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언론(言論) - 진실과 거짓의 가시광선
진실과 거짓의 가시광선이 있다. 이 가시광선 너머에 존재하는 빛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역사는 가시광선 너머에 있는 진실과 거짓을 탐색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어른들의 자기보존과 집단의 침묵에 대해 한 어린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라고 말한다.
어린이는 권력이 무엇인지, 어른들이 권력을 어떻게 유지하고, 그 권력을 지탱하기 위해 어떤 몸부림을 치는지 알지 못한다.
어른들에게만 보이는 ‘신비한 옷감’은 무엇일까.
가시광선 너머에 있는 그 옷감은 ‘일할 능력이 없거나 바보 같은 사람에게는 안 보이는 신비한 옷감‘이다.
권력과 또는 자본이 만들어낸 ‘신비한 옷감’을 걸친 이들은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서민들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비천한 것들’, ‘개, 돼지 같은 것들’, ‘어떻게 저런 옷들을 입고 살아가는 거지’
‘나 같으면 하루라도 저런 비루한 옷을 입고 사느니 죽어버릴 거야.’
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야! 옷은 추워서 입는 거야, 그리고 너희 벌거벗었어.”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평범하게 살던 여성인 카타리나가 언론의 선정적 보도와 사회가 만들어 낸 집단 편견에 의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여준다.
소설을 읽다보면 언론이 죄 없는 한 사람을 어떤 식으로 범죄자로 몰아가는지, 대중은 이런 왜곡된 언론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다.
카타리나는 언론과 대중들의 시선에 의해 육체와 정신 둘 다 산산조각이 난다.
카타리나는 결국 기자를 살해하고 경찰에 자수를 하면서 끝을 맺는다.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보듯 진실 앞에서 자기보존을 위한 집단 침묵도 문제이지만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언론처럼 함부로 남의 인생을 가지고 떠드는 것도 문제이다.
언론은 진실과 거짓 앞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언론이 흔들리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전체가 흔들린다.
자 이제는 한국사 이야기를 해보자.
청동기 시대로 들어서면 벼농사가 시작되어 생산량 증대에 의한 사유 재산이 발생한다.
사유 재산은 계급을 만든다.
계급이 만들어진 후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으로 구분이 일어나면 지배 계급은 자신의 지배 계급 구조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각종 제도를 만들어낸다.
법이 처음 제정되었을 당시에 일정 부분 지배 계급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인간은 권력을 쟁취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다른 사람보다 힘을 더 가지는 것이 생존을 위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유일한 상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달도 차면 기울고, 열흘 이상 붉은 꽃은 없다.
모든 권력은 쟁취하는 그 순간부터 기울기 시작한다.
권력을 잡으면 부패가 시작되고, 부패한 권력은 더 큰 부패를 낳는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두었다. 이를 언관(言官)이라 한다.
언관은 대간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역사적 지식은 바깥에서 들어오지만 역사적 지혜는 보통 안에서 만들어진다.
권력의 견제 장치를 통해서 배운 지식을 현재의 지혜로 만들어내는 일은 여러분들이 스스로 생각하면서 해 냈으면 한다.
군주제 국가에서 권력은 왕에게 집중된다. 왕에게 권력이 집중된 만큼 그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도 필수적이다.
왕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모두 그렇듯이 다른 사람의 평가가 두렵다.
왕의 평가는 기록으로 남는다. 왕은 이러한 자신의 기록이 두렵다.
조선 태종 4년(1404년), 사냥을 좋아하던 태종이 노루를 쫓다가 말에서 떨어졌다. 무인적 기풍이 있던 태종은 창피했을 것이다.
우리가 가끔씩 운동을 하거나 일상에서 너무나 황당한 실수를 하면 창피하듯이.
고등학교 때, 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는데 하루는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머리가 버스 바닥에 부딪힐 정도로 심하게 넘어졌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그냥 함께 타고 있던 여학생들이 쳐다보는 것이 창피할 뿐이었다.
태종의 마음도 나랑 같았던 듯싶다. 왕의 옥체가 혹시라도 상했을까 달려오는 신하들을 향해 태종이 처음 뱉은 말은 ‘사관이 이 일을 알게 하지 마라’였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사관에게 말을 하지 말라는 내용까지.
태종은 사관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했다. 아마도 태종뿐만이 아니라 모든 왕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따라다니면서 기록을 남기는 이들이 어찌 불편하지 않겠는가.
태종 1년(1401년), 사관 민인생이 편전에 들어왔다. 태종은 사관에게 “이곳은 내가 편안히 쉬는 곳이니, 들어오지 않는 것이 맞다”면서 “비록 궐 밖에 있더라도 어찌 내말이 그대에게 전달되지 못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사관 민인생은 물러나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臣如不直, 上有皇天”이라고 대답했다. 한자를 풀어보면 ‘신이 만일 곧게 쓰지 않는다면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국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사관의 의지가 말속에 그대로 서려 있다.
사관의 바로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 신문사의 예전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두려운 것은 오직 독자밖에 없습니다.”
사관 말고도 권력을 견제하는 기구에는 대간(臺諫)이 있다.
대간은 왕의 권력뿐만이 아니라 관리들이 직위를 이용한 권력형 비리를 감찰하는 기구이다.
대간은 관리의 탄핵과 감찰을 맡은 대관(臺官)과 간쟁과 봉박을 맡은 간관(諫官)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고려시대의 대관은 어사대, 간관은 중서문하성의 낭사에 소속되었고, 조선시대의 대관은 사헌부, 간관은 사간원에 소속되어 양사로 일컬었다.
그럼, 고려의 대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고려는 관리를 감찰하는 어사대를 두었다. 어사대는 관리들이 공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것에 대해서 적발하고 비리를 저지른 관리를 탄핵하는 기구이다.
중서문하성에 소속된 낭사는 간쟁과 봉박의 임무를 맡았다.
간쟁(諫爭)은 임금의 잘잘못을 고치도록 말하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사극을 보면 신하가 “전하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로 시작되는 말이 간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봉박(封駁)은 왕의 조지(詔旨) 내용이 합당하지 못할 경우, 이를 봉함하여 되돌려 공박하는 제도이다. 요즘의 예를 들면 대통령이 부당한 정책을 시행하려고 할 때 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는 행위이다.
감찰, 간쟁과 봉박은 고려시대 국왕과 관리들의 정치권력을 견제하는 제도였다.
어사대와 낭사를 합쳐 대간이라 하는데 대간에게는 특별한 기능이 새롭게 부여된다. 바로 서경(署經)이다.
서경은 고려 시대에 관리의 임명이나 법령의 제정 등에 있어 대간의 서명을 거치는 제도이다.
대관과 간관이 문무 관리를 임명할 때 수직자(守職者)에게 발급하는 고신(告身) 서경과 중대 사안에 대해 서명하는 의첩(依牒) 서경으로 구분된다.
서경은 관리 임명이나 법령의 제정과 개정 등이 국왕의 의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국왕이나 정조(政曹)에 의해 결정된 사항을 대간에서 다시 심사함으로써 왕권을 견제하여 부당한 인사나 업무 처리를 막는 기능을 하였다.
이러한 대간의 기능은 현재 언론기관이 맡는다. 현재의 신문, 방송 미디어 등이 이러한 권력 견제 기능을 가진다.
현재의 언론은 관리 감찰, 간쟁, 봉박, 서경 등의 업무 기능을 수행하거나 보조한다.
2022년 8월 어느 기자가 도어테스핑을 하는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님, 파이팅!”을 외쳤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기자였다. 나는 맨 처음 이 뉴스가 가짜 뉴스인줄 알았다. 기자의 말은 내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일이었다.
기자가 대통령님 파이팅을 외치는 것은 학교의 선생님이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과 같은 직업윤리에 대한 배신이다.
이 일에 대해 영국 저널리스트인 라파엘 라시드 기자는 이날 트위터에 관련 영상을 공유하면서 “대통령실 기자단 소속인 일부 기자들이 치어리더처럼 대통령의 발밑에서 굽실 거리는 모습이 민망스럽다.”고 꼬집기도 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언론은 권력을 견제하는 기구이지 권력을 도와주고 힘을 실어주는 기구가 아니다. 어떤 분들은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다. 이건 틀린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만약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으면 파이팅을 외친 기자는 기자라는 직업을 버리고 대통령 홍보실에 취직을 했어야 한다.
조선시대로 오면 대간의 기능을 양사(兩司)가 맡는다. 양사에 홍문관을 더하면 삼사(三司)가 된다.
삼사를 언론 삼사(言論三司)라고도 한다. 사헌부는 백관에 대한 감찰·탄핵 및 정치에 대한 언론을, 사간원은 국왕에 대한 간쟁과 정치 일반에 대한 언론을 담당하는 언관으로서, 일찍이 이 두 기관의 관원을 대간이라 불렀고, 양사 또는 언론 양사라고 하였다.
양사의 기능은 고려와 비슷하니 생략하기로 하고 조선의 홍문관의 기능을 살펴보도록 하자.
홍문관은 궁중의 서적과 문한(文翰)을 관장하였고, 경연관(經筵官)으로서 왕의 학문적·정치적 고문에 응하는 학술적인 직무를 담당하였다.
홍문관에서는 경연을 실시하였다.
경연을 요즘 말로 바꾸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의 학술•정책 토론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경연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왕이 똑똑하지 못하면 토론 진행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왕이 똑똑해도 정책의 일관성이나 정책 추진의 정당성과 명분이 약하거나 없을 경우 정책 추진 과정에서 관리들의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듯 토론은 정책의 추진과 폐지를 결정짓는 과정이었다.
만약 왕이 똑똑하지도 않고, 정책에 대한 정당성과 명분도 없는데 이를 왕이 밀어붙이면 이런 정치를 역사에서는 패도 정치라고 한다. 패도 정치의 반대 의미가 왕도 정치이다.
왕도정치는 군주가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태도로 정치를 운영하여 이상적인 사회를 수립하고자 하는 유교의 대표적 정치사상이다. 패도 정치는 현재의 독재 정치와 같은 의미이다.
단종을 폐위시키고 정치적 정당성과 명분 없이 국왕의 지위에 오른 세조는 경연이 불편하였다. 그래서 경연을 없앤다.
언론의 권력 견제 기능은 이렇듯 권력을 독점하려고 하는 세력에게는 불편함을 안겨준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폭군인 연산군은 언론 기능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신언패로 상징되는 연산군의 언론 탄압은 결국 중종반정으로 귀결된다.
신언패란 연산군이 신하와 내시들의 목에 걸게 한 ‘말조심’ 명패로, 언로(言路)를 차단한 상징이다.
신언패에는 이러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입은 화가 들어오는 문이요,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혀는 몸을 베는 칼날과도 같다.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安身處處牢(안신처처뢰) 어느 곳에 있으나 편안할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언론을 통제하는 이들의 최후는 항상 비참한데 매번 독재자들은 이 길을 가려고 한다는 점이다.
반대로 왕도정치를 추구하고자 했던 왕들은 언론의 기능을 확대하였는데 조선 정조의 격쟁이 대표적인 예이다.
격쟁(擊錚)은 조선시대 백성이 임금이 거둥하는 길가에서 징이나 꽹과리를 치며 원통한 일을 호소하는 민원 제도였다.
언로(言路)를 넓히는 일이 정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임을 정조는 알았던 것 같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백성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하는 것, 이것이 정치의 시작이다.
그럼 이제 시곗바늘을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려 현대사를 살펴보자.
현대사에서도 독재를 위한 언론 통제는 계속 되풀이 되었다.
이승만 정부 때 경향신문 폐간(1959), 박정희 정부의 기자 프레스 카드제 실시(1972), 전두환 정부의 언론 보도 지침(1980) 사건이 독재 권력의 언론 통제의 예이다.
이승만 정부의 경향신문 폐간 사건은 1959년 <경향신문>의 컬럼 '여적'(餘滴)에 실린 글로 인해 관련자들이 내란선동 혐의로 기소되고 경향신문이 폐간 명령을 받은 사건이다. 여적 필화 사건(餘滴筆禍事件)이라고도 한다.
여적 칼럼이 도화선이 되어 경향신문은 형법과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그해 4월 폐간 명령을 받았다.
이듬해 1960년 4∙19 혁명이 발생하여 이승만 정부가 전복되면서 1960년 4월 27일 1년여 만에 복간되었다.
박정희 정부의 기자 프레스 카드제는 국가가 기자의 자격을 실사∙허가하고 동태를 파악해 통제하는 제도로, 1971년 언론 자율정화 결의로 구체화되어 1972년 시행되었다.
쉽게 말하면 박정희 정부에 대해 호의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만 정부 기관에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박정희 정부는 프레스 카드제 실시 이후 유신체제 상황에서 또다시 언론통∙폐합을 단행하여 언론의 독과점을 촉진시키고,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하였다.
언론 통제의 피날레는 전두환 정부가 맡았다.
전두환 정부의 언론 보도 지침은 제5공화국 시절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계엄령 하에 1980년 7월 언론인 자율정화, 11월의 언론통•폐합에 이어 12월 언론기본법을 제정하여 언론통제의 기초를 마련하고, 일상적으로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계엄 하의 언론 검열단을 대체할 새 조직으로서 문화공보부 산하에 홍보조정실을 신설하였다.
보도지침은 정권 안보를 위해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이 매일 각 언론사에 은밀하게 시달했던 것으로 뉴스의 비중이나 보도 가치에 관계없이 사건이나 상황, 사태의 보도여부는 물론 보도방향과 보도의 내용 및 형식까지 구체적으로 결정, '가(可), 불가(不可), 절대불가'의 지시를 내렸다. 어떤 기사를 어떤 내용으로 어느 면, 어느 위치에 몇 단으로 싣고 제목도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하며 사진을 사용해서는 안 되고 또는 사용해야 하고 당국의 분석 자료를 어떻게 처리하라는 등 세부사항까지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특히 기사 크기에 대해서는 '조그맣게', '조용히', '너무 흥분하지 말고', '크지 않게', '눈에 띄게', '돋보이게', '균형 있게', '적절하게' 등의 표현까지 동원해 가면서 세밀하게 통제했다. 심지어 방송의 경우에는 9시 뉴스 큐 시트를 정무수석실과 홍보조정실로 보내 뉴스의 크기, 배열, 기자가 리포트하는 말까지 사전에 심의받기까지도 했다.
9시 땡하면 뉴스가 시작되면서 앵커의 첫 말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된다고 하여 ‘땡전 뉴스’라는 말이 생겼다.
최근의 언론 자유를 보면 새삼 놀랍다.
그러나 자유를 주면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버린 인터넷 언론은 언론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자기가 주장하는 것을 진실인 것처럼 꾸며서 왜곡 보도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요즘에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안목이 없으면 이런 보잘 것 없는 언론에게 이용당하기 쉽다.
그렇다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안목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언론은 권력과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며 진실의 갑옷을 입고 권력과 싸우는 투사(鬪士)라야 한다. 언론이 진실의 투사가 되지 않으면 권력과 함께 부패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은 말을 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잘 들어야 알 수 있다.
언론인도 국민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국민들의 삶이 어떤지를 잘 살펴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을 향해 언론인이 올바른 말을 할 수 있다.
정치인과 언론인이 각각 자기가 맡은 일을 잘 해 나아갈 때 우리는 가시광선에서 싹을 틔우는 진실의 빛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관 민인생이 태종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생각이 필요한 문장이다.
“臣如不直, 上有皇天”(신이 만일 곧게 쓰지 않는다면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