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befree Apr 15. 2022

의원면직 보다 퇴직.

퇴직까지 버텨보기.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키워드는 "퇴사"이다. 공무원은 회사를 그만두고 물러나는 것은 아니라서 "퇴사"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의원면직"이라는 말을 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의원면직을 하는 직원이 많아야 일 년에 1~2명 정도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요즘은 심심치 않게 의원면직 공문이 올라온다. 1분기에만 우리 기관에 의원면직을 한 사람은 시간제, 임기제 등을 제외하고 5명 정도였다. 한 번 들어오면 좀처럼 그만두지 않던 시절을 생각하면 높은 수치이다.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고급인력이 되지 않으면 회사원이라는 번듯한 타이틀을 갖기 힘들다. 수능이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취업은 더 어렵고, 취업이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조직 생활은 더 어렵다. 내 주위에는 모두 월급쟁이들 뿐이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 있었던 직업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정보도 없고 알 길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절 고급 정보는 인터넷에 없었고, 온라인 상에는 광고만 있었다. 모든 정보는 서울에 모여있는 것 같았고, 지방에 사는 내가 정보도 도움도 없이 뛰어들기엔 헛바람만 든 백수가 될 것 같았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못난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30대가 되기 전에 사회와 타협해야 했다.


취업의 문은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시험만 합격하면 평생직장이 보장된 공무원이 제일 가능성 있어 보였다. 시험에 합격만 하면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잘릴 걱정이 없다는 것이 공무원의 장점이었다. 워라벨 따위는 거론도 되지 않던 시절이라 공무원의 워라벨 같은 것은 직업을 선택하는데 고려 대상은 아니었고, 공무원의 워라벨, 지켜지는 것인지 물음표이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자존감이 바닥으로 한없이 떨어져 있던 시절,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가족의 자랑거리가 되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으로 직업을 선택하면 평생 고통을 받을 거라는 생각도 없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 주위에도 공무원 준비 안 해본 사람보다 해본 사람이 더 많던 시절이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도 그냥 준비생일 뿐이었고 다들 경쟁률도 높은데 네가 합격하겠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실제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는데, 그 정도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시기였다. 30살도 안되었는데 나이는 많은 줄 알았고 현실은 가혹하다 생각했기 때문에, 민원인들에게 날 것의 욕을 들어도 감사하며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의원면직은 생각도 못했고 휴직을 원했다.


40대가 된 지금은 그나마 줄을 세운 시험에 합격해 들어온 직장인데, 그만두고 또 다른 곳에서 그 줄 안에 들어갈 자신이 없다. 퇴사를 하려면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그 준비라는 것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고, 한창 공부할 나이에도 이룰 수 없었던 꿈이 지금은 더 불가능할 게 뻔하고, 이대로 나가면 경제활동은 영영 할 수 없게 될 것 같다. 돈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면 여기보다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아 현실적으로 의원면직은 퇴직 때까지 보류이다. 조직 생활에 맞지 않는 내가 또 다른 조직 생활을 하기 위해서 이 직장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동안 매일 아침 지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출근을 했다. 왜 이런 곳에서 고통을 받아야 하나 하며 몇 년간 당연하게만 다녔던 직장이 고통스러웠다. 때가 되면 멋있게 사표를 휘리릭 던지며 꼭 의원면직자의 이름에 내 이름을 올릴 거라 다짐했다. 현실은 아이들 돌봄과 허리 근육의 약화 초과근무 등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장밋빛 미래를 생각하며 시간을 가져보려 했다. 그러다 문득 간절히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두지 못하는 나를 보며 이대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대신 무엇이라도 얻어가자 싶었다.

사실 얻어갈 수 있는 복지는 직원 휴양 숙박비 지원이나 전화 영어 정도이긴 했지만, 물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면 이것이라도 얻자 했다. 이 정도 물질적인 것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잠잠해질 리 없다. 나는 일도 하기 바쁜 사람이라 내 일 외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세상 돌아가는 것 모르는 사람이 있듯이 이 조직 돌아가는 것도 관심이 없었다. 10여 년 넘게 이 조직에서 있으면서도 이야기 하나 없는 사람이었다. 남들은 2~3년만 일을 해도 책 한 권 쓸 정도인데, 10년 넘게 몸담고 있던 조직의 장단점에 대해 물어봐도 똑 부러지게 얘기할 수 없는 정도라니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누가 내 이야기를 들을지 모르지만 나의 공직 생활 이야기도 누군가는 관심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어차피 그만두지 못한다면 이야깃거리라도 찾아보자 생각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공직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도 퇴사병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점심시간 포함 9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이야기가 생기니, 그것만으로도 얼마 동안은 재미있게 공직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퇴사병은 또 찾아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 공부는 꾸준히 하겠지만, 이 조직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가져가고, 이 조직 생활조차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면 견디는 것이 예전보다는 쉬울 것이다.


 지금 대학생들은 학점관리, 토익시험, 각종 공모전 참가, 인턴쉽 등등 월급쟁이 직장인이 되기 위해 다들 애쓴다. 대학만 나와도 취업이 보장되던 호시절이 있었다고 말로만 들었다. 지금 기업들은 젊은이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 요구에 맞추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그 많은 돈을 사교육에 투자한다. 월급쟁이 중에서 그나마 사정이 나은 전문직이 된다면 성공이고, 그렇지 않으면 대기업이라도 아니면 공무원이라도 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만 뒤쳐질까 불안하다. 옆집 아이가 하니 우리 아이도 해야 한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면 다행이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찾으면 또 고통받는다. 물론 퇴사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참고 출근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위의 도돌이표 같은 삶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도 지금 젊은이들의 퇴사를 응원한다. 가르쳐 놓으니 1년도 안돼 퇴사한다는 불평만 하지 말고 기업과 공기업, 공공기관까지도 깊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조직보다는 내가 중요한 시대에 인재를 놓치지 말고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바람직한 시대가 오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