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 제도(制度)

4. 대동(大同) - 정의로운 세금에 관하여

by 이중석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 라이너 쿤체의 뒤처진 새





나는 군(軍)생활을 사단 신병 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하였다.

신병 교육대 6주차 마지막 훈련 과정은 항상 행군이다.

행군으로 모든 훈련소의 훈련 과정이 끝나기 때문에 조교들은 마지막 체력을 짜낸다.

행군은 훈련병들에게도 마지막 몸부림이다.

행군을 하다보면 훈련병들 사이에서 체력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체력이 약한 친구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뒤로 조금씩 뒤처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매 기수마다 동기 훈련병 중 한 명이 슈퍼맨처럼 등장해서 뒤처진 훈련병의 군장을 덜어주거나 아예 군장을 통째로 대신 들어준다.

다른 훈련병은 뒤처진 훈련병을 부축하기도 하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힘내자!”

‘힘내’와 ‘힘내자’는 다르다.

당시에 난 훈련병들이 이 차이를 알고 있다고 느꼈다.

왜냐면 거의 매 기수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훈련병들은 자신의 동기들 중에 누군가가 뒤처지면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런 일이 어쩌다보면 자신에게도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게 훈련병 동기를 떠나 사람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 같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살다보면 체력, 즉 경제력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개인의 능력에서 오는 차이일 수도 있지만 순전히 운 때문일 수도 있다.

부모의 경제력, 외모의 수준 등은 '우연한 운'으로 결정되는 것들이다.


A라는 청년이 있다.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시다가 큰 사고로 몸이 불편하다.

어머니는 얼마 전 암 진단을 받아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이 청년은 지금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B라는 청년이 있다. 아버지는 유명 로펌의 변호사이고, 어머니는 서울의 유명 대학교의 교수이다. 이 청년도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A와 B청년이 동등한 입장에서 사회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B청년이 A청년보다 유리한 이유는 B청년이 A청년에 비해 ‘운이 좋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제시한 롤스(Jone Rawls)는 분배 정의가 공정한 절차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롤스는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기 위한 이상적인 상황으로 ‘원초적 입장’을 상정한다.

(원초적 입장 : 정의의 두 원칙을 도출하기 위한 가상적 상황으로, 원초적 입장에 참여하는 합의 당사자들은 시기심이 없고 상호 무관심하며 합리성을 지닌다.)

원초적 입장에서 분배 방식에 합의하게 될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은 타고난 운이나 배경이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무지의 장막’이라는 장치를 사용한다.

이때 무지의 장막은 자신과 타인의 지위, 계층, 능력 등 우연적인 조건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마련된 공정한 절차로부터 도출된 정의의 두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제1원칙 : 각 개인은 기본적 자유에서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평등한 자유의 원칙)

∘ 제2원칙 :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조건을 만족할 때 정당화된다.

①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 (차등의 원칙)

② 불평등의 계기가 되는 직책이나 지위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야 한다.

(기회 평등의 원칙)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제2원칙인 차등의 원칙이다.

이에 따르면 모든 불평등은, 하물며 그것이 서로 다른 재능의 결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최소 수혜자에게 이익이 될 때만 허용될 수 있다.

이는 천부적인 재능과 능력의 분포는 우연으로 획득된 것이기 때문에 공동 자산으로 간주된다.

그 누구도 천부적 또는 도덕적으로 임의적인 요소에 의해 부당하게 대우받지 않는 사회, 이것이 바로 롤스가 말하는 공정한 사회의 핵심이다.

차등의 원칙은 천부적 혹은 사회적으로 불운한 최소 수혜자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고르게 조정하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수취에서 기울어진 운동을 고르게 하기 위한 노력을 볼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바로 대동법이다.


조선 시대 공납은 가구당 지역의 특산물을 징수하는 세금이다.

세금을 걷는 기준은 가구이고, 징수 품목은 지역의 특산물(현물)이다.

가구를 기준으로 세금을 걷을 때에는 원칙적으로 빈부격차를 고려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세금 징수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고려되지 않았다.

이렇게 빈부격차가 고려되지 않은 세금은 반드시 가난한 사람의 숨통을 조인다.


빈부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가구당 일정량을 징수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공납 징수 방식이 불산과세(不産課稅)라는 데 있다.

불산과세는 생산하지도 않는데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남 완도가 전복 공납 징수 지역이라고 가정해보자.

수온의 변화나 어떤 변수로 인해 완도에서 전복 생산이 어려워졌는데, 국가는 이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공납을 기존 그대로 징수한다.

이런 징수가 이루어지면 완도 사람은 전복을 파는 장사꾼에게 전복을 사서 공납을 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복 장사꾼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납 시즌이 되면 전복 값을 올린다.

또는 장사꾼이 공납으로 전복을 미리 관청에 내고 나중에 쌀로 농민에게 몇 배의 이익을 붙여 공납 징수 대금을 받는다.

상인이 대신 공납을 납부한다고 해서 이를 대납(代納)이라고 부른다.


대납을 통한 장사꾼들의 이익을 눈치 챈 아전(지방 관청의 행정 실무자)이 대납을 하는 장사꾼과 결탁을 하는데 이를 방납(防納)이라고 한다.

방납은 ‘납부를 막다’라는 뜻으로 아전이 농민의 공납을 막아 결탁한 상인을 통해서만 대납하는 방법이다.

방납 이전에 대납을 통해 장사꾼들이 보던 불법적인 행태에 국가(아전)가 힘을 보태 농민을 괴롭힌 것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농민들은 방납으로 죽어갔다.


방납을 하면 가을철 수확한 쌀이 아전과 장사꾼들의 손으로 대부분 넘어간다.

죽기 싫어서 방납을 하지 않으면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관청에 끌려가 곤장을 맞는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방납을 하면 가을철에 죽고, 하지 않으면 지금 죽는 셈이다.

세금을 걷을 때 빈부격차, 생산량 고려도 하지 않고.

이건 세금이 아니고 사람의 고혈을 짜내는 고문이었다.




(선조 원년 5월 을해) 조식이 상소를 올렸다. "…… 예로부터 권신, 외척, 환관으로서 나라를 마음대로 했던 자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서리(胥吏, 아전)가 나라를 마음대로 했던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 지방 토산물의 공납을 일체 막아 한 물건도 상납하지 못하게 합니다. 공물을 바치는 사람이 구족(九族)의 것을 모으고 가업을 팔아 넘겨 관사(官司)에는 내지 않고 개인에게 냅니다. 본래 값의 백배가 아니면 받지도 않습니다. 나중에는 계속할 수가 없어서 빚을 지고 도망하는 자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어찌 주현 백성의 공납이 간리들이 나누어 갖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어찌 전하가 온 나라의 부(富)를 누리면서도 종놈의 방납(防納)한 물자에 의지하리라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선조실록』



이러한 방납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민한 이들이 있다. 국가를 운영하다 보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한 개인의 삶도 문제투성이인데 국가 운영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발생하겠는가.

국가운영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가운영을 욕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덤비는 이들이 있다.

역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소매를 걷어붙이는 이들에 의해서 진보한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시대 탓이나 하고 남 탓이나 하면서 술을 마시면서 욕이나 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10년 뒤, 20년 뒤에도 지금 본인이 서 있는 딱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방납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이들은 이이, 조광조, 유성룡 등이다. 이들은 공납(현물) 대신 쌀로 징수하자는 수미법(收米法)을 주장하였다.

농민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방법이다.

수미법이란 방납으로 공납(현물)이 징수되면 농민들은 어차피 가을에 쌀을 방납업자에게 빼앗기는데 국가가 처음부터 현물로 징수하지 않고 공납을 쌀로 걷어서, 걷은 쌀로 국가가 필요한 현물을 구입하는 방법이다.

국가가 쌀로 현물을 구입하면 장사꾼은 국가를 상대로 허튼 짓을 할 수 없다.

만약 국가를 상대로까지 이익을 보려는 장사꾼이 있으면 국가가 적당하게 혼을 내면 된다.

수미법을 주장하는 이들은 여기에 하나 더, 쌀로 공납을 대체해서 징수하면 걷는 기준을 가구에서 (쌀이 생산되는) 토지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공납이 마치 토지세(전세)처럼 바뀌는 것이다.

수미법은 기존 공납이 가지고 있던 빈부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가구당 일괄 징수하는 문제와 불산과세로 인해 발생한 방납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던 제도이다.

그런데 수미법의 실시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걷는 기준이 가구에서 토지로 바뀌니까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지주)은 당연히 세금을 많이 내야 하니 불만이었다.

또 불산과세를 통해서 이익을 보던 방납업자들도 불만이었다.

수미법은 격렬한 반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이후 시간이 지나 광해군 때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수미법과 유사한 대동법을 시행하였다.

대동법은 광해군 때 처음 경기도를 시작(1608)으로 숙종 때 전국적(1708)으로 확산되었다.

대동법은 공납의 전세화를 통해서 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세금을 집중 부과하는 방식이다.

수미법이라고 하지 않고 대동법이라 한 이유는 쌀로만 걷지 않고 포(布)와 전(錢)으로도 걷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특산물은 모두 다르지만 대동(大同)하게 쌀(米)로 걷고 쌀을 생산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포(布)와 전(錢)으로 걷었다.




개혁을 통해서 과거의 문제와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는 기득권 세력의 불만과 반발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데 이 싸움이 만만치 않다. 기득권은 무서운 것이다.

기득권을 가지게 된 이들은 놀면서 기득권을 갖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국가 장악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아니 다른 시선으로 보면 이들이 국가의 운영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치면 대부분의 제도 개혁은 없던 일이 된다.

수미법도 마찬가지였다. 없던 일이 되었고,

대동법은 전국적으로 시행되기까지 기득권 세력의 반발 때문에 100년이 걸렸다.

당시 국민 97%의 삶이 3%의 기득권 세력의 이익 앞에서 100년이 걸려 시행된 것이다.




대동법의 시행과 저항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난 전문적인 세법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떻게 세금을 걷는 것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고 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자신의 노력으로 획득한 것이 아닌 천부적인 운으로 획득된 것일 때,

사람이 조금 겸손하면 조금 더 아름다운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