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북국(南北國) - 당의 이이제이(以夷制夷)
남북국 시대라는 시대 용어에 대한 학계의 논란이 있으나 현재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사용하는 시대 용어이므로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남북국 시대는 시간적으로 신라의 삼국통일(676)부터 발해 멸망(926)까지를 말한다.
현재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사용하는 남북국 시대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반도사관을 극복하는데 유용한 시대 용어이다.
반도사관은 한국의 역사가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본 역사 이론이다.
남북국 시대라는 용어는 만주지역에서 탄생하고 소멸한 발해를 우리 한국사 안으로 끌어오면서 식민사학 중 하나인 반도사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한국 역사학계의 노력으로 이해하면 된다.
우리는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과거의 시간을 배우기 위해 현재의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 효율적인가?
AI가 모든 것을 알려주는 시대에 역사 공부가 효용성이 있는가?
이 질문을 머릿속에 저장한 이후에 이 글을 읽어 보았으면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둡고 깊은 곳에서 조금이나마 건져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반도는 분열된 상태이다.
만약 우리가 언젠가 통일을 하게 된다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용어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분단(1948)되고 통일된 시기(?)까지를 가상으로 ‘후남북국 시대’라 불러보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독일이 2차 세계 대전을 치를 당시 나치 독일의 선전 장관이었던 파울 요셉 괴벨스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어떤 나라에 쳐들어가면 그 나라의 국민은 저절로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한쪽에는 저항세력(Resistance)이 있고, 다른 한쪽은 협력세력(Collaborator)이 있다. 그 가운데에 머뭇거리는 대중(Mass)이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일제 식민시대로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괴벨스의 말에 생각을 더해보면 저항세력과 협력세력이 치열하게 대립할수록 침략국에게는 매우 유리한 판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일제는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기 위해 식민 통치 기간 동안 많은 방법을 동원하였다.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민족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이다.
남북국 시대에 당나라는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외교틀을 가지고 우리민족을 통제하였다.
이이제이란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어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국가의 충돌을 유도하거나 방조하여 자국의 이익을 취하는 방식의 오래된 외교 전략이다.
중국에서 중원을 장악한 제국은 주변 이민족의 도발에 항상 시달렸다.
이민족을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중원의 운명을 지키는 일이었다.
특히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만주의 북방 민족은 중원을 장악한 제국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중국에는 ‘여진족이 10만의 군대를 만들면 중원이 넘어간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금(金)의 건국(1115)과 후금(1616. 후에 청)이 건국되면서 중원이 여진족에게 넘어갔다.
중국은 이런 역사적 경험 속에서 학습이 이루어진 나라이다.
만주 지역의 역사 속에 우리의 고구려와 발해가 있다.
중국은 만주와 한반도의 일에 개입하지 않으면 결국 자국이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끊임없이 한반도 문제에 직간접으로 개입한다. 현재도 다르지 않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접근해보자.
현재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다른 나라는 어떤 관점으로 볼까.
아마도 자국의 이해관계로 계산할 것이다.
우리가 통일이 되는 말든 다른 나라는 관심이 없다. 단, 이 통일이 자국에 이익일까, 손해일까만 계산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통일과 직접 관련된 국가를 말해보자.
6·25 휴전 협정의 국가인 미국(유엔 대표)과 중국은 직접 관련된 국가이다.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러시아와 일본도 당연히 직접 관련 국가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우리나라의 통일을 원할까, 반대할까.
2026년 현재 기준 세계 군사력 순위는 1위 미국, 2위 러시아, 3위 중국, 7위 일본이다.
2025년 GDP 기준 세계 경제력 순위는 1위 미국, 2위 중국, 4위 일본이다.
우리나라의 통일과 직접 관련된 국가들의 군사력과 경제력 순위가 이렇다보니 통일은 우리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통일과 관련된 국가들은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안에서도 통일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보니 통일은 막연함, 그 이상으로 멀리 흩어져 떠내려가고 있다.
발해는 건국 당시부터 신라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였다.
통일신라 입장에서 보면 삼국통일의 대업의 역사적 사건을 발해의 건국이 훼손시켰다.
발해는 처음부터 고구려 계승 의지를 드러낸 국가이므로 통일신라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했다.
발해의 건국은 만주에서 이루어졌으므로 당나라 또한 심기가 불편했다.
당나라 현종은 신라 성덕왕과 국교를 재개하였다. 나·당 전쟁 이후 끊어졌던 외교 관계가 복원되었다. 현종의 이러한 외교는 아마도 신라를 통해 발해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실제로 당과 발해의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자 당은 신라에게 군사 지원을 요청하였고 신라는 당의 요청으로 발해에 군사를 파견하였다.
당나라 현종 20년(732년)에 대무예는 그의 장수 장문휴를 보내 수군을 거느리고 등주 자사 위준을 공격하게 했다. 현종은 조서를 내려 대문예를 유주에 파견하여 군사를 징발하여 그를 치게 하고 태복원외경 김사란을 신라에 보내 군사를 징발하여 발해의 남쪽 지역을 공격하게 했다. 마침 산이 막히고 날씨가 추운데다 눈이 한 길이 넘게 쌓였으므로 병사의 태반은 죽는 등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고 돌아왔다. - 『구당서』 「발해말갈」 中
위의 사료를 배경 설명을 보태어 해석하면 발해 무왕은 당과 연합해 발해를 위협하는 흑수부 말갈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무왕(대무예)의 동생 대문예는 흑수부 말갈을 칠 경우 당나라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며 반대하였다.
대문예는 결국 형과의 관계가 틀어져 당나라로 망명하였다. 이에 격분한 무왕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대문예를 처벌할 것을 요구했으나 당나라 현종은 대문예를 처벌하지 않았다.
이후 발해의 무왕은 장문휴를 보내 당나라 산둥반도의 덩저우를 공격하였다.
당과 발해의 전쟁이 터지자 당나라는 신라에게 군대를 요청하였고 신라는 당의 요청으로 군대를 파견하였다. 그런데 신라군은 추운 날씨와 많이 내린 눈 때문에 전투도 못하고 도중에 많은 군사를 잃었다.
이 사건 이후 신라와 발해 사이는 더욱 악화되었다. 신라와 발해는 이후 크고 작은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고 군사적 긴장감으로 인해 군사비 지출을 늘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나라 모두 이러한 긴장을 통해 얻은 것은 없고 많은 것을 잃게 되었다.
두 나라는 당이 주도한 분열 정책(이이제이 以夷制夷)을 극복하지 못하고 국경 지대에 성곽을 쌓는 등 긴장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발해와 신라의 싸움은 중국이 원하는 그림이었다.
물론 발해와 신라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중국의 그림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힘이 없는 나라는 힘이 있는 나라가 그리는 그림에 저항할 방법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판을 짜는 나라가 그렇게 판을 짜면 어쩔 수 없이 그 판에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서 돈이 많은 친구가 보자고 해서 비싼 음식점에 여러 친구들이 모였다고 가정을 해보자. 음식점에 모인 친구들을 향해서 돈이 많은 친구가 “뭐 먹을까.”하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메뉴 선택을 망설인다. 왜냐면 돈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메뉴 선택권이 자기에게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메뉴는 대체로 돈을 내는 친구가 결정하고 시킨다.
모인 친구들은 그 음식점 안에 있는 것이지 거기서 무엇을 주도할 수가 없다.
가끔씩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친구가 메뉴를 주문하거나 대화를 주도하면 많은 친구들이 그 친구에게 눈치를 준다. 아마도 속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그냥 가만히 있어.’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에 많은 돈을 내는 나라가 있다. UN이나 WHO(세계보건기구)같은 국제 기구에 가장 많은 돈을 내는 나라는 미국이다.
다 아는 이야기이겠지만 세계의 각 정상들이 모이면 미국 대통령이 의제를 제안하고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따라간다. 전략 국가의 높이에 있는 나라와 전술 국가 단계에 머물러 있는 나라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전략은 전쟁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이나 책략, 전술보다는 상위 개념이다.
전술은 전쟁 또는 전투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기술과 방법,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 전략의 하위 개념이다.
외교적 측면에서 전략은 판을 짜는 것을 의미하고 전술은 그 짜인 판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전략 국가를 다른 말로 선진국이라고 부른다.
선진국은 세계의 판을 짜고 그 판 위에서 여러 나라가 전술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전략국가(선진국)의 도움을 매우 고마워하는 나라(전술국가)도 있는데 그것은 전략국가의 아량이나 배려가 아니고 전략국가인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많이 흩어진 것 같으니 다시 남북국으로 돌아와 정리해보자.
당나라가 흑수부 말갈과 연합해서 발해를 압박하자 발해의 장문휴가 수군을 이끌고 당의 덩저우를 공격했다. 이후 당은 신라를 움직여 발해를 공격하게 하면서 남북국은 전투를 하게 된다.
실제로 눈이 많이 내려 신라와 발해의 전투는 없었지만 기록으로만 보면 신라가 당의 요청으로 발해를 공격한 것은 사실이다.
신라가 발해를 공격한 것은 신라의 주체적이고 독립적 판단에서 이루어진 행위가 아니다.
당이 흑수부 말갈을 이용해서 발해를 압박하자 발해가 당의 덩저우를 공격한 것도 어쩌면 당의 그림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의 질문을 해보고 싶다.
당(唐)의 전략을 세우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는 왜 다른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전략을 세울 수 있는 힘이 없을까.
힘은 무엇인가.
선진국이 가지는 선도력(先導力)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6억의 지구인이 TV로 미국의 암스트롱이 착륙선의 문을 열고 달에 첫발을 내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몇 분 뒤 올드린이 달 표면에 발을 내딛었다.
이들이 달 표면에 꽂은 깃발은 미국 국기였다.
온 지구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들이 꽂은 깃발은 유엔기나 만국기가 아닌 미국의 국기였다.
2026년 대한민국은 현재까지도 달에 가보지 못했다.
1969년에 달에 간 미국과 2026년 현재까지 달에 갈 수 없는 대한민국 사이에는 어느 만큼의 힘의 차이가 존재할까.
미국은 세계의 판을 짜는 나라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전략 국가이고 우리나라는 미국의 전략 안에서 살고 있는 전술 국가이다.
현재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율을 정하면 다른 국가들은 이 관세율에 대처하기 위해 고민을 한다.
요즘은 중국이 전략국가의 위치를 확보하려고 미국에 도전장을 던졌다.
중국은 미국이 짠 판에서 놀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더 해보자. 전술 국가로도 잘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왜 미국에게 도전장을 내지.
물론 전술 국가로서도 훌륭하고 멋지게 살 수는 있다.
그러나 한번쯤은 이러한 고민을 해보았으면 한다.
‘전략 국가의 높이에서 세계를 볼 수는 없는가.’
‘우리나라는 정말 전략 국가가 될 수는 없는가.’
고대의 남북국 시대에는 중국이, 현재는 미국이, 주도 세력만 바뀐 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거 같은 이 느낌은 나만 가지고 있는 생각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전략 국가가 될 수 있는가.
먼저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대들의 도전에 염려와 두려움을 가지면 안 된다.
새로운 것, 처음 하는 것은 힘이 없으면 할 수 없다.
창의와 상상에는 뒤에 항상 힘(力)이 붙는다. 창의력, 상상력이 선도력을 만든다.
무언가를 처음 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회는 항상 전술 국가의 높이에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개척 정신이 세계의 판을 짜는 전략 국가로 만들었다.
미국은 처음 하는 것,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기존에 있는 것으로는 세계의 판을 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는 어떠한가.
청년들의 ‘스타트 업’에 대한 도전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
안전 제일주의의 사회 분위기, 기존에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청년들이 선택하는 사회는 선도력을 가지기가 어렵다.
대한민국의 입시판이 의대를 중심으로 짜져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전술국가 단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傍證)이다.
좀 더 편하게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호하는 국가는 전술적 단계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여기서 예를 들은 의사란 직업이 쉽게 될 수 있다거나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다른 길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의사란 직업만을 향해 달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과거 중국이 주변국들을 충돌시켜 중원의 제국을 유지했듯이 미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국가들을 충돌시켜 미국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힘이 없는데 이런 걸 알아서 뭐하냐’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러한 판이 짜여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그 판에서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가 짠 판에서 움직이면서 마치 자기가 이 판을 짠 것처럼 착각하면 안 된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장기판의 말과 장기를 두는 사람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략 국가가 되고자 하는 것은 비싼 음식점에서 돈을 내는 친구가 메뉴를 선택할 때 “와, 맛있겠다.”가 아니고 나도 언젠가는 메뉴를 선택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여기요, 주문 받으시죠.”하고 소리를 한번이라도 내보려는 욕심은 자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심적 동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체가 되고 싶은 욕심은 사람을 성장하는 방향으로 추동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마지막으로 처음 언급한 질문을 다시 해보자.
왜 역사 공부를 하는가?
과거의 시간을 배우기 위해 현재의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 효율적인가?
AI가 모든 것을 알려주는 시대에 역사 공부가 효용성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