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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befree Jun 03. 2022

안방 말고 내 방이 필요할 때

내 공간 찾기

부모님과 같이 살던 좁은 집에도 한 평 남짓한 내 공간은 있었다. 수능 친 얼마 뒤 부모님이 합심하여 내 책상을 버리는 것을 보며 씁쓸했지만, 집이 좁으니 엄마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수능 끝나면 공부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깜깜한 밤에 책상에 앉아 스탠드 켜놓고 앉아 있는 걸 좋아했는데, 좁아터진 내 방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책상은 없어도 상관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제 친정엔 내 공간이 없어서 그런지 내 집보다 편하지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니 이 집에 내 공간 따위의 사치는 누릴 수가 없다. 내 책장이라 할 것도 책상도 조용히 틀어박혀 있을 곳도 전혀 없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책을 읽다 보니 집구석 구석 청소하지 않은 곳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 쉴 수가 없다. 내 집은 생겼는데 내 공간은 없다.




그렇다고 책상을 사려니 평일에 집에 잘 있지도 않지만, 책상과 같은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정리해야 될 공간이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공간이 아이들 물건으로 뒤덮여 이미 정리해야 될 공간이 넘쳐나는데 또 책상을 살 엄두는 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내 책상 구입은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공부는 못했어도 정돈된 집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물건이 널브러진 집에서는 그게 잘 안된다. 이 집엔 나의 공간이 없다. 좋아하는 걸 못하니 삶의 의미도 잘 모르겠다. 일하는 엄마에게 집은 완전한 쉼의 공간이 아니라 제2의 일터였다. 아이들 물건에 치여 내 공간 하나 없는 아파트, 1평 남짓한 나의 공간을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나니 자기들끼리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고 아이들 물건의 부피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내 공간에 대해 갈망만 하던 중 둘째 아이 책상을 발견했다. 아직 초등학생이라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별로 되지 않을뿐더러 나와 나눠 쓴 다해도 둘째에게 전혀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가끔 심술을 부리는 둘째가 자기 방에서 나를 쫓아낼 때 빼고는 그럭저럭 기생해서 있을만했다. 그 전에는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책을 모으는 것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아이 책장에 내 코너를 마련해 두니 책을 읽거나 공부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상 키가 작은 것이 불만이었는데, 아이의 책상을 같이 쓸 수 있는 장점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공부를 할 때는 여기저기 청소를 다 해야 직성이 풀렸는데, 둘째 방만 청소하고 나머지는 조금 어지러워도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가 비키라고 하면 비워줘야 하는 단점은 있지만 이 정도 단점은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인가를 읽거나 공부하려고 하면 아이들이 따라 들어와 조잘조잘 자기 얘기를 해대는 통에 조용하고 느긋하게 책을 읽거나 하기는 힘들지만, 아예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아이가 크면 둘째의 책상은 둘째에게 고스란히 내줘야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또 좋은 내 공간을 찾을지도 모르고, 정말 내 책상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찾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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