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y golden age Feb 14. 2024

(2)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엘 그레코

프라도 미술관은 우리 가족에게 매우 인상 깊은 곳이다. 아주 오래전 스페인 여행 중에 잠시 들렀던 프라도는 시간도 촉박하고 스페인 그림도 모르겠어서 대충 보고 나오면서 아쉬운 마음에 두꺼운 도록을 한 권 사 왔었다. 서울에 돌아와서야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된 도록으로 잘못 구입했음을 깨닫고 고이 모셔두며, 언제 다시 가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후 3대가 함께한 스페인 여행 때는 마드리드에서의 일정을 충분히 잡아서 프라도 미술관에서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때 인터넷을 통해서 미술관을 동행하며 그림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한국 유학생을 섭외했는데, 결론은 대 만족이었다. 마드리드의 예술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있던 그분 덕분에 주요 작품에 대한 설명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들으며 관람할 수 있었다. 이 경험으로 어떻게 작품을 봐야 재미있게 볼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었고 나름 미술관 여행의 노하우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된 거 같다. 과거 미술관에서 그냥 직진만 했던 시간들이 아까웠지만, 그 또한 과정이었으리라. 현지에서 미술관 설명을 해주는 다양한 업체가 있으니 활용하기를 추천한다.


미술관 출입구가 위치한 서쪽 입구에는 고야의 동상이 서 있는데 이곳이 만남의 장소인 거 같다. 대로변 쪽에 접한 미술관 중간 지점에는 벨라스케스의 동상이 있다. 이 둘은 스페인의 역사를 그림으로 남겨준 위대한 화가들이다. 동상은 없지만 스페인의 대표화가 한 명을 더 추천하자면 종교화를 많이 남긴 El Greco (1541-1614)이다.


그는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에 속해있던 크레타섬에서 출생한 그리스 태생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이미 젊은 나이에 화가로써 인정받으며 이탈리아 베니스로 건너가서 정통 비잔틴 성화 훈련을 받는다. 이후 로마에서 작업하면서 그만의 화풍을 만들어갔다. 베니스 르네상스 양식을 접목시키면서도 전통적인 종교화와는 차별되는 독특함을 담아낸다. 1577년 36세에는 종교의 중심이었던 스페인의 톨레도로 이주한다. 왕실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던 그는 교회와 수도원, 병원등에서 제단화를 의뢰받고 종교 화가의 대가가 된다. 그는 회화뿐만 아니라 교회와 수도원의 건축에도 관여하였고 조각도 디자인했다. 그가 의뢰받은 초상화는 사실적인 인물 묘사는 물론이고 성격까지 보여주며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된다. 인생에서 큰 굴곡은 없었던지, 개인 음악가를 고용하여 연주를 들으며 식사할 정도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시대의 화가로써는 특이하게도 풍경화는 세 점밖에 남아있지 않고 신화도 거의 그리지 않았다. 평생 동안 오로지 성서의 스토리와 성인들, 그리고 의뢰받은 초상화만 그렸다. 그의 화풍은 다른 어느 화가와도 같지 않고 뚜렷하게 구별된다. 인물은 길쭉하여 민첩해 보이고 빛을 받아 환하며 화려한 색상을 사용했다.


왼쪽 <성 안드레아와 프란치스코, 1595> 프라도 미술관                        오른쪽 <성 마르틴과 거지, 1599> 워싱턴 National Gallery


기독교 성화의 대표 주제인 <목자들의 숭배>는 수많은 작품이 남아있다. 엘 그레코도 여러 점의 <목자의 숭배> 제단화를 남겼는데, 프라도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은 그가 사망하기 직전인 1614년에 완성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성서의 한 장면을 기본으로 묘사했는데 상상력과 직관을 더하여 성서보다 더 생생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형태보다는 빛과 색의 사용을 중요시했고, 그림 속 인물들은 빛을 품고 있거나 빛을 반사시켜 초자연적이고 신비롭게 표현되었다. 후기로 갈수록 주변 상황은 무채색으로 처리되고 중심인물들은 원색을 사용하여 강조하였다. 원색도 아주 기본적인 삼원색을 기본으로 한다. 그림 속 인체 비율은 길고 뒤틀리는 표현으로 격렬한 몸짓이 느껴진다. 그만의 특징이 너무나 확실해서 미술관을 다니다가 엘 그레코의 그림은 무조건 빠르게 알아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아래의 두 작품 안톤 라파엘 멩스 (독일 1728-1779)의 작품과 무리요 (스페인 1617-1682)의 작품으로 엘 그레코의 작품과 비교해 보자. 모두 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단지 엘 그레코의 그림은 완벽하고 아름다움에 더해 하늘하늘 움직이는 듯 역동적이다.


엘그레코 <목자들의 숭배, 1614> 프라도미술관


안톤 라파엘 멩스 <목자들의 숭배, 1770> 프라도미술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그림 <목자들의 경배, 1650> 프라도 미술관


마리아 데 아라곤 제단화(Doña María de Aragon)는 엘 그레코가 1596년부터 마드리드에 있는 예배당을 위해 제작한 것이다. 이 제단화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데 총 7점으로 구성되었을 거라 추정되며 현재 6점이 보존되고 있다. 나폴레옹의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스페인 왕이 된 후, 종교탄압으로 1810년에 이 제단화는 해체되었다. 현존하는 6점은 성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순서대로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 십자가 처형, 오순절 성령강림, 목자들의 경배, 수태고지, 그리스도의 침례 이렇게 6점이 남아있고, 7번째 그림인 <성모의 대관식>은 분실된 걸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5점을 프라도 미술관에서 볼 수 있고, <목자들의 경배>는 루마니아의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보통 종교화를 보면 그 당시 얼마나 신실한 마음을 가지고 혼을 다해 그렸을까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맹목적인 신앙심을 가지고 그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엘 그레코의 제단화 시리즈를 보면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의 화풍이 차별화되어서 그런 건지, 기존의 성서화와는 다르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당시에 글을 읽지 못하던 성도들은 엘 그레코의 제단화를 보며 굉장히 감동받고 쉽게 이해했을 거라 생각된다. 그냥 잘 그린 화가의 그림이 아닌 성지순례를 하는 느낌이 든다. 엘 그레코가 평생을 살았던 톨레도 방문도 추천한다. 톨레도 대성당과 수도원에는 제단화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정말 환상적이다. 마드리드에서 가까워서 하루 코스로 다녀올 수 있다. 프라도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제단화 중 <오순절 성령강림, 1600> 이 가장 인상 깊어서 함께 싣는다.  



왕실의 그림과 성화가 많지만 그렇다고 지루하지 만은 않다. 결국 남편은 프라도의 매력에 빠져 3일을 연달아 프라도에서 시간을 보냈다. 평범한 경험은 아니지만 그만큼 좋았나 보다. 미래의 세계를 그린듯한 히에로니무스 보스 (1450년경-1516)의 <세속적 즐거움의 정원, 1500> 은 다시 봐도 신기하다. 폴랑드르 북부의 화가 요아킴 파티니르의 <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이 있는 풍경, 1524> 도 천국과 지옥을 묘사한 몽환적인 그림이니 놓치지 말자.




작가의 이전글 (1)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