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백야 기행]- 차백성
여행의 참맛을 알려주는 책이다. 사용자에 따라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활용도가 달라진다. 여행 또한 여행자에 따라 여행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역사의식이 녹아든 인문학 기행이라는 추천인의 글이 명확하게 이해된다. 여행기의 새로운 장르라는 말도 공감이 간다. 대기업 임원을 그만두고 자전거로 여행하며, 독자를 대신해서 방문 나라의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을 소개해 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와 관계된 부분까지 소개해주고 있다. 여행서라기보다는 역사서 같다.
자전거와 함께 하는 여행은 독특한 시선을 준다. 느림과 빠름의 속도조절이 가능해서 그런지 마치 망원경으로 근거리를 조절하면서 여행지를 보는 느낌이 든다. 북유럽의 백야가 궁금해진다. 발틱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은 우리 나라 면적의 90%밖에 되지 않지만, 그들이 이루어 된 독립과정은 창의적이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에 시행된 세 나라의 자유를 향한 ‘인간 띠’, 발틱 웨이는 역사에 오래 기억될 것이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시작해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까지 650km의 거리를 사람들이 손을 잡고 줄을 서있는 사진은 감동이다. 결국, 1989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했다.
발틱 3국을 지나, 러시아, 노르딕 3국(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을 여행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러시아 역사에 대한 흥미가 생기게 되었다.
1989년 8월 23일 저녁 7시에 시작된 200여 만 명의 인간띠 시작점이 에스토니아 탈린이다. 50년 만에 독립을 이루어낸 그들만의 방식이 경이롭다. 에스토니아에 있는 고려인이 운영하는 한국 식당을 찾아간 저자는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러시아나 독립국가 연합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통칭해서 카레이스키라고 부른다.
1860년 조선의 흉년과 탐관오리를 피해 조선인들이 러시아 프리모드스키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경술국치 후 일본을 피해 또는 독립운동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20만 명이나 되는 조선인들이 살게 되었다. 러. 일 전쟁이 한창일 때, 스탈린은 일본의 간첩 또는 반혁명 분자라는 이름을 씌워 이곳의 조선인 지도자 2,000명을 죽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가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동을 명령한다. 조선 이들이 가진 재산 또한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 정부의 목표였을 것이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의 학살 저변에 깔린 재산을 노린 것과 같다.
열차에 실려 가는 동안 사람들이 죽고, 썩은 시체 냄새 때문에 열차 밖으로 시신을 던질 밖에 없던 상황을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없는 언 땅에 도착한 우리 선조들은 얼어 죽은 사람들이 다반수였다고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은 조선인들의 후손들이 경영하고 있는 식당을 찾은 저자와 그들의 만남은 애틋했을 것이다. 러시아 아내와 살고 있는 식당 주인부부가 한국어를 여전히 잘 구사하고 있다는 것도 인상 깊다.
에스토니아의 국민 30%가 러시아계라고 한다. 발틱 3국은 대학 졸업생들이 낮은 임금 때문에 젊은 두뇌들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우리나라와 중국 또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어디를 가든 세상살이는 비슷한 면이 있다.
‘외로움은 누군가 채워 줄 수 있지만, 그리움은 그 사람이 아니면 채울 수가 없다.’ 저자가 에스토니아를 여행하면서 그림움을 표현하는 글을 보며, 혼자 하는 여행에서 우러나는 그 감정을 생각해 보게 한다. 저자의 말처럼, 혼자 하는 여행이란 그리움이 찾아올 때 그 맛이 더욱 살아나고 진지해질 것 같다.
독일이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홀로 코스에 대한 이야기를 라트비아를 여행하는 동안 저자는 들려준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 의해 이어진다.’ 신체호 선생이 말하듯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가 라트비아의 신화를 러시아로 부른 노래였다. 러시아 노래인 줄 알았었다. 러시아 식민지로 있었기에, 여전히 러시아 전통노래로 잘못 알려 지고 있는 것이다.
개혁과 개방 세력 그리고 체재 수구 세력 간의 갈등 속에서 한국인 아버지를 둔 빅토르 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인기를 두려워한 정부가 빅토르 최의 교통사고 배후라는 후문이 있다. 아버지의 나라 서울 공연을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못내 아쉬움을 준다. 여전히,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련한 마음이 든다.
카놀라 오일의 재료가 되는 유채밭 가득한 리투아니아를 여행하며, 저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삶에 대한 정의를 들려준다. 진정한 삶이란 시간 개념이 아닌 활동 개념이고, 두 다리로 페달을 돌릴 수 있을 때 까지가 현역이라 생각하는 그의 철학을 통해 내 삶의 의미도 함께 생각해 보게 한다.
세계 유일의 호박 박물관과 조금은 우스꽝 스런 악마 전시 박물관도 있는 곳이 리투아니아다. 유대인 1,100명을 살려낸 독일 사업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쉰들러리스트> 영화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의로운 결정으로 6,000명을 살려낸 일본 영사였던 스기하라 지우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외국으로 탈출하기 위한 유대인들의 비자허가를 위해 20일간 밤낮없이 도와준 그는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 면직되었지만, 소중한 생명을 살려냈다. 그래서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낯선 타국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이타성이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문학과 예술의 나라 러시아 여행은 그들 역사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대문호 톨스토이와 도스 도옙스키의 나라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6.25 전쟁이 결정되었던 장소인 크렘린 궁전의 사진은 러시아만의 색채를 느끼게 해 준다. 빅토르 최가 있었고, 세계적 수준의 규모인 볼쇼이 극장의 사진은 러시아 무용수들의 우아한 춤짓을 생각나게 한다. 공산당 집권 당시 수많은 교회가 파괴되었지만, 다시 서서히 복원되고 있는 교회 역사이야기도 들려준다. 정통 크리스천이 아니라 러시아 정교회로 자라 잡은 종교는 덩치가 큰 러시아 땅에 맞게 변형되었다. 한때, 푸친 대통령이 종교의식 중 하나인 겨울철 냉수탕에 앉은 사진이 기억 난다. 인간이 만든 악기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신이 인간에게 주신 완벽한 목소리로 연주하는 아카펠라가 시작된 곳이 러시아다. 러시아대해서도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 국가중 하나인 것 같다.
왕조 몰락의 공통점이 ‘요승’의 출현이라는 것을 러시아도 보여 준다. 왕조가 몰락한 이유가 무능한 왕과 왕비가 요승을 믿고, 결국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하게 된다.
주 러시안 공사인 이범진과 그의 둘째 아들인 헤이그 특사 이위종의 사진은 아련한 아픔이 느껴진다. 경술국치 후 러시아에서 자결한 이범진의 3통 유서중 고종에게 전한 마지막 편지를 어떤 마음으로 써냈을까. 그가 관리하던 거금을 각국에 흩어진 독립 단체에 기부하면서 그의 마지막 간절함이 무엇인지 보여준 것 같다.
사우나의 나라이자 산타의 나라인 핀라드를 거쳐 발명 왕국인 스웨덴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도로 중앙에 주인처럼 자리 잡은 자전거 도로를 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보인다. 편리성 보다 중요한 것이 자연을 보호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 있는 나라 같다. 스웨덴의 왕자가 신혼여행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은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우리나라 유물을 발굴하고 있던 현장에 그를 초대한다. 그곳에서 신라 금관을 발견하는 사진이 소개되어 있다. 나라를 잃었던 그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 곳곳에 귀한 유물들을 마음껏 갈취해 갔었다. 스웨덴 왕자와 발굴한 기념을 위해 서봉총이라 이름 지은 고분 이야기는 다시 한번 지나온 우리 역사를 생각하게 만든다.
다이나 마이트 발명으로 부를 축척한 노벨은 형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으로 오보난 신문을 보고 깨닫는다. 그가 죽고 난 후 인류의 잔인한 전쟁을 촉발한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것을 노벨은 원하지 않았다. 독신이었던 그는 죽기 1년 전에 인류 발전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라는 유서를 비밀리에 작성해 두었다. 화학상, 물리학상, 의학상, 문학상, 경제상은 스웨덴에서 시상식이 이루어지지만, 평화상만은 노르웨이에서 이루어진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노르웨이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저자의 추측으로 스웨덴이 노르웨이를 식민국화 했던 과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노르웨이로 입양된 한국인 이철호 씨는 한때, 스웨덴의 라면 점유율 90%를 차지할 정도록 크게 성공했다. 죽고 나서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떠난 라면왕의 이야기도 감동을 준다. 삶의 어두운 부분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뭉크의 그림을 맘껏 볼 수 있는 뭉크 미술관과 돌로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돌의 마술사 비겔란에 대한 소개도 여행자를 유혹한다. 노르웨이 하면 무엇 보다도 남극 탐험을 최초로 성공한 아문센이 떠오른다. 저자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이 서로 닮았다.
남녀평등이 자연스럽게 실연되는 곳이 노르웨이이다. 공공기관 임원 40%를 여성이 담당해야 한다는 여성 임원 할당제와 18세 이상 1년 군복무는 남녀모두에게 주어지는 국민 의무다. 군복무 시 같은 숙소를 쓰면서 한 인간으로 서로를 대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 같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마르셀프라트 인용글이 저자의 책과 잘 맞다. 저자의 책은 새로운 눈을 갖게 해 준다.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그들의 역사를 발견하고, 그 역사와 연계된 우리를 찾아내는 기쁨을 주는 책이다. 저자의 여행은 몸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 대한 공부가 병행된 마음까지 바지런한 여행이다. 가고 싶은 곳이 많지만 생활의 한계가 있어 목마름이 깊어지지만, 저자의 책을 통해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