 된 후, 문종은 왕비를 두지 않은 유일한 왕이 되었다.


문종이 죽고, 12살의 어린 단종이 왕이 되지만, 왕비가 없었기에 수렴 청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문종의 동생인 수양 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폐위한 후 사약을 내리고, 자신이 왕이 된다. 세조의 아들인 예종과 성종은 짧은 기간 왕권을 이어받는다. 권력 앞에서는 가족이라는 깊은 관계까지 쉽게 무너지는 것을 역사가 보여준다. 성종 때의 폐비 윤 씨와 장희빈 이야기는 드라마나 책의 소재로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성종의 숙빈 아들인 영조가 왕이 되고, 사도 세자와의 갈등 그리고 다시 정조가 왕이 된 역사적 이야기 또한 후세에 많은 각도로 조명되고 있다. 왕권과 신권 그리고 신하들 간의 사화가 적당한 균형을 맞추고자 갈등하면서 나아간 조선이다. 영조와 사도 세자의 사이에서 신하들의 입김이 너무 세었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다가 돌아온 소현 세자와 인조의 질투로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 죽이는 우를 범하게 하는 게 권력이다.


권력의 속성은 가진 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신이 한 인간을 시험하고 싶을 때, 시련이 아니라 권력을 준다고 한다. 권력을 갖더니, 오히려 자신을 위태롭게 만든 대통령은 신의 시험에서 불합격된 것이다. 한 국가의 리더가 공동 운명체인 국민의 삶과 후손의 삶까지 영향을 미친다. 지금의 상황이 역사로 기록될 때, 어려움을 잘 대체해서 선진 복지 국가로 많은 사람들이 공평하게 잘 사는 계기가 되었다고 기록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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