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내가 결혼하고 부부로써 살아간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연애 기간이 길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아내에 대해 꽤나 많이 알았다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니 아내의 미처 몰랐던 부분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것도 인생의 묘미이자 즐거움이겠지만 당황스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부부가 되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일심동체의 사전적 의미는 한마음 한 몸이라는 뜻으로, 서로 굳게 결합함을 이르는 말이다.
나의 배우자는 다른 가정, 다른 환경,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아무리 짧아도 2~30년, 길다면 3~40년까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부부가 되었으니 갑자기 한 마음,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게 진짜 가능하다고 믿는지부터 묻고 싶다.
부부는 엄연히 이심이체(二心異體)가 맞다. 사전적 의미로는 두 마음, 두 몸이라는 뜻으로 서로 마음과 뜻이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냉정히 얘기해서 우리 부부에게는 사실이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모든 것에서 마음과 뜻이 같을 수는 없다. 나와 아내의 삶은 전혀 달랐으며 다행히 마음은 잘 맞았지만 가치관 차이에서도 많은 충돌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 부부는 이심이체의 사전적 의미처럼 살지는 않는다. 식사를 하면서, 집안일을 하면서, 차를 마시며, 뉴스를 보면서 많은 대화를 한다. 때론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관심사에 맞는 흥미로운 것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온가족이 함께 행복할 시간을 보낼 방법을 놓고 즐겁게 고민하며 계획을 세운다. 잘 때는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축복하고 함께 잔다. 자기도 안아달라며 보채는 귀여운 딸과 함께.
내가 손해본다고 생각한다면 거래관계다. 나의 가치관으로 상대를 변화시켜 나에게 맞추려고 한다면 그건 상하관계다. 이해하지 못하면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한다. 존중해주기 어렵다면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기다려주기 어렵다면 같이 얘기하며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배려'다.
내가 상대방의 가치관에 억지로 굴복하는 걸로 생각한다면 이는 나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으로 인식한 결과다. 물론 사랑이라는 이유로 정말 상대를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맞추도록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알고, 그 다름 속에 있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해결해가며 서로 채워주는 것, 그것이 '배려'다.
결혼이란 다른 가정에서 자라난 두 사람이 양가의 맛을 가져와, 새롭게 자신들의 관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상대의 가정이 지닌 맛, 그 맛을 먹고 자라 생긴 식습관을 무턱대고 부정해버리면 그것은 폭력이다. 그러나 이해하고 존중해주면서, 다만 서로의 건강을 생각한 옳고 그른 식습관을 얘기하면서 서로 맞춰간다면 그것은 배려다.
어쩌면 가장 쉽고 어려운 것은 배려와 폭력을 구분하는 그 경계선을 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