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
나는 기복이 있는 우울·불안장애 환자다. 조울증으로 보기도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조증과 우울증이 함께 있는 형태’가 아니라, ‘보통 상태와 우울 상태가 오가는 경우’라고 한다. 이런 경우는 사계절의 변화를 모두 지켜보아야 하기에 치료 기간이 길다고 한다. 나 역시 벌써 7년째 치료를 받고 있다.
기복이 있어서 그런지 ‘보통일 때’와 ‘불안할 때’의 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불안이 밀려오면 머리에 안개가 낀 듯하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몸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긴장되어 뒷목이 뻣뻣하고, 심장과 폐는 붕대로 꽁꽁 감아놓은 것처럼 답답하다. 불안한 날은 하루 24시간 내내 이런 상태로 지낸다. 잠을 자면서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뻐근하다.
특히 ‘내가 무능력하다’고 느낄 때 불안과 우울이 함께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언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큰일이 생길 것 같은, 생존이 위협받는 느낌이 든다. 내 안에 ‘나는 유능하다’는 기본 신념이 없어서, 나의 무능함이 들킬까 두렵고, 들켜서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과 우울감이 생긴다. 박사학위를 받았어도 여전히 나는 나 자신을 무능하게 느낀다.
우울증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우울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럴 때 나를 회복시킬 수 있는 행동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제 심장이 조여오거나 머리가 둔해지는 느낌이 들면 “아, 지금 내가 우울해지고 있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다. (혹시 우울증이 있다면, 우울할 때 나타나는 자신의 신체적 증상을 관찰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를 찾는 일이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들의 귀여운 행동이나 남편의 웃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지만, 상담사 선생님은 “남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기분이 좋아졌던 순간은 언제였냐”라고 물으셨다. 그때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다른 사람을 통하지 않고, 나 스스로 기분이 좋아졌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하나는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실 때였다. 30분 정도 혼자 앉아 있을 때 잠시라도 휴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하나는 마음에 드는 옷을 입었을 때였다. 요즘 살이 붙어서 예쁜 옷을 마음껏 입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게 잘 어울리는 옷을 입으면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늘어진 티셔츠 대신 마음에 드는 티를 입거나, 화장이 잘 되었을 때도 그렇다. 거울 속 내 얼굴이 평소보다 화사해 보이는 날엔 기분이 좋았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필라테스를 하거나 달리기를 한 뒤 근육이 뻐근해지면 ‘내 몸이 변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이 들었다. 최근에는 밤에 아이들이 잠들면 달리기를 한다. 처음엔 5분도 못 달렸지만, 지금은 8분 정도는 달릴 수 있다. 아주 느린 속도지만 점점 늘어가는 게 신기하고, 그 자체로 기분이 좋다.
이렇게 돌아보니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우울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다는 게 든든하다.
그리고 ‘나를 알아가는 재미’도 조금은 느낀다. 앞으로 더 알아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