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 Carlsberg Glyptotek Copenhagen
호텔방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 Ny Carlsberg Glyptotek 뉴 칼스버그 글립토테크 박물관의 푸른색 돔과 하늘 뷰가 얼마나 예쁘던지, 덴마크 그림 속의 하늘색이 다채로운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모던하고 낮은 톤의 호텔방도 참 마음에 들었다. 욕실의 타월조차도 도톰하고 뽀송뽀송한 것이 아주 조금 다름이 느껴지며 우와… 감탄이 나왔다. 이것이 북유럽의 센스일까. 박물관의 위치는 중앙역에서 가깝고 바로 옆에는 1843년에 문을 연 놀이공원인 티볼리 정원이 있어서 참 좋다고 생각했지만, 개관 당시의 귀족들은 도로 한복판에 박물관이 덩그러니 서있고 평민들이나 놀러 오는 공원이 바로 옆에 있다고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글립토테크라는 이름이 어려우니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편의상 칼스버그 박물관이라고 칭하도록 하겠다.
외관은 웅장하고 내부는 무척이나 이국적이다. 이런 컨셉의 미술관은 처음이라 색다르게 느껴졌다. 미술관 정문으로 들어가면 마주하게 되는 의외의 정원, 이름하여 Winter garden이 중심에 있다. 바깥의 변화무쌍한 날씨와는 상관없이 나뭇잎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 시간이 멈춘듯한 이 공간은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맑게 하는 오아시스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유리 돔은 온실 속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천장에 닿을 듯 쭉쭉 뻗은 야자수와 열대 식물로 꾸며진 정원, 그리고 1층에 가득한 고대 조각품들을 보면서 내가 어디에 와 있는 건지 신비롭게 느껴진다. 5000년 종교와 시대를 초월한 수집품이 가득한 이곳은 덴마크에서 꼭 추천하고 싶은 미술관이다.
Ny Carlsberg Glyptotek은 덴마크 맥주 양조업자인 Carl Jacobsen (1842-1914) 부부가 만든 박물관이다. 그렇다, 맥주회사의 가문이 맞다. Ny Carlsberg는 New Carlsberg라는 뜻으로, 칼스버그 양조업을 하는 아버지 J.C. Jacobsen으로부터 양조 기술을 이어받아 설립한 회사 이름이다. 부부는 1882년에 양조장 근처 그들의 별장에서 컬렉션을 공개하면서 박물관이 시작되었다. 화려한 저택에서 외동아들로 자란 Carl Jacobsen는 어릴 때부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며 동시에 예술 애호가로서의 기본 소양도 쌓게 된다. 처음 칼스버그 박물관 오픈 시에 이미 고대 그리스와 로마 조각품, 그리고 당대의 프랑스 조각품을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점점 늘어나는 컬렉션으로 전시 공간이 부족해지자 박물관을 코펜하겐 중심부로 옮기기로 하고, 5년간의 건축 기간을 거쳐 1897년에 공간의 일부를 완성하며 개관하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칼스버그는 성공한 글로벌 양조회사로써 ”It All Comes from Beer!”라는 사명처럼 재단을 통하여 과학과 예술의 연구 및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훌륭한 기업이다. 그 유명한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조각품도 Jacobsen이 덴마크 조각가 Edvard Eriksen에게 의뢰하여 제작하고 기증한 작품이다.
칼스버그의 하이라이트는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품들이다. Jacobsen은 회화보다도 모든 시대의 3D 입체적인 인간상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박물관을 처음 열었을 때부터 매우 귀한 작품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장 처음 구매한 고대 유물은 그리스의 조각상 <Rayet의 두상, BC 530-520경>이다. 1879년에 파리에서 구매한 이 조각은 그리스 신전이나 무덤의 표지로 세워지던 조각상의 일부로 추정된다. 엄청난 가치가 있는 유물이었지만 Jacobsen은 고대 조각에서 별로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였다. 이후 1883년에 또 하나의 대표작을 우연히 매입하게 되는데, 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로마 제국의 석관이었다. Jacobsen의 요청으로 Raphael의 그림을 구하기 위해 로마로 간 친구가 미술 판매상을 통하여 매입해 왔다. Jacobsen은 석관을 시작으로 고대 조각상에 관심을 가지고 대거 수집하게 되고, 1887년에는 아테네를 여행하며 수천 개의 선사시대 석기를 사들였다. 1899년에는 그들의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하고, 건축 공모전을 통하여 디자인을 선정하고 박물관 확장 공사를 추진한다. 20년간 공들인 부부의 예술품 수집과 수년간의 고민 끝에 선정된 부지, 그리고 자금 조달로 마침내 1906년이 되어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개관될 수 있었다. 겨울정원에서 열린 박물관 개관식에서 그는 신념을 밝혔다. 칼스버그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살아있는 예술 장소가 되어야 한다. “Living art for living people!” 너무 멋진 마인드이다.
Jacobsen은 고대 그리스 작품을 수집하면서 그리스 인들의 영감이 된 이집트 문화를 연결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칼스버그의 시그니쳐인 이집트 컬렉션의 상당수는 루브르 박물관이 자금사정으로 경매에서 작품 매입을 망설일 때 발 빠르게 결정해서 사들인 유물들이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 시대부터 기독교 시대였던 7세기까지의 작품들로 18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Jacobsen이 수집한 첫 번째 이집트 유물은 1884년에 베이루트 주재 덴마크 영사이자 중동 미술 무역 전문가를 통해 가져온 미라와 관이었다. 1890년에는 파리 경매에서 중요한 이집트 조각상들을 성공적으로 매입하게 되는데, 이때 가져온 <앉아있는 아누비스, BC 664-525>가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집트 신화에서 죽은 자의 신으로 알려진 아누비스는 대형 사이즈의 조각이 드문데 이 유물은 45센티나 된다. 아누비스는 룩소 신전을 지키던 신으로 머리는 자칼 (이집트 늑대) 모양을 하고 있고 손에는 생명을 상징하는 앵크 (고대 십자가)를 쥐고 있다. 또한 카이로에서는 이집트 학자의 도움으로 이집트 제12 왕조의 파라오였던 Amenemhat III (통치기간 BC 1860-1814)의 조각상등 귀한 유물들을 손에 넣게 된다.
이집트 유물에 집중하며 흥이 난 Jacobsen은 코펜하겐에 이집트 판테온을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1900년까지 엄청난 유물을 사들인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이들은 매입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아예 발굴부터 직접 하겠다는 의지로 이집트 정부와 카이로 박물관으로부터 합의를 받아낸다. 그동안 독일과 프랑스 런던의 박물관에서 만난 이집트 유물들을 보면서 어떻게 가져왔을까 너무 궁금했는데, 일부 답을 얻은 듯하다. 칼스버그는 1차 세계대전 전까지 지속된 발굴로 3미터가 넘는 화강암 조각상인 <람세스 2세와 프타신, BC 1250년경>을 가져왔다. 양조장 운영만으로 남의 나라 유물 발굴이 가능했다고 하니, 국가를 능가하는 재력이 아니었나 놀랍기만 하다.
고대 중동의 엄청난 컬렉션을 보고 나면 바로 프랑스 조각품 전시실로 연결된다. Jacobsen은 1878년 파리 전시회에서 프랑스 조각을 보고 열광하며, 그 어느 시대의 조각도 프랑스 조각처럼 압도적인 것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깊게 매료되었다. Eugène Delaplanche (1836-1891) 외젠 들라플랑슈의 <Music, 1878>을 시작으로 로댕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며 그의 스튜디오까지 직접 찾아가서 작품을 구매했다. 이곳은 거의 로댕 미술관 수준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로댕의 <Kiss>를 다시 보니 Jacobsen이 왜 프랑스 조각품이 압도적이라고 말했는지 알 거 같았다. 다소 딱딱한 고대 조각과는 다르게 프랑스 조각은 작가가 작품에 영혼을 불어넣은 듯하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완벽하고 절절한 아름다운 사랑이 느껴지는 <Kiss> 작품을 코펜하겐에서도 만나다니 반가웠다.
Jacobsen 부부는 지속적으로 덴마크와 프랑스 당대의 미술품을 구매하며 대중을 위한 컬렉션을 늘려 나갔다. 덴마크 황금기 시대 작품은 잔잔하고 차분하며, 20세기로 들어가면서 작가 개개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듯하다. 특히 프랑스 인상주의 컬렉션이 알차게 촘촘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 인상주의 교과서 그 자체를 보는 듯했다. 코펜하겐에서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품부터 이집트 유물들, 그리고 인상주의 컬렉션까지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앞으로는 칼스버그 맥주를 보면 야자수 정원을 가진 미술관이 떠오를 거 같다. 정원 옆에 위치한 북스토어와 카페도 참 유니크한 공간이니 잠시 쉬어 가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