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대하여] - 레프 톨스토이
'나는 진정 어떤 삶을 원하는가?’
책을 읽다 보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이 생긴다. 글을 읽어가며 톨스토이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생각은 책 속에서 살아 있다. 쓰는 행위는 불멸의 영혼을 갖는 것과도 같은 길이다.
길지 않은 인생은 실수로 얼룩지고, 상처를 받고, 다시 살아낼 힘을 찾아가는 과정 같다. 톨스토이 역시 쉽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열 살이 되기도 전에 부모님을 한 명씩 잃는다는 것은 평생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남기는 일이다.
책에는 35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생처럼 쉽게 이해되지 않는 글도 많다. 특히 기억에 남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인간 생명의 근본적인 분열’, ‘인생의 모순’, ‘세계인의 의식 분열’, ‘이성적 삶과 동물적 삶’, ‘인간 안에 있는 참된 삶의 탄생’, ‘인생의 참된 삶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발생한다’, ‘사랑은 참된 삶의 유일하고 온전한 활동이다’, ‘죽은 사람의 생명은 이 세계에서 중단되지 않는다’, ‘죽음의 공포는 해결되지 못한 삶의 모순에 대한 의식일 뿐이다’, ‘사람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속한다고 느끼는 생명 속의 행복, 즉 오직 자기만의 행복이다’.
하지만 자기중심적 사랑과 행복은 늘 한계에 부딪힌다. ‘나’라는 존재를 지탱하는 관계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를 파괴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무한한 개체들 사이에서 개체로서 자기 행복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삶은 악이자 무의미하다. 참된 삶은 그런 것이 될 수 없다.’
결국 타인과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추구할 때 비로소 참된 삶에 가까워진다는 말이다.
‘삶이란 탄생의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존재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삶을 온몸으로 기록하며 살아가는데, 늘 두 가지 자아가 갈등한다. 동물적 삶과 인간적 삶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나아간다. 먹고, 마시고, 자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동물적 삶과 인간의 지혜와 지식을 이끄는 이성적 삶 모두가 인생을 이루는 퍼즐 조각들이다.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에게 존재의 시간적·공간적 움직임을 멈추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필연적으로 죽음으로 끝나는 동물적 생존의 허망함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말한다. 동물적 자아가 추구하는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 인생의 법칙이라고. 삶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인생은 인간적 행복을 얻고자 하는 노력이며, 인간적 행복을 향한 그 노력 자체가 곧 인생이라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조언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의 행복을 동물적 자아의 행복으로만 이해한다고. 동물적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버리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인간의 유일한 이성적 활동인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면 된다는 간단한 진리를 가르쳐 준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 사랑은 미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활동이다. 지금 사랑을 드러내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라는 말이 강하게 남는다.
지금 사랑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는 힘이 자라날 것이며, 동물적 자아의 행복을 내려놓을 용기도 생겨날 것이다.
‘사랑이 참된 삶의 유일하고 온전한 활동이다.’
가슴속에서 사랑을 피워내는 힘이 결국 참된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내가 속한 지역과 나라, 지구별, 그리고 무한한 우주에 대한 사랑이 참된 삶으로 가는 길을 밝혀 줄 것이다.
거짓된 관점의 삶은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고, 참된 관점의 삶은 자신 안에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생명에 대한 의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 안의 생명력을 인식하고 품어야 타인의 생명력 또한 존중할 수 있다.
육체적 죽음은 공간에 한정된 육체와 시간에 한정된 의식의 파괴일 뿐, 삶을 이루는 세계와 존재들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파괴하지는 못한다. 육체의 죽음은 찰나지만, 관계로 이어진 의식의 죽음은 느리고 더디다.
우리 몸을 지탱하는 의식은 하나가 아니다. 몸속 세포가 몇 달 만에 교체되고, 작년의 내 몸이 올해의 내 몸이 아니듯, 의식도 수도 없이 변한다. 하나의 육체가 없듯, 인간 안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하나의 동일한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거짓된 관념에 갇힌 삶의 작은 일부분만을 인생으로 받아들일 때 생긴다는 톨스토이의 관점은 윤회의 개념과도 닿아 있다. 백만 년의 시간적 단절과 잠자는 8시간의 단절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사람이 생명을 소유하려면 생명 전체를 취해야 한다. 시간과 공간 속에 드러나는 작은 일부만 취해서는 안 된다. 전체를 취한 자는 더 받게 되며, 일부만 취한 자는 가진 것마저 잃게 될 것이다.’
인생이 잠시 머무는 정거장이고, 사후 세계는 더 큰 우주적 시간을 가진다는 믿음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조급해지지 않고 더 큰 관점으로 삶을 바라볼 때 우리는 더 성장한다.
‘삶은 세계와 맺은 관계이다.’
삶은 멈추지 않는 흐름인데, 사람이 사랑을 품고 세계와의 관계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삶이 정지된 듯 느껴지고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죽음은 이런 사람에게만 보이고 두렵게 느껴진다. 사랑을 자산처럼 불려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사람의 생명은 이 세계에서 중단되는 것이 아니다. 내세를 믿는 것은 인생의 과업을 성취하고 이생에 들어맞지 않는 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맺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사랑’이다. 사랑이 넘치는 마음은 어떤 재테크보다 중요한 능력이다. 사랑하고, 표현하고, 전파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노년의 삶을 평화롭게 만든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 흔한 단어 ‘사랑’이 인간 삶의 가장 큰 기둥이라는 것을. 톨스토이 덕분에 문학에 대한 내 사랑도 함께 커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