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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befree Apr 13. 2022

INFP는 코로나가 싫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생긴 저녁시간.

신입이었을 때만 해도 여러 가지 회식이 많았다. 회식도 9시 정도에 끝나면 좋으련만 늦게까지 이어졌다. 먼저 가보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어서 노래방까지 이어지는 회식자리를 끝까지 지키곤 했다. 친한 사람들과의 소모임은 즐겁지만, 회식은 항상 부담스러운 것,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회식 자리에서 술도 안 마시고 침묵을 지키며 기분 나쁜 티를 내는 것은 아니며 맛있는 것 먹고 즐기는 편이었다. 그래도 회식을 한다고 계획이 잡히면 계획이 잡힌 날부터 회식 자리에 가는 그날까지 걱정이 되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에게는 미안했다. 직장 빼면 공통점도 없는 사람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회식을 하는 것도 부담스렀고, 윗 분들 순서대로 자리를 찾아가며 술 한잔씩 드리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윗사람들에게 술을 드리는 것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회식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이상 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식에 빠지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했다.


업무로 인해 초과 근무를 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 외의 시간엔 직장 사람들과 인맥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고 좋은 보직을 얻을 수 있으며, 다른 동료들보다 빠른 승진을 할 수 있다. 써놓고만 보아도 숨이 막힌다. 사내 정치라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한 나에게 인싸들의 생활을 알 길은 없지만, 아직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조직에서는 승승장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조직에서 필요한 인재 상은 나를 갈아 넣을 수 있는지 그 외에 시간에는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지 윗 분들에게 충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나를 갈아 넣어 일을 열심히 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사람들과 잘 지내는 일은 나이가 들어도 나아지지 않고 힘들기만 하다.


막 임용이 되었을 시절, 퇴직할 때까지 일해야 하니 적을 만들지 말고, 그렇게 무리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흔쾌히 하며, 이 조직에 나를 맞추자고 생각했다. 조직 생활을 할수록 조직은 외향인인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데 그런 척하는 것은 피곤한 정도를 넘어, 영혼이 갉아 먹히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는 내향인의 비율이 더 많다고 하는데 나만 내향인인 것 같았다. 내향인 중에서도 내향인인 나는 내키지 않는 비공식적인 회식은 더 이상 나가지 않기로 했다. 독서할 시간이 생기다 보니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데 너무 애쓰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모난 사람처럼 굴겠다는 것은 아니며, 내향인의 성향대로 살기로 했다는 뜻이다. 외향적인 사람만 조직에서 인정받고 친구가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책을 읽을 시간도 없고, 여전히 맞지도 않은 옷에 괴로워하며 살았을지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공식적인 회식이 많이 줄어들고 비공식 회식은 최대한 배제하니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많아지고 독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회식의 대폭 감소는 코로나의 큰 장점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가는 지금 예전의 회식 문화가 돌아올까 조금 두렵다.


저녁 회식은 최대한 없애고, 맛집에서 점심을 먹는 회식으로, 저녁 회식은 1년에 한 번 송별회 정도 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해 회식 문화가 바뀔지 아니면 예전처럼 돌아 갈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끝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던 생활에 코로나로 저녁시간이 생겨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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