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2

친절 (정성을 다해 길을 안내해 드립니다.)

by 언젠간 노르웨이

병아리콩이 섞인 식은 밥을 김치만 해서 아주 맛있게 먹은 뒤 커피 한 잔을 두고 식탁에 앉았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맘속으로 왜 이러지 하며 멍하니 식탁을 바라보았다.



평소에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나에게 길을 잘 묻는다.

밖을 잘 나가지 않는 내가 길을 안내하게 될 확률은 낮은 것 같은 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은 3일 연속 사람들이 나에게 길을 물어서 '이상하다 왜 그럴까'를 고민해 본 적도 있다.


친정 식구들이 엄마집에 다 모인 날 내가 얘기했다.

"내 너무 친절하게 생겼는 갑따 3일 연속 길 가던 사람들이 내한테 길 묻더라. 내가 밖에 잘 안 나가는 것 치고 너무 이상한 거 에이가? 맞제? 어디 길 안내하고 돈 버는 없나?

"또 씰데없는 소리한다 시끄럽다 마"

누군가 나의 소란스러운 말투에 바로 대꾸했다.


장난으로 그런 얘기를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좀 특이한 경험이긴 했다.

길을 가던 사람이 나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왜 나에게 길을 물었을까?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냥 수더분하고 좀 까다롭게 생기지 않아서라고 대충 생각해 볼 뿐이다.


길을 걷다 누군가 나에게 길을 물어보면 내가 잘 아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친절하게 도와드릴 수 있는 곳까지 따라가거나 또는 자세한 설명을 해 드린다.


가끔씩은 내가 조금 바쁜 상황임에도 가까운 거리라면 끝까지 안내하는 친절함을 발휘한다.

특히 나이가 좀 드신 할머니인 경우에 더욱더 친절해진다.


식탁 위에서 왈칵 눈물을 쏟은 이유는 갑자기 지금 나의 모습과 옛날의 엄마가 동시에 떠올라서이다.


우리 엄마는 한글을 모른다.

1940대 중반에 태어난 엄마는 해방직후와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이다. 사는 게 어려웠던 가정환경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배움의 기회가 닿지 못했던 탓에 엄마는 겨우 이름 석 자만 적을 줄 안다


엄마가 이름을 적는 모습을 보면 적기 싫은데 마지못해 적으니 불안과 불편함을 동시에 띤 긴장한 얼굴이다.


연필을 멀찍이, 5분의 2 지점에 잡고 -그림을 그리듯이- 천천히, 꼬불꼬불 그렇게 적는다.


그리고 이렇게 물을 때도 많다.

"이래 적는 거 맞는기요?"


아 정말 뭐야? 본인 이름을 적고 이렇게 적는 게 맞느냐고 묻는 건 뭐냐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모습을 자주 마주한 내 어릴 적 기억은 그냥 엄마의 무식함에 답답해서 화가 났다.

"자기 이름을 적어놓고 이게 맞냐고 물으면 어떡하노"라고 얘기하며.





한참 지난~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때 얘기다.


그날은 대학병원에서 진료할 일이 있어 병원에 갔다가 접수하고 진료를 받기까지 너무 여러 과정을 거쳐서 거의 반나절을 다 사용하고 집에 왔다.



그 주 주말에 엄마집에 가서


"와~ 엄마 옛날에 아버지 병원 진료 어떻게 받았노? 영어도 알고 한글 알아도 뭔 말인지 잘 몰라서 한참을 헤맸는데 "

"그래 그때 어예 다녔는지 나도 모르겠다 버스 타는 것도 물어가 물어가 갔는데 이자는 모한다."

"버스 말고 진료실에 접수할 때 어떻게 했냐고?"

"간호사한테 묻고 병원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묻고 그랬지. 지금 해라카믄 까마득하다......"


엄마는 그때 남편인 우리 아버지가 입원해 있어서 보호자를 하였는데 경주 촌 골짜기에서 포항의 큰 종합병원을 일주일에 서너 번씩 왔다 갔다 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하는 일은 엄마에게 더 힘들었으리라.


우리 5남매가 너무 어려서 큰 집에 사시는 할머니가 자주 우리 집에 와서 보살펴 주셨다.

어린 시절이라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농사일은 할머니가 다 하실 수 없으니 엄마가 중간중간 집에 와서 어느 정도 마무리를 해 놓고 다시 병원으로 가곤 했다.


오늘 아침에 여러 가지 지난 일들이 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겹쳐지다가 길 안내 친절의 이유 중 일부가 우리 엄마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때의 우리 엄마의 답답함을 도와줄 수 없었던 미안함이 지금의 나의 모습을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엄마 고생했어. 힘든 시절 버텨준 그때의 엄마에게 조심스레 위로를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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