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토지(土地) -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니 참 기분 좋았죠.
달리는 일이 헛된
스펀지 같은 세상에 살며
정직한,
튼튼한 땅을 생각한다
발로 민 힘만큼 정직하게
속이지 않고,
그 힘만큼 받쳐주는 튼튼한 땅을 생각한다
달리는 것이 헛되지 않는,
온몸으로 달리는 이들을 받쳐주는
굳은 땅을 생각한다
- 박상천의 ‘땅’
역사의 진보를 이야기하려면 인간의 생산력 증대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역사에서 생산력은 거의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이렇게 증가한 생산력에 따라서 생산물의 양도 증가한다.
생산물의 분배 방식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가’는 역사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역사에서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이해하는 것은 경제사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다.
생산수단은 도구가 될 수도 있고, 토지가 되기도 한다.
생산물은 이 도구와 토지를 이용해서 얻어낸다.
마르크스의 계급적 관점에서 보면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을 부르주아지(bourgeoisie),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계급을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라 한다.
한국사에서도 지주(地主)와 전호(佃戶, 소작농)의 계급 관계가 있다.
지주는 토지를 가지고 있어 일을 하지 않고도 생산물을 얻는다.
전호는 토지가 없기 때문에 노동을 해서 생산물을 얻는다.
둘 다 생산물을 얻는 것은 같으나 얻는 방법이 다르다.
이러한 토지 운용 방식을 지주ㆍ전호제라 한다.
지주ㆍ전호제의 토지 운용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토지를 현재의 아파트나 상가(빌딩)로 바꾸면 된다.
이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월세를 내야하는 사람들은 소득 중 많은 부분을 월세로 지출하기 때문에 가처분 소득이 적다.
이는 경제생활의 질을 떨어드리는 주요 요인이 된다.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의 한숨은 월세를 포함한 한숨이었다.
매달 돌아오는 월세는 한숨의 시간을 조금씩 길게 늘어나게 했고, 그 한숨을 보고 자란 아이가 자가 소유에 대한 욕망을 강하게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집을 사야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슬로건이었고 성경이었다.
한국사 학습에서 토지 제도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 봐야 할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토지는 소유권과 수조권의 개념으로 구분된다.
소유권은 원칙적으로 왕토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왕토 사상은 국가의 모든 토지가 왕의 것이라는 개념이다.
그러나 왕토 사상은 어디까지나 관념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실제로는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다.
개인이 소유한 토지를 민전(民田)이라 한다.
왕토 사상은 국가가 민전에서 조세를 거두기 위한 관념적인 사상이다.
정리하면 왕토 사상은 국민이 자신의 땅(민전)에서 농사를 지을 경우 원칙적인 땅 주인이 왕임을 인식하게 하여 조세를 걷기 위한 관념적인 장치로 이해하면 된다.
수조권은 ‘조(토지세)를 걷는 권리’로 원칙적 소유권을 가진 왕이 수조권도 가지고 있다.
왕은 이 수조권을 관리에게 위임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지급한 땅을 과전(科田)이라 한다.
과전은 관리에게 과(科, 등급)에 따라 주는 수조권 토지이다.
과전은 관리에게 소유권을 지급한 땅이 아니라 수조권을 지급한 땅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민전은 다시 공전과 사전으로 구분한다.
민전 중 국가에 조세를 바치는 땅을 공전(公田)이라 하고, 관리에게 조세를 바치는 땅을 사전(私田)이라고 한다.
사전을 과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사전 중 관리가 아닌 이들(승려, 군인, 유가족)에게도 수조권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어 사전과 과전을 구분하기도 하는데 기본적인 한국사 과정에서는 사전을 과전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위의 그림으로 가지고 다시 설명을 하면 민전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땅이다.
농민A(공전)는 국가에게 조세를 바치고, 농민B(사전, 과전)는 국가가 지정한 관리에게 조세를 바친다.
보통의 조세는 생산량의 1/10이다.
관리가 가진 수조권은 지금으로 말하면 관리들의 월급인 셈이다.
시대에 따라 과전은 변화한다.
과전의 변화를 통해 국왕과 관리 사이에 정치·경제 역학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신라 시대에 관리에게 지급된 녹읍(祿邑)은 단어 그대로 관리에게 과전으로 마을(邑)을 통째로 주었다.
관리는 마을에서 조세뿐만이 아니라 노동력도 징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관리의 경제력은 강화된다. 관리는 강화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 영향력도 확대해 나간다.
신라 삼국 통일 이후 신문왕은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수조권만)을 지급하여 관리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국왕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관리에게 전지(논, 밭)와 시지(임야)를 지급하는 전시과라는 과전을 지급한다.
고려 토지 제도는 대개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였다. 개간된 토지의 넓이를 헤아려 기름지고 메마른 것을 나누고, 문무관리 군인 한인에게 등급에 따라 모두 땅을 나누어주었다. 또 등급에 따라 시지를 주었다. 이를 전시과라고 한다. 죽은 다음에는 모두 나라에 반납하였다. 군인은 나이 20세가 되면 비로소 땅을 받고 60세가 되면 반환하였다. 자손이나 친척이 있으면 땅을 물려받게 하고, 없으면 감문위(성문을 지키는 부대)에 소속되었다. 70세 이후에는 구분전을 지급하고 그 나머지 땅은 반환하였다. 죽은 다음에 후계자가 없는 자와 전사한 자의 아내에게도 모두 구분전을 지급하였다. 이밖에 공음전시가 있어 과에 따라 땅을 지급하여 자손들에게 전하게 하였다. 또 공해 전시가 있어 왕실, 궁궐, 여러 관청과 역에 지급하였는데, 모두 차등이 있었다. 뒤에 관리의 녹봉이 부족해지자 경기도 고을의 토지를 녹과전으로 지급하였다.
- 『고려사』
조선 건국 직전 위화도 회군(1388)을 성공한 역성혁명 세력들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공양왕 때 과전법을 실시(1391)한다.
과전법은 전직 관리에게도 수조권을 지급하였고, 수신전(부인에게 세습)과 휼양전(자식에게 세습) 등의 세습 토지가 있어서 시간이 흐르면서 과전 부족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이에 대한 조치로 세조 때 이르러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는 직전법(1466)으로 과전을 변경하였다.
16세기 중엽(명종, 1556)부터는 직전법마저 폐지하여 관리는 녹봉만 받게 되었다.
직전법 폐지로 조선 시대에 과전은 사라지게 된다.
과전법에서 직전법으로, 직전법에서 직전법 폐지로 변경되는 조선의 과전은 조선 관리들의 경제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여기에 더하여 답험 방식의 변화와 수조 방식의 변화가 관리들의 경제 상황을 이전보다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다.
답험은 농사가 얼마나 잘되었는지 살펴보고 연분을 결정하여 조세 액수를 정하는 것이다.
전주답험은 전주(관리, 수조권자)가 직접 답험을 하기 때문에 연분을 임의적으로 올릴 우려가 컸다.
이를 막기 위해 세종 때 국가가 작황을 파악하는 관답험을 실시한다.
전주 수조는 전주(관리)는 전주가 직접 조세를 받기 때문에 전주가 정해진 양보다 지나치게 수탈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성종 때 관수관급제를 실시한다.
관수관급제는 관청에서 조세를 거두어 전주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관수관급제의 실시로 전주는 수조권을 빌미로 더 이상 농민을 수탈할 수 없게 된다.
전주답험에서 관답험으로, 전주수조에서 관수관급제로의 변경은 관리들의 수조권을 축소시켜 관리들의 경제 상황을 어렵게 하였다.
이에 관리들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 개선을 위해 토지를 사기 시작한다.
토지 사재기 현상이 나타난 처음에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농민의 토지를 샀는데 이후에 토지 사재기 현상이 기승을 부리면서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양반들의 신분적 지위를 이용한 토지 약탈)해 토지를 소유하였다.
이를 지주ㆍ전호제의 확산이라고 한다.
관리들의 입장에서만 보면 퇴직 이후의 노후 대책을 위해 토지를 사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즘으로 보면 노후에 월세를 받기 위해 상가를 사거나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성종 12년 6월) 근래 가난한 자들이 세금과 빚에 쫓겨 급한 나머지 집과 땅을 부잣집에 구걸하여 팔아 버린다. 부잣집에서는 딱한 사정을 알고 값을 깎아서 산 뒤 15일이 지나면 물려주지 않는다. 토지가 모두 부잣집으로 들어간다. 부자는 날로 겸병을 더하고 가난한 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다. 모두 도망쳐 흩어지니 민호가 줄어들고 군역 대상자가 날로 줄어든다.
- 『성종실록』
(중종 28년 7월) 일반 백성으로 농지를 가진 자가 없고 농지를 가진 자는 부상대고(富商大賈)나 양반 사족뿐이다.
- 『중종실록』
토지는 유한하고 개인의 욕망은 무한하니 토지 사유화 현상의 진전이 토지의 가격을 올리게 된다.
토지가 자산이 되면서 토지를 가진 자는 더욱 잘살고, 토지가 없는 자는 더욱 어려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제 과거로의 여행을 끝내고 현재로 돌아와 보자.
아파트 가격이 올라서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는가?
계속 올랐으면 하고 바랐던 적은?
아파트 가격이 오를 때 자산이 증가하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면,
묻고 싶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제 자신들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아파트를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를 우리가 만들었다.
본인이 중요한가, 아니면 우리 아이들이 중요한가.
한국 현대사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등장하였다.
이것이 우리 아이들이 게으르고 무능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좋았을 것이다.
아파트 가격이 오를 때.
괴물로 변한 한국의 아파트가 우리 아이들의 통곡이 되어
부모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현재 우리 아이(청년)들의 처지가 조선 시대 소작농의 삶에 투영될 때.
죽은 역사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역사가 될 수 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 김수영의 <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