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비감성적인 출산 이유

생태학적으로 이기고 싶다면 아이를 낳아라

by 불완전 박사

고등학생 때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로봇 같은 사람으로 불렸다. 감정 표현이 적었고, 미래 이야기가 나오면 늘 한 발짝 비켜서 있었다. 누군가 연애나 결혼을 상상할 때, 나는 그런 장면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들은 내가 언젠가 사람이 아니라 사이보그와 살 것 같다고 농담했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많이 달라졌다. 눈물이 많아졌고, 아이를 학대했다는 기사 하나에도 마음이 너무 아파 끝까지 읽기 힘들다.
확실히 나는 예전보다 훨씬 감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이유는 놀라울 정도로 비감성적이었다.


아이를 낳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생 때였다.
나는 생물학과를 다녔다.

실험을 좋아하지 않아 실험이 없는 수업을 골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태학과 동물행동학 같은 이론 중심 과목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아무리 멋진 생물이어도 새끼를 낳지 않으면 멸종이고, 아무리 못나 보이는 생물이라도 새끼를 낳으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뛰어나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생존 그 자체가 결과였고, 평가는 없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래 살아남고 싶었다. 그렇다면, 생태학적으로 보았을 때 자손을 남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인간은 특이한 생물이다.
자식을 낳지 않고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가정을 꾸리지 않고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자손을 남길 수 없는 성직자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런 선택들은 왜 가능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사람은 오래 살고 싶어 하고, 어쩌면 죽은 뒤에도 오래 기억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

누군가는 위대한 성과로 기억되고,

누군가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남고,

누군가는 자식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도.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은 자손을 남기는 것이었다.


모든 과학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주변의 다른 과학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처음 듣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건 아주 개인적이고, 다소 계산적인 결론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고, 실제로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 선택이 나를 좀 더 사람답게 만들었다고. 감정에 무뎠던 나에게,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돌려주었다고.

그래서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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