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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딸아, 너는 생각보다 강하단다]- 매기 다운스

by 조윤효

여행의 목적은 그 방법만큼 다양하다. 이 책은 여행하면서 자신 속에 감추어진 강인함을 찾아가는 과정 같다.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지만, 삶의 난관들을 만날 때 흔들리는 나약함이나, 불쑥 찾아든 불청객 같은 사소한 말들에도 맑은 물 같아야 할 마음이 온통 흐려진다. 여행을 통해 나를 다스리는 힘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 같다. 낯설고 위험한 여행지에서 본능의 힘을 깨우는 과정을 통해 점점 강해져 가는 자아를 만난 것이다.


오하이오의 작은 마을에서 천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자는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작가다. 글을 재미있게 써내는 방법도 잘 알고 있고, 글들 사이의 손으로 그린듯한 여행지 그림들은 성인을 위한 동화 같은 느낌을 준다. 만남,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여행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여 주는 듯하다.


어느 날 불쑥 엄마의 알츠하이머 병이 나타나고, 엄마를 잃어가는 것을 보는 일은 가족 모두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그리고, 집에서 더 이상 생활하기 어려워진 엄마를 요양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사실은 저자 삶을 온통 흔든다. 알츠하이머 병이 유전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검은 그림자처럼 저자의 우울감을 더한 것 같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천식으로 살아가던 저자에게 ‘너는 생각보다 강하다’라는 엄마의 말은 도저히 못 할 것 같은 일들을 시도하게 만든다.


비행하는 항공기에서 뛰어내리고 낙하산을 펼치면서,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도전을 통해 자신의 강인함을 발견하고자 한 저자의 용기가 대단하다. 그 과정에서 남편을 만난 것도 삶의 큰 복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역경을 자신 속에 감춰진 강점을 찾아내는 계기로 만들어 낸 저자는 결국, 엄마의 9가지 버킷 리스트 여행지17 나라를 1년 동안 ㅂ한다.


신혼 여행지로 남 아메리카 여행을 시작한다. 마추픽추와 아마존 여행 후 남편은 집으로, 자신은 세계 여행을 시작한다. 쉽지 않은 용기다. 보고만 있어도 애틋할 때, 신부를 1년 동안 세계 여행의 위험한 곳으로 보낼 수 있는 사랑의 크기와 배려가 느껴진다.


볼리비아에서 원숭이를 돌보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수컷 원숭이에게 공격당해, 흐르는 피를 누르며, 항생제를 사기 위해 약국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 산 넘어 산 같다. 10년 전만 해도, 세계 여행은 지금보다 더 많은 난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약국 같지 않은 먼지 날리는 가게에서, 정체 모를 약을 삼킬 정도로 급박했을 것 같다. 엄마는 요양원에 있지만, 저자는 여행하면서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옷으로 멋 부리기를 좋아했고, 음악을 틀어 놓고 요리하다가 신이 나면 저자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다는 일화들은 엄마가 저자에게 선물한 한 폭의 그림이다.


우유니 소금 사막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여행지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친구가 되어, 만남과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이민자의 나라라고 불린 우는 아르헨티나 여행을 거쳐, 카우치 서핑(여행자들이 자기 집을 숙소로 내어줄 호스트와 전 세계 곳곳의 여행자와 연결해 주는 서비스)에 대한 경험은 독특하다. 친구와 함께 카우치 서핑을 하는 가정에 가보니, 부모는 다른 곳으로 일 때문에 여행 가고 없고, 아이들 3명이 마치 원숭이처럼 집안 곳곳에서 날뛰는 상황이다. 그들의 돌봄 역할로 있는 부모 친구는 아이들에게는 벽에 걸린 장식품처럼 자신만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텅 빈 주방에 먹을 것은 없고, 아이들의 기본 생활은 무너져 있는 곳에서, 세 아이는 어떻게 어른들의 보호 막이 없이 9살에서 4살 사이의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마음이 머무는 곳이 집’이라는 말을 통해 저자가 생각하는 집의 개념을 보여 준다. 남편이 기다리는 곳이 집이고, 엄마가 있는 요양원이 집이며, 아버지가 계신 어릴 적 집이 집이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푹 빠져 이곳 또한 그녀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 집이라 칭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지구가 인간의 집이 아닐까. 세상 어느 곳에 있던, 시선을 좀 더 넓게 잡아 본다면, 우리는 모두 지구촌 가족일 텐데...


아프리카에서 210만 년 전 인류의 먼 조상이었던 ‘플레스 부인’을 만나고, 우간다로 건너간다. 우간다의 공식 언어가 영어와 스와힐리어라고 한다.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신청하고, 라디오 디제이 경험을 한다. 일본이나 영국처럼 우간다를 대표하는 왕이 있고, 왕과의 인터뷰 또한 귀한 만남이 된 것 같다. 나일강 급류 래프팅 속에서 헤매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역동성이 느껴진다.


우리는 어째서 활력 넘치고 아름답던 여인이 자신의 쇄락을 방관하는 대신 존엄성을 가지고 떠나도록 허락할 수 없는 걸까?’라는 저자의 사색에 공감이 간다. 건강했던 엄마의 모습을 오래 간직하고 싶지만, 10년 동안 몸만 남은 엄마의 모습이 화석화되는 것 또한 슬픔이리라.


인도에서 요가로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의 깊은 고요를 만나는 저자에게, 어느 날 엄마의 죽음을 듣게 된다. ‘이제 나는 엄마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낯설지 않은 표현이다. 지인 중 한 명이 오랫동안 요양원에 계셨던 엄마를 떠나보내는 날, 푸념처럼 장례식장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이제 고아가 되었네요.’ 장성한 두 아들을 둔 사람도, 엄마가 필요하다. 어는 소설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 엄마라 부를 수 있는 분이 내 곁에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례식을 하고 돌아와야 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 배낭을 요양원에 두고 출발한 저자는 다시 돌아와 여행을 시작한다. ‘슬픔은 나말곤 아무도 듣지 못하는 음악 같았다.’ 여행을 통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알게 된다. ‘내가 담그고 있는 물이 예전에 엄마의 목욕물로 쓰였고, 엄마의 비로 내렸을지도 모른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엄마는 세상에 없지만, 바닷물, 무지개색 흙 그리고 저무는 해는 모두 엄마를 거쳐 나에게로 왔다.’


1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저자는 아들을 낳고 다시 남편과 함께, 7년 전에 방문했던 태국을 찾아간다. 코끼리 보호 자원봉사 동안 만났었던 코끼리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를 기억하는 듯한 몸짓은 감동이다.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연계가 되어 있고, 삶과 죽음도 한 원이며, 만남과 헤어짐 또한 원처럼 되풀이되는 게 삶이다. 지구가 둥근 이유가 이렇게 원과 같은 운명 때문은 아닐까. 세계 어느 곳을 가든 내면 여행이 함께 할 때, 그 가치가 더 해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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