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시기의 육아휴직
공무원의 최대 장점은 여러 가지 휴직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장려해야 하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쓴다고 눈치를 주는 경우는 없다. 10년 전 신규직원 일 때 여자 팀장님들이 출산 휴가만 쓰고 몸도 못 추스르고 나왔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요즘 출산 후 육아 휴직 없이 바로 복직하는 직원은 거의 없다. 아이가 갓난아기 일 때 육아란 처음 경험해 본 신세계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를 돌본다는 것은 먹는 것, 자는 것, 생리적인 욕구까지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율성은 하나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4시간 정도만 연달아 잠을 잘 수 있기를, 시간 날 때 허겁지겁 먹는 것이 아닌 배고플 때 천천히 밥을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차라리 커피라도 한 잔 여유롭게 마실 수 있게 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경험해 본 것 중 노동의 최고는 육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둘째까지 연달아 낳는 바람에 거의 2년 넘는 기간을 통잠을 못 잤던 것 같다. 백일의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던데 우리 아이들은 18개월까지는 밤에 한 번씩 깨서 칭얼거렸다. 그렇게 아이들이 어린이집 갈 시기가 되고 복직을 하니, 그 시기에는 일하고 육아하는 것만 해도 버거웠다. 다이어트고 자기 계발이고 할 겨를이 없고 아이들에게 올인하는 시기였다. 아이들이 어린 시기에 무엇을 이뤄내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첫째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두 번째 육아휴직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반모임 등을 해서 엄마들과 교류하는 것이 여러 정보를 얻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엄마들과의 교류는 달성하지 못해 아이들이 어떤 좋은 학원을 다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두 번째 육아휴직은 삶의 질을 확 높여주었다. 아침에 첫째 아이를 데려다주고, 유치원에 둘째 아이를 데려다주고 나면 첫째 아이가 하교할 때까지 4시간 정도 내 시간이 생겼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에는 학교에 데려다 줌과 동시에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그래도 내 시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행복지수가 올라갔다. 이제까지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을 실천했다. 커피 맛집 찾아다니기, 붐비지 않는 서점에서 책 둘러보기, 햇살 가득한 카페에서 독서하기, 오후 6시 되면 품절되는 베이커리나 마카롱 가게 찾아다니기, 영어 원서 천천히 읽어보기, 오전 요가, 오전 산책 등 직장인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했다. 이런 시간이 퇴직하기 전에는 다시 올 수 없는 것을 알기에 하루하루를 즐기고 싶었다. 두 번째 육아휴직 마지막에는 코로나로 인해 둘째 입학식도 못하고 셋이서 갇혀 지내는 생활을 했지만, 지나고 보니 아이들과 또 그렇게 같이 붙어 있을 시간이 다시없을 것 같다.
육아휴직 후 남편이 이어받아 육아휴직을 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학교를 가다 안 가다 반복하는 시기여서 내가 휴직을 연장하든지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든지 해야 했다. 결론은 남편이 쓰기로 했고 남편 역시 만족한 육아휴직을 보냈다고 한다. 시간 날 때마다 달리기를 해 처음에는 숨이 차서 뛰지 못했던 구간도 이제는 뛸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육아휴직 동안 뛸 수 있게 만들어놓으니 지금도 주말이나 시간이 있으면 달리기를 계속 이어 가고 있다.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추천한다고 했다. 아이가 갓난아기 일 때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어야 했다. 어쩐지 분하다.
아이가 아기 일 때의 육아휴직은 온전히 아이를 위한 휴직이었다면, 초등학교 1학년 시기의 육아휴직은 아이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휴직이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의 아무 의미 없는 말 한마디에 상처받기도 하고, 직장 생활에 많은 의미를 두었다. 휴직 동안 책도 읽고 딴짓을 좀 하고 나니 사람들 모두 별 다를 게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도 아닌데, 안 맞는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 싶었다. 타고난 기질 상 완전히 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사람과 직장에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한다. 나 자신과 가족에게만 신경 쓰고 살기에도 하루가 짧다. 육아휴직 전에는 업무 외에는 다른 것을 할 시간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다른 것을 할지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지금은 휴직 때 했던 딴짓들을 하며 퇴직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