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

경쟁이 아닌 인정.

by 레미

현대 사회에서 일상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냥 경쟁이다. 옷을 입던, 밥을 먹던, 어디를 가던 간에 다 경쟁이다. 과거에도 인류의 일상은 경쟁이었지만 그때는 직위의 높고 낮음이나 재산 규모 등 특정 소유에 한해서였다. 지금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경쟁심이 이는 시대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 행위의 기반에는 어떤 상대에 대한 경쟁의식이 잠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SNS와 미디어의 과잉 공급은 우리의 사촌을 수천만 명으로 늘려놨다. 사촌 정도는 되어야, 그리고 땅 정도는 샀어야 그 사람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고 질투심으로 인해 배가 아팠다. 지금은 누가 뭘 먹고 뭘 입고 어딜 갔는지 스마트폰만 있으면 너무나 손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니 배가 남아나질 않는다. 자랑하려고 한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저 친구가 어딜 갔다왔으면 나도 갔다오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저 집 아이가 예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으면 우리 아이가 부러워하고, 우리 아이가 부러워하면 적어도 준하게는 해줘야 만족하는 게 부모 마음이다.


웨딩 관련 산업과 아동 관련 산업은 미래가 없다고들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비혼주의자들도 많아졌고, 아이를 아예 안 낳거나 한둘만 낳는 부모들도 많아졌으니 점점 고객이 줄어들 일만 남았고 그러니 하향산업이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려고 하면, 아이를 낳아 키우려고 하면 하향산업에 맞지 않게 규모가 커진다. 경쟁 때문만은 아니라고 하는데 내 사견으로는 경쟁 때문이다. 남에게 모든 것이 다 보여지는 시대다보니 경쟁심리가 쉬지 않고 발동한다. 평생 한 번 있다는 희소성까지 덧붙여지면 남들에게 보여주기 그럴듯한 결혼식 한 번 하고 남부럽지 않게 아이 한 번 낳아 키우려면 집안이 휘청한다는 말은 농담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심각하다.


무한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상대성을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런 시대의 경쟁에 계속 휘말린다는 것은 드라마의 유명한 대사처럼 이러다 다 죽는다는 말이 딱이다. 어차피 내가 수준을 높이면 상대도 계속 업그레이드를 해오는, 그리고 어차피 승자도 없이 패자만 남을 싸움이 아닌가. 남을 아무리 굴복시켜봐야 끝나지 않는다. 단, 이 싸움은 한 사람만 굴복시키면 종결시킬 수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을 굴복시키면 비로소 경쟁은 끝’이다.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남들을 비교하고 의식할 것 없이,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결과임을 인정하고 만족하면 된다. 오늘 내가 이런 옷을 입고, 이런 식사를 하고, 이런 곳을 다니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나 자신이 만족하면 된다. 최고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엄연히 상대성이다. 나 자신이 좋다고 인정하고 만족한다면 그걸로 끝이다. 내 아이에게 이것을 해 주고, 내 아이가 기뻐한다면 그걸로 족하다. 남들에 비해서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면 우리의 삶은 훨씬 평화로워진다.


지나친 사교는 마음을 병들게 만든다.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가두어두고 마음에도 없는 사치를 부리게 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사고방식이다. 자신의 자본과 능력을 헤아려서 남들이야 어떻든 간에 격에 맞는 소비를 지혜롭게 하는 것이 능력이다. 여러 모임을 다 따라다니면서, 아니면 남들에게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체면을 살리는 그런 문화는 이제 사라질 때가 되었다.


남들과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진짜 만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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