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뉴 쉬르 메르 (Cagnes-sur-Mer)
얼마 전에 방문한 파리의 몽마르트르 미술관에서 오귀스트 르누아르 (Auguste Renoir, 1841~1919)의 흔적을 보았었지요. (1875~1876 거주) 이후 그는 파리와 에소아(Essoyes)등 여러 지역에서 지내며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좇아 노후의 르누아르가 프랑스 남부에서 지낸 곳을 찾아갔습니다. 니스에서 서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카뉴쉬르메르 (Cagnes-sur-Mer) 마을에 르누아르 미술관이 있습니다. 니스빌 기차역 (Nice-Ville)에서 서쪽으로 4 정거장 떨어져 있어서 금세 도착합니다. 이 마을은 지금도 주거지역으로, 오래된 돌담에 붙어있는 미술관 사인판조차도 소박했어요. 이 미술관에는 르누아르의 진품이 13점 여점밖에 없어 실망스럽다는 리뷰들이 있었지만, 저에게는 많은 작품을 보는 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한 대가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머물며 후기 작업을 한 공간을 보고 싶었습니다.
르누아르의 부인 알린 샤리고 (Aline Charigot, 1859~1915)는 남편의 건강을 생각해서 1903년에 기후가 좋은 이 지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르누아르는 오래전부터 변형성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고 있었고 1905년부터는 걷는 것도 힘들어졌어요. 그들은 올리브 나무와 오렌지 나무에 반하여 이 부지를 매입하여 집을 짓고 <Les Collettes>라 이름 붙였어요. 르누아르는 집이 완성된 1908년부터 부인과 세 아들과 함께 11년간 이 집에서 지내며 작업했습니다. 좁은 대로에서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서 르누아르가 사랑했던 작은 과수원을 지나게 되고, 2층의 테라스와 남쪽을 향한 창문에서는 멀리 파란 바다가 보여요.
르누아르는 아내가 56세인 젊은 나이로 1915년에 먼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아내의 사진을 보며 모성애가 담긴 조각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당시의 르누아르의 모습을 담은 사진 몇 점이 미술관에 걸려있는데, 그는 이젤 앞에서 너무나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있어요. 양손은 붕대로 감겨있는데 손가락 모두가 안쪽으로 굽어 들어서 붕대로 감은 손은 마치 손가락이 없는 듯 뭉툭해 보입니다. 저 손으로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할 수 있었다는 건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였어요.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았다고는 들었지만, 저렇게 까지 손이 안으로 굽다니 충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손이 변형되면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고 해요. 아무리 인내심 있는 할아버지였지만, 너무 처참하지 않나… 그러나 그의 표정은 온화하기만 합니다.
르누아르의 조각품은 그동안 많이 봐오던 작품들이었어요. 소재를 다르게 해서 반복작업한 작품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제작자 이름에 르누아르만 적혀있는 게 아닙니다. 공동 제작자인 리처드 기노 (Richard Guino, 1890~1973)의 이름이 거의 모든 조각품에 적혀있었어요. 그는 카탈로니아 (지금의 바르셀로나 지역) 출신의 조각가로 프랑스인입니다. 1913년 아트상인의 소개로 르누아르와 만나게 된 기노는 1918년까지 르누아르의 작업실에서 함께 작품을 제작했어요. 그들은 50살 가까운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감성이 함께하며 놀라운 작품들을 탄생시켰어요. 르누아르의 회화가 기노의 조각으로 이동하여, 그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 이곳에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즉 작품의 구상은 르누아르가 했고 노동이 들어가는 작업은 기노가 했을 거라 생각하니 붕대감은 손으로 르누아르가 조각했다는 상황이 이해되었어요. 이에 기노의 아들인 미셀은 리처드 기노가 없었다면 르누아르의 조각은 결코 빛을 보지 못했을 거라며 기노의 공로를 인정해 달라고 1965년부터 문제 제기를 했고, 1973년에 프랑스 대법원에 의하여 창작 행위에 몸과 마음을 다 한 그의 노력이 법적으로 인정되었어요. 그래서 두 작가의 이름이 적혀있는 거였습니다. 나이와 재능을 뛰어넘어 이런 협력이라니, 감동적입니다.
역시 르누아르의 회화 작품은 몇 점 없었어요. 그보다는 알베르 앙드레 (Albert André, 1869~1954)의 작품이 눈에 많이 띄었어요. 이 작가는 또 누구일까, 궁금합니다. 파리에서 활동했던 작가는 1894년 5점의 작품을 가지고 미술전에 참가했는데 이때 르누아르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나이차이가 꽤 많이 나지만 두 사람은 친한 친구가 됩니다. 앙드레는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역한 뒤에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로 이주했고 근방의 바뇰쉬르세즈 (Bagnols-sur-Cèze)의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어요. 그가 이곳에 사는 동안에 르누아르의 모습을 많이 남긴 듯합니다. 앙드레의 작품을 통하여 휠체어에 앉아 작업하고 있는 노년의 르누아르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상세한 배경에서 작업실의 분위기가 느껴지고 르누아르의 굽은 등과 뭉툭한 손, 그리고 주름진 얼굴도 볼 수 있었습니다.
르누아르는 자신의 집에 오랜 친구인 앙리 마티스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 오귀스트 로댕 , 파블로 피카소 , 클로드 모네 등 동시대 예술가들을 초대했습니다. 라울 뒤피의 작품 몇 점도 반가웠어요.
당대에 명성이 높았던 작가의 그림은 현재 최고의 미술관에 걸려있거나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니스에 위치한 마티스 미술관 (Matisse Museum)과 샤갈 미술관 (Marc Chagall National Museum)에는 기대만큼 작품이 많지 않았어요. 유명한 작품들은 파리나 대도시의 미술관에 가면 훨씬 더 많이 만날 수 있지요. 그 대신에 이곳 미술관들에서는 특별한 스토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르누아르의 소박한 집에서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할아버지 르누아르를 만나서 좋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동안 봐왔던 화려하고 찬란한 르누아르의 그림의 이미지와는 좀 다른 할아버지를 만나서 새로웠어요. 오래도록 기억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