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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아는 만큼 보인다]- 유홍준

by 조윤효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책에서의 단 한 줄이 한 권을 읽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살고 있는 우리 땅에 대한 사랑이 생기면, 전국 곳곳의 유물들이 이 궁금해지고 그리고 관련 공부를 하게 된다. 알면 재미가 있고, 재미가 있으면 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저자처럼. 30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찰과 탑, 정자뿐만 아니라 지역의 특징까지 알려 주고 싶어 한 저자의 책은 물려줄 귀한 자료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권의 다이제스트 판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의 책이 바로 저자의 인생 같다. ‘당신의 삶은 어떠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처럼 명확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책이 또 있을까. 저자가 써 내려간 책들이 그의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선조들이 살아낸 땅, 우리가 살아가는 땅 그리고 우리 후손들이 누릴 땅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전국토가 박물관이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긴 여행 후 결국, 그 파랑새가 자신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명절이나 휴가철에 외국을 여행하기 전에, 우리 땅 곳곳에 숨 쉬는 조상들의 손길을 담고 있는 문화유산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 우리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있을 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해, 창의성과 독창성이 생겨난다.

문화의 내재적 가치가 중요한 시대다. 문화유산의 미학이 타인들의 새로운 문화 창조의 밑거름이 된다는 저자의 서두글은 ‘왜 다시 우리 문화에 눈을 두어야 하는가’를 알게 해 준다.


1부의 ‘사랑하면 알게 된다’는 편은 영암, 강진, 안동, 담양, 청풍, 정선, 설악산, 한라산을 저자의 애정 어린 눈으로 소개한다. 문화유산의 가치와 우리만의 독특한 특색을 읽으면서 사진을 보니, 모든 사진들이 더 멋스럽게 다가온다.


2부의 제목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제목은 우리 조상들이 추구해 온 가치관이 담겨 있다. 삼국사기에서 소개된 김부식의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검이불루 화이불치)’는 백제의 궁궐 건축 양식이 추구하는 이상이다. 영주, 경주, 서산, 부여, 서울의 종묘까지 귀하지 않은 유물이 없다. 책은 정자와 탑에 대한 소개가 상세히 잘 담겨있다.


들판이 넓고 평평한 산이 가깝게 다가오는 강진땅은 올해 지나가듯 들렀던 곳이다. 유배객의 귀양지로 가끔 역사책에 나왔지만 알고 있는 정보가 적다 보니, 그곳을 보는 눈이 없어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누운 사람의 등허리 곡선처럼 느슨하면서도 완급과 강약이 있는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저자. 땅이 잘 익은 홍시 같은 색이라 놀랐었고, 독불장군처럼 우 뚝 솟아있는 월출산은 눈을 사로잡았었다. 저자의 말처럼 완벽한 풍경화를 땅이 품고 있는 곳이다.

17세기에 만들어진 ‘도선 국사비’는 4.8미터의 거대한 거북 비석이다. 17년 동안 만든 그 정성이 비석에 담겨 있다.

가난하지만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 다움을 보여 주는 ‘무위사 극락 보존’은 조선초의 지어진 목조 건축이다. 이런 문화유산을 알아보는 눈이 있을 때, 남도의 봄은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해질 것이다.


200명이 앉을 수 있는 안동의 ‘만대루’는 자연풍경을 액자로 삼고 있다. 통나무로 깎아 만든 비스듬한 계단이 투박하지만 재치가 넘치는 사다리다. 사진들은 독자의 눈길을 머물게 만든다.

‘인간은 사물을 통하여 언어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반대로 언어를 통하여 사물을 인식한다.’

담양의 제월당은 사랑채와 서재를 겸한 곳이다. 그곳에서 책을 읽는 다면 어떤 느낌일까.


충주댐이 담수되면서 청풍면 전체가 수몰된 호수가 된 청풍호의 자연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한의 3대 누각인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 그리고 청풍의 한벽루라는데 이중 한벽루의 3단식의 정자는 독특하다. 고을 사람들의 만남과 휴식의 공간이 되고, 나그네의 쉼터가 되는 정자는 문인 묵객들이 읊은 좋은 시들을 현판으로 새겨 걸어 놓고, 누정 문학을 발달시켰다.


한국, 중국, 일본의 정자와 도자기 비교를 통해 우리 문화의 특색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위풍당당하고 권위적인 중국 정자, 정원의 다실로서 건축적 장식성이 뛰어난 일본 정자 그리고 삶과 유리되지 않고 생활 속 공간에 자리 잡은 우리 정자는 서민 친화적이다. 형태미가 강하고 권위적인 중국 도자기와 색채 감각이 명랑한 일본 도자기는 선이 아름답고 친숙감이 드는 우리 도자기와 다르다. 생활 속에 파고드는 예술미가 진정한 아름다움 아닐까. 예술이 서민과 동떨어진 곳에서 일부 특정 층의 전유물이 된다면, 그 존재 가치는 떨어질 것 같다.

한 국가의 문화적 이미지는 경제와 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스스로 이미지를 만드어 내는 시대다. 평범한 형식 속에 깊은 정감이 있는 한국미의 특징을 잘 살려낼 때, 세계적인 명풍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2012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은 지역과 세대를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전승되어 오고 있다.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고 재 창조가 가능한 유연성이 강한 노래가 세대를 타고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 큰 복이다. 정선 아리랑은 명절이면 가끔 매체를 통해 들었었다. 팝송이나 가요를 부르듯 우리 노래 아리랑도 아이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담하고 친근한 설악산 진전사의 삼층 석탑은 통일 신라 시대 만들어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묵묵하게 받아 낸 탑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 저자의 탑에 대한 설명들은 보는 눈을 선물한다.

당나라에서 익힌 불법인 선종을 서라벌로 돌아와 전파한 도의 선사의 사상이 왕건에게 영향을 준 것도 흥미롭다.

‘체제와 질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침의 능력이 중요하고 스스로 일가를 이룰 수 있다.’는 사상은 당대 호족에게 영향을 미쳤다.


명산을 그것을 노래한 시와 글이 있고 그 가치와 명성과 함께 명작은 뛰어난 명품해설이 더해져 그 내용이 풍부해지고 더욱 가치가 살아나게 되듯이 애국심은 국토 사랑에서 나온다.’

한라산 초입의 짙은 숲 사진은 구례 사성암 새벽숲과 닮아 있다. 여름 새벽녘 안개 낀 깊은 산속은 신령한 힘을 담은 듯 보인다. 아등바등 뛰듯이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다 품어줄 듯 넉넉한 자연의 품이다. ‘한라산은 산이면서 또한 인간이 살 수 있는 넉넉한 땅 6억 평을 만들어 주는 명산이다.’ 아낌없이 주는 산은 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산신에 대한 신적 대우를 해준 것 같다.


1917년 한라산에서 구상나무 종자를 가져가 자신의 식물원에서 구상나무 변종인 Korean fir를 키워내 관광수나 공원수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로 많은 수익을 만들어 내고 있는 영국 식물학자 윌슨의 야야기가 인상 깊다. 종자의 보존 또한 중요한 자원이 된다는 것을 알려 주는 듯하다.


한라산의 높이 1,950 m. 독일인 지그프리프 겐터가 1901년에서 1902년까지 ‘코리아 지그프리프 겐터 박사의 여행기’를 썼다고 한다. 그 당시 한국을 방문해 아네로이드 기압계로 측정한 한라산의 높이를 여전히 우리가 쓰고 있는 것이다. 내 손안에 든 보물은 갈고닦아야 빛이 난다. 남의 손에 든 보물에 눈길을 주느라 내 손안에 든 보물의 가치를 떨어트려서는 안 된다.


경주의 감은사터 전경을 비춰주고 있는 ‘감은사터 쌍탑’은 강한 인상을 준다. 화강암으로 탑을 만든 우리나라는 분명 석탑의 나라다. 중국은 벽돌탑, 일본은 목탑이라고 한다. 우리 만의 색을 잘 간직해서 그런지 불국사 전경은 외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신라 경덕왕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아들을 낳으면 위태해진다는 말을 듣지만, 아들을 낳은 경덕왕은 통일 신화 문화의 꽃을 피운 예술의 왕이였다. 결국 아들로 인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 불국사, 석굴암, 석가탑, 다보탑, 에밀레종 등등 국립 경주 박물관의 불상과 불교 관계 유물 중 뛰어난 것은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자연석으로 초석을 깎는 것이 아니라 위에 얹는 장대석을 자연석에 맞추어 깎아낸 불국사의 그랭이법은 하나뿐인 독특한 구조라고 한다.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갖게 한다.


화강암 바위 아래 웃는 모습의 봉주보살 불상인 서산 마애불을 지키는 성원 할아버지 이야기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우리 것을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한국의 미가 보존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계 어느 역사 도시에도 한 도성 안에 법궁이 5개나 있는 곳은 없다고 한다. 문화유산의 보편성, 특수성, 전통과 현대성, 민속성과 국제성 모두에서 조선 왕조를 대표할 만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서울의 5대 궁궐은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다. 사랑하는 자가 지키는 자이고, 지키고 공부하는 자가 문화를 지속시켜 온 사람들이다. 수많은 우리 조상이 살다 간 흔적을 담고 있는 문화는 눈으로만 가볍게 스치듯 만나서는 안될 것 같다. 저자 덕분에 앞으로 만날 전국의 정자나 석탑 그리고 사찰들이 자연 속 역사와 문화책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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