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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유럽의 다정한 책장들]- 모모 파밀리아

by 조윤효

여행에 주제를 달면 그 색채가 명확해진다. 휴게소 여행, 도서관 여행, 카페 여행 그리고 경치 좋은 곳 찾아다니는 여행을 소소하게 했던 경험이 있어, 주제가 담긴 여행책에 손이 간다. 130일 동안 유럽 24개국을 4인 가족이 여행한 이야기다. 10년 전부터 기획하고, 오랜 준비 끝에 육아 휴직을 내고, 2학년, 5학년 두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도서관을 찾아 나선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도서관에는 그 나라의 영혼이 담겨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가치를 담고 있고, 그 사회가 돌아가는 기본 정신이 담겨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관광지가 아니라 한 사회를 지탱해 주는 정신적 가치를 가족과 함께 공유한 경험이 살아가는 동안 큰 힘을 줄 것 같다.


삶 또한 크게 보면 지구별 여행이다. 여행에 주제를 달듯이 우리 삶에도 각자가 원하는 주제를 정해 본다면, 자기답게 사는 법을 터득할 것 같다. 인생 전체에 달아도 되고, 10년, 1년, 한 달 그리고 하루에 주제를 달아도 될 것 같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평생 동안 수첩에 9가지 인격 덕목을 기록하고 일주일 단위로 성취해야 할 목표를 정해두고 생활했다. 그의 자서전을 읽었을 때는 그 의미를 크게 깨닫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갑자기 프랭클린의 의도가 느껴졌다. 검소함과 겸손함을 큰 부를 이루고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평생을 수첩에 기록한 자기를 돌아보던 습관 덕분이었을 것이다. 발명가, 정치가, 작가, 심지어 작곡까지 해낼 수 있었던 힘은 삶의 주제가 명확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난 후 하루 주제를 달아 생활하기 시작했다. 하루, 한주, 한 달, 일 년 그리고 일생에 주제를 달아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첫 여행지는 잉글랜드다. 1209년 옥스퍼드 출신의 학자들에 의해 세워진 케임브리지 대학은 도시 전체에 31개의 캠퍼스가 흩어져 있는 독특한 곳이다. 뉴턴이 만유 인류의 법칙을 발견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를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이 세상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이 도시의 도서관은 고풍스럽다. 가족이 방문한 도서관 소개 후 여러 장으로 실려 있는 책 전시 사진은 창문밖에서 한 집안의 정경을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들어가 보고 싶고, 다정한 가족의 일상이 궁금해지듯이, 수많은 책들의 엄호를 받아 편안한 소파에 앉아 그 삶의 안정감을 꿈꾸게 만든다.


브라이튼 도서관 놀이터를 소개하며 저자는 이야기한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책이 있는 놀이터가 키워낸다.’ 정숙이라는 무겁고 숙연한 분위기가 아니라 경쾌하고 밝은 놀이터 같은 도서관이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온라인에 빠져드는 분위기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책이 숨 쉬는 도서관에 아이들이 온몸으로 열정적으로 책을 대할 수 있는 매력적인 오프라인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낫다.


도시 전체의 화합을 위해 노인에게 책을 맡겼다고 칭한 폴커트 도서관도 인상 적이다. 도서관의 창살이 우리의 한지 창문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살아낸 인생만큼 경륜이 쌓인 노인들에게 도서관일을 배려한 문화를 통해 그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인간 또한 책으로 본다면, 수십 년을 살아낸 노인들이 담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도서관과 잘 어울린다.


세계 최고의 도서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 불리는 더브린 도서관이 해리포터 촬영지가 된 이유를 보여준다. 파리의 3대 아름다운 도서관이라 불리는 마자린 도서관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도서관이다. 대학시절 파리를 갔었지만, 관광지만 돌아다녔다. 도시의 도서관을 가보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미숙했고, 세상을 보는 눈이 없었던 그 시절은 풋풋한 푸성귀 같은 여행을 했다. 그래서 삶의 가치관이 변하는 큰 이변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지혜로운 여행자의 철학과 지식들이 여행을 통해 더 큰 생각의 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결국 여행이 걸어 다니는 독서가 된다.


사람이 큰 상자를 얼굴에 뒤집어쓴 듯한 루이 누세라 도서관은 웃음을 선사한다. 책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얼굴 위로 번지는 잔잔한 미소가 아닐까. 차별이 가장 적은 나라라 불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24시간 오픈된 서점 이야기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24시간 편의점이 아니라 도시 곳곳에 24시간 도서관이 오픈되어 있다면 어떤 삶의 무늬를 만들어 낼까. 지식에 목마른 사람들이 물가를 찾듯 모여들고, 갈 곳 없는 이들이 책을 통해 위안을 받고 다시 세상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어갈 수 있는 원동력을 주는 곳이 될 수 있으리라.


노벨을 떠올리는 스톡홀름 공립 도서관에 자리 잡은 ‘코믹스 헤븐’에는 수많은 만화책들이 고전의 책들과 함께 주인으로서 대접을 잘 받고 있다. 책들의 다양성을 인정해 줄 때 상상력의 한계가 없어진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듯하다. 영어를 잘하는 나라로 알려진 핀란드의 헬싱키 도서관은 함께 사는 사회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도서관은 책, 카페, 보드 게임, 음악 감상, 미술, 설계, 심지어 재봉틀까지 공유하는 공간으로 삶의 생기를 마음껏 소리 내도 좋은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도서관들이 도시를 닮은 건지, 도시가 도서관을 닮아 가는 건지 모르겠으나 세계 속 도서관들은 그 도시를 잘 표현해 주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준비하는 동안 잠깐씩 들러 책을 볼 것 같은 로바니 에미 도서관에서 저자가 아이들에게 주제를 정해가면서 글을 쓰도록 유도하는 여행 이야기가 담겨있다. ‘쓰는 맛을 알면 읽는 맛은 당연한 맛이 되고, 문해력은 물론 말대꾸하는 실력까지 일취월장이다.’ 읽기에 흥미가 적은 아이들에게 쓰기를 통해 읽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쓰는 맛이 읽기 맛을 끌어당기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하이든, 체르니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를 배출한 오스트리아의 빈과 잘스 브루크 도서관 이야기에서 서점 주인들의 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들려준다. 저자가 이야기 하듯이 ‘태도가 경쟁력이다’라는 것을 너무도 잘 보여주는 서점 주인들은 지적 세계로 안내하는 안내자 역할로 오랜 세월 살아온 것 같다. 세계적인 음악가를 배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끈 작은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독일 퓌센 박물관 이야기와 함께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주인이었던 루드비히 2세 이야기는 처음 접했다. 음악가 바그너를 사랑해 아낌없는 후원을 해주었고, 동성애자로 결혼도 하지 않았던 루드비히는 41세의 나이에 자신의 은신처로 삼고 싶어 했던 성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암살되었다. 성소수자와 성전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뒷바침해준 배경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1968년 소련으로 독립하기 위한 평화 시위가 무력으로 탄압되었던 프라하는 1989년 11월 평화 시위인 ‘벨벳 혁명’으로 독립을 이루어 냈다. 프라하의 도서관의 책들이 마치 쟁가처럼 쌓인 장면은 누적된 역사의 힘이 산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을 포함해 예술을 즐기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 물질보다는 정신의 풍요를 갈망한다는 저자는 부타 페스트 도서관 또한 멋스럽게 소개해 준다. 사진 속 도서관들은 진한 커피 향 같은 느낌을 준다. 푹 빠져들어 향기를 맡고 모든 책들을 눈과 머리로 만나고 싶다는 갈망을 준다.


물가가 비싼 스위스 제네바의 도서관은 이를 보상해 주듯이 대학의 모든 도서관이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입장을 허락한다고 한다. 제네바는 대학 도서관의 기능이 유달리 활약하는 도시라고 한다. 초등학교 운동장 개방으로 근교의 주민들이 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함께 사용했듯이 대학 도서관 또한 일반 시민들과 함께 빌려 볼 수 있는 공간의 확장이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다. 체르마트 도서관에서 들려주는 저자의 깨달음도 전염이 강하다. ‘책 하나가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읽힌다는 건 자연의 섭리보다 경이로운 일이다.’


도서관 서점이 많은 베네치아 이야기는 치열하게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타인들이 안달복달 그곳에 앞다투어 몰려들고, 베네치아만 연구한다는 작가를 만들어 낸 것 같다고 한다. 전통이 지닌 힘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전통과 역사를 잘 이어받는 일이 결국, 세계적인 국가를 만드는 힘이 된다. 김구 선생님의 문화 강국에 대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것을 잘 지키고, 이를 멋스럽게 알리는 일들을 통해 가능해질 것이다.


인간이 책을 지키고, 책이 인간을 지키는 한 책은 영원할 것이다.’ 바티칸 시국의 절대힘을 느낀 저자가 마지막 여행지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가족처럼 모여있는 책들이 아름답고, 그 책을 담아내는 공간이 감사하고, 그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도록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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