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익숙함 속에 있는 새로움

by 레미

현 시대에 사는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SNS 시대의 폐해다. 매번 새로운 사진이나 영상으로 꾸며야 한다. 옷은 계속 새로운 걸로 바꿔입어야 하고 장소는 계속 새로운 곳에 방문해야 한다. 한번 방문해서 자기만의 인생샷을 찍고 나면 그곳은 더 이상 가치가 없다. 이제는 또 다른 곳이다.


젊은이들만 새로움을 찾는 건 아니다. 나이 드신 분들도 새로움을 많이 찾는다. 100세 시대에 옛날처럼 한 장소만 주구장창 다닐꺼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건강할 때 여기저기 보러 다니겠다며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 와중에 아이의 전두엽 자극을 위해 새로운 곳과 새로운 경험을 많이 시켜야 된다는 심리학까지 등장하며 부모세대와 아이들까지 이 문화에 가세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고 알아보고 다니는 것에 전 세대가 열중한다.


코로나 시대가 끝나가면서 다양한 해외여행상품이 홈쇼핑에 범람하는데, 특히 유럽 일정은 군대 훈련일정에 버금간다. 저 장소들을 하루에 다 방문한다고? 굳이 따지자면 서울부터 부산까지 한나절만에 다 훑겠다, 그리고 내일도 또 그만큼 간다, 이렇게 일주일이다, 이 말인데?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런 의문을 갖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다. 기왕 가는거 최대한 많은 장소를 다 보고 사진 다 찍고 다 남겨와야 하는게 당연한 상식인 것이다.


추억의 사전적 의미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이다. 개인적으로 덧붙이자면 (행복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그때를 떠올림)이 흔히 사용되는 추억의 의미에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슬프거나 괴로운 생각을 자신이 일부러 돌이켜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과연 저런 패키지 여행이 내가 생각하는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준답시고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와 경험들을 제공하는데 그것들을 다 떠올릴 수 있을까? 대부분 그때 그 장소에 갔었고 그런걸 했었다는 단순한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보다 무가치한 곳은 사진 없이는 기억도 남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어떤 장소나 어떤 경험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파악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보면서, 들으면서, 겪으면서 천천히 자신과 하나로 호흡하면서 그 감정을 공유해간다. 그것이 가장 완벽하게 이뤄지는 순간을 (만끽)한다고 표현한다. 만끽하게 되면 비로소 기억은 감정과 더불어 내 마음 속에 아로새겨지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으로 승화한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너무 짧게 다녀왔던 장소를 다시 가본다. 너무 짧았던 경험을 다시 해본다. 바쁜 와중에 돈과 시간을 봤던 곳, 해봤던 것에 쓰기 싫어도 한번 또 써본다. 어차피 지구상 모든 곳을 다 가볼 수 없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험을 다 해볼 순 없다. 돌멩이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억들 중에 하나라도 진짜 인생의 보석인 '추억'을 만드는 게 훨씬 이득이다.


익숙한 곳이지만 그땐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곳이 열린다. 익숙한 경험이지만 그땐 스쳐 지나갔던 감성이 다시 피어오른다. 비로소 나의 감정과 합쳐지게 되고 내 안에서 공유되어 마음 한켠에 자리잡는다. 어쩌면 인간의 가장 큰 장점은 반복할 수록 새로움을 찾아낼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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