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정보는 줄이셔야 팔립니다."

여백이 만들어내는 ‘보는 힘’에 대하여

by 추실장

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사장님들이 자주 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문구 하나만 더 넣어주세요.”
“공간이 남으니까 사진 하나 더 추가하죠.”
“설명은 자세해야 고객이 믿죠.”


그 마음을 모르는 디자이너는 없습니다. 내 제품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니까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정성이, 오히려 고객의 시선을 밀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객은 ‘읽지 않고’ 먼저 ‘느낍니다.'


요즘 고객은 긴 문장을 읽지 않습니다. 화면을 열면 불과 몇 초 만에 머무를지, 나갈지를 결정합니다. 그 몇 초 안에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느낌’입니다. 이 화면이 편한가, 보기 좋나, 신뢰가 가나. 만약 빽빽하고 복잡하다면, 아무리 좋은 문장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순간 고객은 이렇게 생각하죠.


“보기 불편하다.”


그리고 바로 뒤로 가기를 누릅니다.

많은 사장님들은 ‘정보가 많을수록 고객이 안심할 거야’라고 생각하시지만,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복잡함은 ‘성의’가 아니라 ‘혼란’으로 느껴집니다.


결국 고객은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고, 페이지를 떠납니다.


여백은 낭비가 아니라, 집중의 틀입니다.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건 집중을 위한 설계 도구이자, 시선을 머물게 하는 장치입니다. 책을 읽을 때 줄 간격이 너무 좁으면 눈이 금세 피로해지듯, 디자인에서도 여백이 부족하면 시선이 쉴 틈이 없습니다.


눈이 쉴 수 없다는 건, 곧 고객에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명품 브랜드의 광고를 떠올려 보세요. 샤넬, 루이비통, 디올. 그들의 광고는 단순합니다. 모델 한 명, 제품 하나, 로고 하나. 그런데도 우리는 그 안에서 ‘고급스러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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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바로 여백이 만들어내는 여유로움과 자신감입니다.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이 정도면 알아보시죠.’


이 여유가 브랜드의 품격을 만들어냅니다.


반대로, 일반 전단지나 상세페이지를 보면 정보가 빽빽합니다. ‘무료배송!’, ‘한정수량!’, ‘오늘만 특가!’, ‘사은품 증정!’ 모두 중요한 말이지만, 그만큼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모두가 중요하다고 외치면,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의 눈은 한 번에 하나의 초점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백은 ‘비움’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디자인은 정보를 쌓는 일이 아니라, 흐름을 만드는 일입니다.


좋은 디자인은 정보를 가득 넣는 게 아니라, 시선을 어디로 이끌지 흐름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고객이 무엇을 먼저 보고, 어떤 순서로 이해하고, 마지막에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를 미리 계산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흐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정보 과잉입니다. 한 화면에 모든 걸 넣으려는 순간, 페이지는 목적을 잃습니다. 한 줄을 줄이면 한 명이 더 읽고, 한 칸을 비우면 한 명이 더 기억합니다.


결국, 덜어내는 것이 곧 설득력입니다.



여백은 브랜드의 품격이자, 고객의 휴식입니다.


MIT 연구에 따르면, 같은 내용이라도 여백이 많을수록 집중 유지 시간이 두 배 이상 길어진다고 합니다. 즉, 고객은 ‘많은 정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보기 편한 구조’를 좋아합니다.


여백이 많을수록 눈이 머무르고, 눈이 머물면 마음이 열립니다. 이건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실질적인 판매 전략입니다. 여백은 브랜드의 자신감이자, 고객에 대한 배려입니다.


“나는 굳이 소리 지르지 않아도 내 이야기가 전해질 거야.” 이런 태도가 신뢰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여백이 많은 브랜드는 늘 이렇게 평가받습니다.


“깔끔하다.”
“고급스럽다.”
“믿음이 간다.”


이 세 가지는 결국 고객의 구매 이유가 됩니다.


비워야 보입니다. 보여야 팔립니다.


한 페이지에 모든 걸 담으려는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고객은 모든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필요한 정보만 빠르고 편하게 보고 싶어 할 뿐입니다.


그래서 디자인의 목표는 “전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여백입니다. 여백은 단순한 미학이 아닙니다. 그건 사람을 위한 설계이자, 감각적인 설득의 기술입니다.

다음에 디자인 시안을 보실 때 이렇게 물어보세요.


“이 디자인은 고객이 숨 쉴 여백이 있나?”


그 한 문장이 디자인의 방향을 바꾸고, 브랜드의 인상을 바꾸며, 결국 매출의 흐름까지 바꾸게 될 것입니다.

화면 캡처 2025-11-05 13413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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