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묘한 감정이 들어서 이상했다. 그때 봤던 그 느낌이 아닌, 새로운 기분이 많이 들었다. 박진감이 넘쳐서 정말 재미있게 봤던 액션씬인데 다시 보니 정리가 안되고 어지러웠다. 끝마무리가 아쉬웠던 것 같은데 오히려 여운이 남았다.
책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 보았을 때는 주인공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굽히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지를 보면서 응원하는 마음이 많았는데 세월이 지나 다시 꺼내서 보니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주인공이 자존심을 내세워 굽혀야 할때 굽히지 않고 본인 스스로를 수렁에 빠뜨리는 한심한 사람으로 보였다.
영화와 책의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변했다. 나의 가치관이, 나의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다.
그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육체의 체력만 변한 것이 아니라 정신도 변했다. 영과 육이 동시에 달라졌다면 다른 사람이나 다름없다. 같은 육체와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 뿐, 사실상 타인이라고 해야 한다. 타인의 관점으로 보니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인간은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지혜의 힘이다. 수천 년을 살아왔어도 똑같이 본능대로 살아가는 짐승들과 인간이 다른 위대한 점이다. 인간은 수없이 과거의 나를 기억 속에 묻는다. 그리고 새로운 나를 만든다. 그리고 살아간다.
이 이론대로라면 모든 인간은 다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의롭고 강직했던 사람도 과거의 명성과는 별개로 타락해 버릴 수도 있고, 반대로 과거에 악한 짓만 반복하던 사람도 법적인 대가와는 별개로 선한 삶으로 되돌릴 수 있다. 과거의 나를 소멸시키고 새로 창조한 내가 어떤 길을 가는가에 앞으로의 나의 삶이 결정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의 나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과거를 부정할 수는 없다. 과거로부터 나의 삶은 시작되어 왔고 그 과거의 삶은 내게 디딤돌이 될 수도,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붙들어야 할 가치가 있고, 과거의 나와 함께 없앨 가치가 있다. 우리의 변화가 본능대로가 아닌, 지혜롭게 분별하며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변화에 적응해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양면성이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고 싶다면 다시 보고, 다시 듣고, 다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자가진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나의 변화를 점검하는 시간은 예상보다 꽤 흥미롭다.
항상 꽃은 피었다가 지고, 지었다가 새로 피어난다. 인간이 꽃을 좋아하는 것은 자신들도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