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by 레미

굴. 과거 내가 먹지 못했던 녀석. 나를 괴롭히던 음식의 이름이다. 이상하게도 먹으면 왠지 역하고 힘들어졌다. 요리법을 다양하게 바꿔보며 먹으려 노력했지만 어떤 요리법이든 간에 그 냄새와 맛이 넘기기가 힘들어서 먹지 못했다. 이것저것 가리거나 식성이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은데, 그냥 있는 걸로 아무거나 잘 먹는데도 이상하게 먹히지가 않았다. 몇십 년을 그렇게 살다보니 그냥 이것은 내 몸에 안 맞나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굴뿐만 아니라 바다내음이 강한 재료는 거의 다 잘 먹지 못했다.

언젠가 이런 적이 있었다. 초대받아서 간 자리가 하필이면 굴 전문점, 메뉴 또한 굴 코스요리 집이었다. 재수가 정말 없는 날이었다. 초대하신 분이 본인 스스로가 많이 다니신, 검증된 곳에서 정성을 다해 접대하신다고 초대하신 건데 도무지 못 먹는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날 정말 억지로 먹었다. 다행히 게워내지는 않았지만, 그 역함과 느낌이 도무지 가시질 않아서 계속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다.

처음에는 대체 왜 이럴까 생각해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못 먹나보다 했을 뿐, 사실 그리 먹고 싶은 것도 아닌데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그런데 십여년 전 어느 날, 당시 내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가 자기가 애정하는 단골집이라며 보쌈집에 나를 데려갔는데 아뿔싸, 그곳의 베스트 메뉴가 다름아닌 굴보쌈. 아직 연애 초기라 서로의 식성을 잘 모를 때였으니 일부러 날 괴롭힐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데려간 것인데 나로서는 난처했지만 어쩌겠나. 사랑의 힘이라는 위대한 추상적인 감정의 힘으로 이겨내보리라 하고 젓가락을 들어 입안에 가져갔는데, 그날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며 신세계가 열렸다.

놀랍게도 굴이 너무나 맛있게 입속으로 잘 먹혀들어갔다. 30년을 못 먹었던 녀석이 너무나 쉽게 술술 넘어간다. 고기보다 굴을 더 많이 먹은 것 같다. 보쌈집에서 고기보다 굴을 먼저 다 먹고 굴을 추가했으니 말 다했다. 사정을 모르는 와이프는 잘 먹는다고 좋아하며 자주 오자고 했지만 나는 입안에 느껴지는 굴 특유의 오묘한 맛, 그리고 내가 이것을 먹을 수 있었다니에 대한 쇼크로 인해 정신을 못 차려서 그날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술 한 방울 마시지 않는데 그날은 술을 대짝으로 퍼 마신 기분이었다.

그 이후, 와이프에게 솔직히 얘기했다. 사실 내가 이런 것을 못 먹는데 그날은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시작은 억지였는데 끝은 맛있는 당혹감이었다 등등의 얘기. 그리고 우리는 결론을 얻었다. 특정 음식을 못 먹는 것이 아니라, 바다내음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비린맛이 나는 것을 못 견뎌했던 것이다. 신선하지 않은 굴은 말할 것도 없이 강한 비린맛이 있는데, 그때 그 보쌈집에서 나왔던 굴은 압도적으로 신선했기 때문에 비린맛이 전혀 없어서 내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신선한 재료를 잘 먹으면 되는 문제였다.

다행히 내 아내는 과거나 지금이나 현명하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다. 나의 식성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신선한 재료를 집에서 요리할 때 외에는 밖에서는 내가 못 먹는 식사를 강요하지 않았다. 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는 것이 더 싫다는 대답으로 내 마음을 안심케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안 먹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고 집에서, 신선한 재료를 요리해서 먹을 때는 메뉴를 가리지 않고 맛있게 잘 먹었다. 혹시나 그날따라 재료가 비린맛이 심해서 먹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난 이거 못 먹는다고 단정짓고 먹지 않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나 또한 아내가 싫어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그 이유가 뭔지 파악해서 설령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아내가 나 때문에 불편한 식사를 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편식을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니 이녀석이 예전에 잘 먹었던 것도 먹으려 하지 않고, 자긴 이거 싫다고 표현하는 것이 많아졌다. 하지만 예전에는 고개만 휙 돌리거나 맛없다고 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왜 싫은지 설명을 할 정도는 된다. 질긴 거나 끈적한 촉감이 싫다거나 등등의 이유를 대면 그 원인을 찾아 최대한 제거한 상태로 다시 먹이려 노력한다. 물론 항상 성공하지는 못하지만, 최후의 방법으로 부모들의 영원한 치트키인 오므라이스와 볶음밥이 있으니 결국 어떻게든 먹이는 데는 성공할 수 있다.

물론 편식하지 않고 잘 먹어주는 것이 제일 반갑기는 하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는 얘기를 믿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어떻게 하면 잘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식성이 까다로와지면 사회 생활 못한다는 걱정은 없다. 먹기 싫은 걸 말도 못한 채 억지로 먹이는 문화가 비정상이다. 먹지 못한다면 억지로 안 먹어도 된다. 다만, 몸의 건강을 위해 이런 방법을 택해서 먹으라고 가이드를 해주는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다.

편식에 대해서 단순하게 하면 안 되는 행위 정도로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음식을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냥 먹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가장 단순하게 적용한다면 ‘맛이 없어 보여서’라는 어찌보면 아이답게 정당한 이유가 있다. 먹었는데 싫어한다면 어떤 이유가 있어서 싫어하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하니 맛없다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뿐이다. 그걸 부모들은 편식하는 어린이는 나쁜 아이라고 아무거나 잘 먹어야 큰다는 이론을 갖다붙인다.

아이가 먹기 싫어하는 부분이 뭔지 찾아보고, 그 부분을 억제시켜 대응해줄 수도 있다. 그것은 식성이 까다롭다고 무시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는 것이 잘못된 일임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음식 문제에서만큼은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 필요악이라는 명목으로 그 잘못된 일을 너무나 쉽게 자행하는 것이 아닐까. 왜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요리한다면 싫어하는 것을 먹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억지로 먹여봐야 상처만 남을 뿐이다. 그러면서 싫어하는 걸 좋아하라고 한들, 강압적으로 밀어붙인다는 말밖에 들지 못한다.

아이들의 편식은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싫어하는 이유를 알려 하지 않고, 그 원인을 찾아보려 하지 않는 부모들이 반성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