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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befree Apr 16. 2022

평생 공무원만 할 건데, 자기 계발이 필요할까?

공무원에게 자기 계발이란?


평생 공무원만 하다가 정년퇴직할 건데 자기 계발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이 조직의 최대 관심사는 얼마나 좋은 자리에 인사 발령이 나는지와 같이 들어온 누구보다 승진이 빨리 되는지이다. 좋은 자리의 인사발령과 빠른 승진은 인맥관리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인맥관리는 동료들과 아랫사람 특히 윗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일 할 사람으로 여겨진다.


지방직 공무원의 주된 업무는 민원을 처리하는 것이다.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오면 비상대기라는 이름으로 밤을 새워 비상근무를 하는 것도, 대통령 선거나 지방 선거 시 인력 동원, 코로나로 보건소 업무가 폭증할 때 보건소 파견 등의 업무에 대부분 지방직 공무원이 동원되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했다. 어떤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불만은 없을 수 없으니, 정년을 보장받는다는 것, 휴직제도가 잘 돼 있는 장점 등이 있으니 괜찮았다.




모든 조직이 그렇지만, 공무원 조직은 개개인 하나하나가 튀는 것, 있던 자리에서 다른 시도를 해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인맥을 쌓고, 승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나, 자기 계발을 위해 학업 휴직을 하거나, 유학을 가는 것, 어학연수를 가는 것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들어오기 전에 해야지, 자그마치 30년 동안 내 영혼을 갈아서 일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 계발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육아휴직 질병휴직 등 불가피하게 휴직하는 직원들도 많은데, 유학휴직, 자기 계발 휴직 등까지 쓴다는 것은 조직 자체에서는 손실로 느껴진다.


인수인계도 제대로 되지 않고 인사가 난 그다음 날부터 담당자가 되어, 해당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지방직 공무원의 특성상 도움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다.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면 대학원을 가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남은 공직 생활을 생각하면 지금이 적기라고 느꼈다. 인터넷 상에는 공무원 국비유학이라는 제목의 글도 많고 공무원들은 다들 국비유학을 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도 학비를 지원받아 유학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기관에서 지난 10년 간 장기 국외교육을 간 사람은 찾아본 바로는 2명 내외였다. 내 돈을 들여서 유학을 가거나 대학원을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예산을 써가면서 공부를 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포기하자 생각했지만 그래도 다른 길은 없을까 하고 알아보던 중 1+1 학위 취득 프로그램이 있었다. 1년은 기관과 제휴를 맺은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1년은 그 대학원과 연계된 외국 대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추천을 받고 필요한 자격은 내가 준비하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 지역에서 멀기는 하지만, 합격만 한다면 어디든 달려가야겠다 생각하며 마음이 들떴다. 가뭄에 콩 나듯 모집공고가 나긴 했지만 추천만 된다면 준비해 볼만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약 4년 간 한 명이 지원했지만 추천은 안 된 것 같았다. 내가 지원을 한다 해도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이해도 간다. 국민의 감시를 받는 공무원의 특성상 예산을 들여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 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 그래도 이런 기회들이 국가직 공무원보다 지방직 공무원에게 너무 적다. 특히 하급자들에게는 기관차원의 교육 외에 다른 교육의 기회는 거의 없다. 여기는 나사 하나가 필요할 뿐이다. 다른 새로운 나사는 얼마든지 있으니 튀어나올 나사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조직에서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나를 갈아 넣어 열심히 일만 하면 될 일이지 괜히 대학원이니 뭐니 하는 튀는 행동을 해서 안주 거리가 될 필요는 없다. 있는 듯 없는 듯 내 일만 하며 남의 눈에 띄지 말고 퇴직을 하자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남들 기억에 남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재미있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직의 특성상 튀는 행동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경향이 있다.


기관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고 업무 외 딴짓을 안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공무원 생활은 길고 인생도 길기 때문에 꼭 빛을 보는 것은 아니라도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다른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누가 어떻게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는 가까운 동료라도 잘 알 수 없다. 출근 전 가까운 스타벅스에서 원서 읽기를 하고 싶었는데 누군가 나를 볼까 봐 그만둔 적도 있다. 잘하지도 못하는데 가까운 직장동료에게 조차 공부하는 것을 들키는 것은 아무래도 쑥스럽다.


아직 20년이라는 공직 생활이 남아있다. 요즘은 예전보다 의원면직하는 공무원들도 많아졌다. 미래가 없는 것도 절망스럽지만 미래가 너무 뻔하다는 것도 매력이 없다. 공무원 조직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지방직 공무원에게도 성장의 기회를 주는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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