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면 이제부터 길고 긴 과정이 시작된다. 먼저 여행의 날짜를 정한다. 쓸 수 있는 예산 범위를 책정한다. 장소를 정한다. 그곳으로 이동할 교통수단을 정한다. 그 장소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대략적인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날짜가 되면 떠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참 쉽지만은 않다.
여름이면 워터파크, 겨울이면 눈썰매장 급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외치는 아이, 답답한 도시와 다른 자연친화적인 장소를 원한다는 뜻을 피력하는 아내, 맛있는 음식이 많으면서 볼거리 놀거리도 적당히 있는 장소를 선호하는 나. 장소 선정에서부터 이미 쉽게 결정되리라는 헛된 기대는 고이 접어 휴지통에 넣어버린다.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기에는 집이 너무 좁아서 불만이 있는 아이는 기왕이면 뛰어다닐 수 있는 넓은 객실, 아내는 적당한 객실 공간이면 상관없지만 청소상태가 염려되는 싼 곳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나는 두 발 뻗고 잘 공간만 있으면 상관없지만 사람 많이 부대끼지 않는 한적한 곳, 이런 취향의 차이는 숙소 선정 또한 쉽지 않다. 장소와 숙소는 물론이요, 식사도 교통수단도 선호하는 것이 방식 각자 다 다르다. 이 취향을 다 맞추려면 정말 여행지를 정하는 것 자체가 중노동이다. 일종의 불가능에 도전하는 기분이다.
사실 쉬운 선택지가 있다. 양보를 요구하면 된다. 다른 부분에서 너의 니즈를 채워줄테니 이 부분은 네가 양보할 것을 잘 협상하는 것이다. 여럿의 요구를 다 들어준답시고 고생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쉽다. 이른 바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는 전략적 접근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가능하면 이런 방법을 쓰지 않을 것이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 가족에게라면 더 그렇다. 말이 좋아 양보라는 말로 포장할 뿐, 사실은 ‘희생’을 원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수고로움과 고생을 원치 않으니, 상대에게 양보를 빙자해 희생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남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이 양보라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했었을 때 얘기이지 남이 요청하는 것은 강요적 희생이다. 스스로 했다손 치더라도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속에 양보했다면 그것 또한 희생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킨다는 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기본 소양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건 너무나 이(利)를 위해 편리함을 찾은 결과다. 더 많은 다수의 힘을 빌어서 소수의 불만을 누르는 가장 편리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물론 대통령 선거같은 모두의 이를 도저히 만족시킬 수 없는 선택지라면 다수결로 하는 것이 가장 옳은 선택이다. 그러나 몇 안 되는 가족 구성원들 사이, 그것도 모두가 즐겁게 시간을 보내야 할 여행에서 그런 선택을 꼭 해야만 할 선택지가 얼마나 될까? 누군가의 생명이나 건강에 직결된 문제가 아니고서야 그런 선택은 되도록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지를 선정하는데 꼬박 몇 개월이 걸린다. 올해 여름에 갈 휴가지를 놓고 작년 가을부터 수없는 조사와 토론이 벌어졌다. 여러 번,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 여러 번의 장소 선정과 장소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 수집, 그리고 변경하는 과정을 수십 번을 반복했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인데 벌써 여러 번 다녀온 것처럼 익숙하다. 조금 지칠 때도 있다. 여기다 싶어서 이곳을 알아봤는데 이것저것 보니 이런 게 걸리고 또 변경하는 것을 몇십 번을 하는데 지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교통수단부터 가서 먹을 식사나 놀거리, 볼거리 등을 알아보더라도 의견이 다르니 수없이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시간도 길게 걸리고, 많이 힘들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대부분 만족스럽다.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수없이 조사하고 체크하여 낸 결과물인 만큼 오차가 많지 않다. 오랜 시간 준비하며 같이 마음을 맞췄으니 이제부터는 누리는 시간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지만, 만약 그 사공들의 마음을 맞추어 한 방향으로 저어간다면 더 정확하게, 더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우유부단(優柔不斷)을 즐기는 것이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성급하게 결정하는 것보다 어물어물하며 느리게 결정하더라도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여행지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그 모든 것이 여행이라고 믿는다. 우리 가족은 또 느리게 천천히 계획을 세우며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