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귀천(貴賤)이 없다는 말이 있다. 물론 돈을 많이 버느냐 못 버느냐의 차이를 두고 사람의 인생을 걸고 하는 어떤 직업을 평가한다는 것은 인간의 오만함이다. 그런 기준이라면 얼마까지의 수익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부터가 모호하다. 남들이 존중해주는 직업? 엄연히 상대성이다. 남들의 상대적인 평가에 직업의 귀천을 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렇다면 수익의 고저유무를 막론하고 모든 직업은 다 귀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안타깝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인간의 직업에 귀천은 있다’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견해이다.
인간의 직업에 크게 두 가지 기준을 나누어볼 때, 귀천은 있다. 첫 번째 기준은 사람을 존중하는가, 존중하지 않는가의 차이다. 전쟁중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의 사명은 전투를 통해 적을 섬멸하고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니 따지고보면 사람의 생명을 경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인일지라도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군인으로서의 직업이 귀하다고 평할 수 있다. 무력에 취해 학살극을 자행하는 군인들이나, 이권을 위해 함부로 싸우면서 사람의 생명을 상하게 하는 조직폭력배들까지 직업을 수행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평가할 수는 없듯이 말이다.
반드시 죽지 않는 경우에만 사람의 생명을 존중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음식을 좋아하지만, 무턱대고 아무거나 먹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사람을 대접하려는 마음이 담긴 음식에 한해서 좋아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먹으면 안 되는 재료까지도 서슴없이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비양심적인 인간들 또한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부류이며 따라서 그들의 직업은 천하다.
항상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직업은 가치가 없다. 그것은 고금을 통틀어 마찬가지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 직업은 인간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 물질만능주의가 범람하고 있는 이 때에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고 돈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가 점점 직업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데, 부디 마음을 고치고 바른 태도로 자신들의 직업군에서 삶을 일구어 나가길 바라는 바이다.
두 번째 기준은 바로 나 자신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가, 일하지 않는가의 차이다. 맥락적으로 비슷하게 쓰이는 두 단어인데,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해 가치를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서 가지는 당당함이라고 한다면, 스스로와 스스로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지 여부에 따라 직업의 귀천이 나뉜다고 생각한다.
돈은 적게 벌 수도 있다. 일은 고될 수도 있다. 때로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직업이 다 고수익을 보장하지 않으며, 몸의 편안함을 보장해주는 직업은 냉정히 말해서 없다. 이 복잡한 시대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지식을 알고 계속해서 보충하면서 두뇌를 수없이 써야 한다. 육체노동도 고되지만,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집에 오면 피로감이 심한 것이 다 이유가 있다. 게다가 세상 모든 직업은 다 연결되어 있기에, 항상 이해관계가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간들끼리 충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직업이든 간에 자신의 직업이 무엇이고, 거기에 맞게 충실하게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직업을 귀하게 여기는가는 본인의 몫이다. 직업가치에 대해 본인 스스로 경홀히 여기면 그 직업은 천해진다. 무엇도 사람의 생명보다 우선되는 가치가 없다는 것을 가슴 속에 새기고, 내 능력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믿고 살아간다면 그 직업은 귀하다.
일례로,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가정을 챙기고, 집안 살림을 보살피는 ‘주부’라는 직업은 분명히 귀한 직업이라 생각한다. 일 안하고 푹 쉬고 논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누구 때문에 성장했는지도 모르는, 주부라는 직업의 가치를 모르는 몰염치하고 몰상식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흔들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본인이 스스로 주부라는 것을 직업으로 인정치 않고 나만 세상에 뒤처진 것처럼 여긴다면 이는 자신의 직업이 천해지는 효과를 낳는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나 자신이 지금 있는 곳에서 나의 능력을 발휘하여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그 가치를 믿는다면 지금 나의 직업은 그게 무엇이든 귀한 것이다.
대한민국 안에서도 가장 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이 풍부하며 고위층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을 필두로 하는 정치인들이 항상 욕을 많이 먹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사명감이 없고, 권력욕으로 점철된 이상한 자긍심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비난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귀한 영적 가치를 추구하며 영도해야 할 사람들이 자신들의 직업에 대한 가치를 경홀히 여기고 욕망에 휩쓸린 모습들을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그 사람이 그 직업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일한다는 이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다 귀한 직업이라 평가할 만하다. 반대로 이 기준이 없다면 그것이 어떤 직업이든 간에 다 천하다. 이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남과 나를 존중'하는 직업만이 귀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
과연 우리 주위에는 이런 귀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