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성격이라도 어떤 곳에는 적성에 맞고, 어떤 곳에는 전혀 안 맞기도 한다. 이것은 어디 있든지 똑같은 효율을 내는 기계가 아닌, 상황과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효율을 내는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특성이다. 같은 도구라도 요리사의 손에 들린 칼과 사무원의 손에 들린 칼이 성분은 똑같이 철이지만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처럼.
그런 점에서 인간은 복잡하고 힘든 존재이지만, 그렇기에 더 매혹적이다. 적성을 찾으면 그 위치에서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인간의 매력은 모든 사람이 거부할 수 없이 빠져든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나 자신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그러나 적성에 관계없이 살면서 횟수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인간이라면 반드시 맡게 되는 직책이 있다. 바로 '리더'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리더란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지도자의 인도에 따라 공동체가 나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은 모든 동물의 특성이지만, 오로지 근력의 논리로 정해지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은 복잡한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자기 의지든 아니든 세상 속에서, 또는 가정 안에서, 때로는 직장 안에서 리더를 해야 한다. 단순히 누구의 지휘 아래서 시키는 것만 한다면 마음 편할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어떠한 위치에서든지 간에 리더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가 온다.
실제로 리더십에 대한 수많은 연구이론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리더십에 대한 관점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리더십에 대해 나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바로 '유리 리더십'이다. 그렇다. 사소한 언어적 자극에도 심신이 모두 영향을 받아 무너지는 나약한 사람들을 일컬을 때 쓰는 유리멘탈이란 단어에 쓰이는 그 유리다. 물론 범용적으로 쓰이는 유리멘탈이란 단어 자체의 리더십을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유리는 투명하기에 유리를 통해 다른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볼 수 있다. 내가 웃는 모습과 상대방도 웃는 모습이 같이 보인다. 그렇기에 숨길 것이 없고 속일 것이 없다. 리더가 바라보는 목표가 숨김없이 공동체원들에게 보여진다. 리더 또한 구성원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보이니 그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화하며 같은 비전을 공유할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절대 불변하지 않을 이상적인 리더의 가치관은 정직함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내 이론이다. 유리는 그 리더십 이론을 반영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다.
보통 처음에는 좋은 리더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나 점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 리더들은 대부분 그 유리가 '거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거울에 쓰인 유리는 자기 자신만 볼 수 있다. 자기 자신만 보이는 것이 문제다. 남을 비춰주지 않고 비치는게 자신뿐이니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변화와 상황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갇혀 살아간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은 있을 수도 있지만 거울 속에 갇혀 버리면 결국 이기심이라는 괴물에 잡아먹힌다.
하지만 굳이 거울이 필요할까?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바로 내 거울이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니까. 인간이란 나약한 육체와 정신을 지닌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완전성을 추구하는 불가능한 꿈을 존재다. 누군가의 길을 비춰주는 유리가 되는 나의 꿈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오늘도 거울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많은 리더들의 모습은 완벽하진 않아도, 최고일 수는 없어도, 그렇기에 더 순수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