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있어야 되고 없어야 되는 그 선까지만.

by 레미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의 교권(敎權) 추락을 걱정한다. 체벌이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 등이 금지되거나 극히 제한되면서 학생들이 교사들을 무시하며 난리를 쳤다는 뉴스는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내 주변에도 교권이 땅바닥에 추락했다며 혀를 차는 어르신들이 많은 것 같다. 수업 중에 딴짓하다가 지적하면 자길 건드렸다고 삿대질을 하거나 교실을 뛰쳐나가는 학생들이 있고 그들을 통제할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는 선생님들의 마음 또한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교직에 오래 있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답답한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학부모로써 이 사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복잡하다. 일정 부분은 동의하는데 그렇다고 전적으로 동의하기도 그렇다. 왜냐하면 과거의 교권 또한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교권을 위해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 훈육을 빙자한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이 책상 위로 무릎 꿇고 올라가 허벅지를 맞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남학생들은 엎드려뻗쳐 상태로 수십대를 두들겨맞는 건 다반사고, 뺨을 호되게 두들겨맞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공부를 못하거나 숙제를 못해왔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지시대로 잘 못 따른다고 수업을 듣지 못하게 교실 밖으로 혼자 내쫓아 버림으로써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흔했다. 온갖 불이익을 교사가 맘대로 줄 수 있으니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힘들까봐 맘대로 항의도 못하는 시대였다.

몇 년 전에 아버지께서 내게 해주신 얘기가 있었는데, 어릴적에 선생님한테 별것도 아닌 잘못인데 내가 너무 많이 맞았단다. 근데 이유가 봉투를 안 줘서 그렇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으시고 몰래 선생님 댁까지 찾아가서 한 장을 주고 오셨다고 한다. 수십년이 지나서 들어도 천불이 나는 얘기다.

지금의 교권이 너무 떨어졌기에 문제가 심각하다면 과거의 그런 교권이라는 것을 다시 불러오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공동체를 위해서는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믿었던 과거의 의식 수준과 지금은 다르다. 그런 폭력적 권위를 세워서 통제하는 방식은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절대 필요하지 않다. 물론 지금만큼의 교권 추락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그 시절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교권보다는 좀 더 추락을, 현재의 교권보다는 좀 더 상승을 원한다는 게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면 극단적인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A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B가 정답은 아니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것도 좋지만,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인간 자체가 부족함이 있고, 그 인간이 만드는 것이니 완벽한 체제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서로 배우고 서로 나눔으로써 최대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교육체제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싸우는 아이들한테 말리지 말라고, 말리면 더 싸우고 싶어한다고 그냥 냅두라고 하는 교사, 아이들의 노트를 들춰보며 공부 잘하는 학생과 잘 못하는 학생의 차이를 공개적으로 비교하는 교사, 교과서나 노트 준비가 미흡한 아이가 있다면 공부할 자격도 없다며 다 보이는 학급 앞에다가 세워놓고 수업시간에 무릎 꿇고 청소를 시키는 교사, 그 쓰레기같은 선생이 내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담임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 사람이 살아 있다면 그 시절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만큼 몸과 마음 모두 고통스럽게 죽기를, 죽었다면 지옥에 가고 두 번 다시 살아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시절의 교권 또한 두 번 다시 살아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