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은 쉐도잉.
대학 시절에도 쉐도잉이란 것을 했었다. 그때는 쉐도잉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사인필드라는 시트콤으로 쉐도잉을 했었는데, 대학교 어학당에서 영상으로 하는 영어(사실 수업이름은 가물가물)라는 수업에서 쉐도잉을 했다.
강사가 만든 책에는 잘 들리지 않는 부분이 빈칸으로 비워져 있었고 대사를 몇 번씩 듣고 빈칸을 채우고 따라 하는 수업이었다.
토익 수업은 강당에서 100명 정도가 들었는데, 그 수업은 작은 교실에서 10명이 채 안 되는 학생들이 들었다. 시험을 위한 토익 수업이 중요하지 영상 보고 빈칸 채워 넣는 수업은 인기가 없었다.
그 어려운 수능을 보고도 또 토익을 보기 위해 영어 수업을 들어야 하고, 공무원 영어는 또 따로 공부, 우리나라 영어는 시험을 위한 것이기는 하다.
놀랍겠지만 강사가 컴퓨터나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수업을 한 것은 아니고,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이용해 테이프를 빨리 감기, 되감기를 해가며 진행하는 수업이었다.
강사가 장면을 맞추느라 엄청난 연습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쉐도잉은 반복이 중요한데 그때는 사인필드라는 시트콤을 집에서 몇 번이고 볼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렇게 유명한 프렌즈도 비디오테이프를 구하기 힘들었는데, 듣도 보도 못한 사인필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수업에서 배운 것은 them, him, her이라는 대명사를 회화에서는 ‘em, 'im, 'er으로 줄여서 발음을 많이 한다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몰랐던 사실이라 이것을 배운 것만 해도 수강료를 낸 보람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는 없었다. 그런 사람은 나와 안 친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끼리는 유창성보다 "나 토익 몇 점이야"라는 것으로 영어 실력을 증명했다.
주위에 한국에서 나고 자라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외국인(?) 아니면, 영어권 국가에서 살다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나라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외국어는 넘을 수 없는 산이라고 생각했다.
따라 할 사람이 없다 보니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잘하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혜택 받고 자랐다고 생각해 부러워만 했다. 사실 주위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없어 부러워할 사람도 없었다.
다시 영어 공부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것은 원서 읽기였다. 물론 열심히 안 해서 그렇기는 하지만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며 계속 열심히 연습한 것은 읽기였으니 요즘 유행하는 쉐도잉을 다시 해보자 싶었다. 외국인과 대화할 때 듣기가 안되니 대화가 안 되었다. 그 사람이 내 말을 알아듣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먼저 들어야 대화가 될 것 아닌가?
20대 때 프렌즈로 쉐도잉을 하려고 dvd도 사고했는데, 그때도 프렌즈 쉐도잉은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프렌즈로 시도했다.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것은 프렌즈는 여러 번 봐도 재미있고 한 편의 길이도 20분 내외로 짧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대 때는 지금처럼 영어로 된 콘텐츠를 구하기 쉽지 않아 선택의 폭이 좁았지만, 지금은 맞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갈아타면 된다. 그때는 용돈을 쪼개서 산 프렌즈 dvd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것을 또 살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콘텐츠가 널려있다.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인 시대이다.
겨우 맞는 것을 찾은 것이 굿 플레이스였다. 주연배우가 겨울왕국의 안나 성우라고 했다.
제이슨과 타하니의 발음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크리스틴 벨의 발음이 너무 좋아 계속 보기로 했다.
사후 세계 이야기인 굿 플레이스는 첫회부터 여기가 굿 플레이스가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극도의 내향인 나는 죽어서도 소울메이트다 뭐 다해서 사람들과 얽히고설켜 살아야 한다면 저것이 바로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한 회 당 길이도 20분 내외로 적당하고 내용도 재미있고 주연배우의 발음도 정확하고 중간중간 웃음소리 같은 것도 섞여있지 않아 쉐도잉 하기에 좋았다. 몇 번이고 보다 보니 바보 연기를 하는 제이슨도 너무 멋있어, 유튜브에서 인터뷰까지 찾아봤다.
처음에 쉐도잉을 할 때는 무조건 딕테이션을 했다. 들리지 않는 단어는 한글로라도 적어가며 했는데 그렇게 하니 지치고 진도가 안 나갔다. 1시간을 했는데도 영상은 5분 정도밖에 못 봤다.
딕테이션도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딕테이션은 토익 L/C 교재 같은 것으로 하기를 추천하고 미드 딕테이션은 추천하지 않는다.
대학시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쉐도잉과 딕테이션 한 적이 있었다. 일본학과를 나왔기에 그때도 일본어 마스터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했었는데 1시간 정도 해도 영상은 10분 정도 분량이었다.
결국 포기했고, 아직 일본어 마스터는 못했다.
그 한자들을 딕테이션 할 생각을 했다니, 영어 딕테이션은 그에 비하면 나은 편이긴 하지만 이것도 이런 고된 작업이 없다.
모르는 단어는 절대로 안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편안하게 쉐도잉 하기로 했다.
첫 번째 볼 때는 영어 자막, 두 번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한글 자막, 세 번째 다시 영어 자막을 켜고 따라 하며 모르는 표현 정리, 네 번째 자막 끄고 보며 따라 하기, 다섯 번째 다시 영어 자막 키고 따라 하고, 그다음부터는 아무 자막이나 키고 아니면 끄고 따라 하며, 오프라인 저장해서 출근길에 듣기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다. 엄청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시간을 재어보면 1시간 정도 하면 지치는 것 같고, 출근길에도 지치면 팝송 듣고 갈 때가 많다. 요점은 한편을 여러 번 본다는 것과 10분이라도 매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쉐도잉의 장점을 이렇다 하고 말할 수는 없다. 그냥 어떤 날 영어로 말이 하고 싶을 뿐이다. 혼잣말은 주제가 한정되어 늘고 있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고,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다 할 수 없고, 사전 없이 원서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영어 공부에 쉐도잉이 전부는 아니지만 도움은 많이 된다.
영어 공부 방법에도 유행이 있다. 어떤 한 가지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원서 읽기를 하다 보면 듣기가 안 되는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 들고, 쉐도잉을 하다 보면 영문으로 된 글을 처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늘지 않는 영어에 매일 좌절한다. 그래도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는 나한테 맞는 콘텐츠를 찾은 것만으로도 조금은 영어가 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