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EN Museum of Modern Art
ARKEN Museum of Modern Art는 완전히 새로운 곳을 발굴 한 느낌에 소중하게 추억하는 곳이다. 클래식 작품들로 가득한 덴마크 미술관 틈에서 현대 미술관이라는 점이 꽤나 신선했다. 코펜하겐 중앙역,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따뜻한 라테와 빵을 사서 들고 기차를 탔다. 검정깨가 뿌려진 빵이 참 고소하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남서쪽으로 15분 정도 이동하면 Ishøj라는 바닷가 소도시가 나온다. 아주 천천히 이동하는 칙칙폭폭 기차에서 비 오는 풍광은 아름다웠다. 라테를 마시다 보니 어느새 Ishøj 역에 도착해서 버스로 환승. 일반 버스가 미국의 스쿨버스와 같은 노란색이다. 미술관까지는 몇 정거장 안되어 금세 도착했다. 입구까지 조금만 걸어가면 되는데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비바람으로 가져간 우산은 뒤집히다 못해 완전히 휘어졌다. 옆에서 걷던 어린 아기는 바람에 놀라서 울음을 터트린다. 와아 이렇게 강한 비바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미술관 입구에는 흔들 목마를 탄 아이가 손을 흔들며 환영 인사를 한다. 역사적인 기마상은 과거의 왕과 군대의 힘을 상징하지만, 흔들 목마를 탄 아이는 현대판 기마상으로 성장하는 영웅의 희망적인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아이를 통해 승리와 패배만 있던 과거가 아닌, 그 이상의 것에 의미를 두는 자존감 높은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역시 어려운 현대 미술이다. 그냥 예쁘게만 보이는데, 이런 뜻이 담겨있는 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현대판 기마상은 보기에도 좋았다. 이 작품은 2012년에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전시되었던 작품을 ARKEN 으로 가져와서 입구에 설치하였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있는 <the fourth plinth, 4번째 주각>은 1841년에 건설되었다. 원래는 윌리엄 4세의 기마상을 올려두려고 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인해 150여 년간 비어 있었다. 지금은 여러 작가의 현대 조각품을 선정하여 전시하는데, 어떤 작품이 올려질지 기대하게 되는 재미가 쏠쏠한 작은 무대이다.
덴마크 출신인 Michael Elmgreen (1961)과 노르웨이 출신 Ingar Dragset (1969)는 Elmgreen & Dragset라는 이름으로 듀오로 활동한다. 이 둘이 1994년 코펜하겐에서 처음 만났을 때에는 Michael은 시를 쓰는 작가였고 Ingar는 연극을 공부하고 있었다. 이들은 뜻이 맞아 1995년부터 함께 작업을 시작하였고, 1997년에는 베를린에 정착해서 건축, 퍼포먼스, 설치 작업등의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회 문화 정치 제도를 한 번씩 짚어주는 게 호기심을 자극하며 유쾌함이 느껴진다.
지하 1층부터 관람하기 위해 내려가는 계단에서 스위스 예술가 Ugo Rondinone (1964-)의 레인보우 작품 <where do we Go from here> (1999)을 만나게 된다. 이 작가는 대형 조각을 화려한 색상으로 귀엽고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무지개와 광대를 함께 무대에 올리기도 하고, 형형색색 창문을 배치하기도 하며 알쏭달쏭하게 표현해 내는 흥미로운 작업을 보여준다.
미술관은 대형 작품들이 설치될 수 있도록 층고가 높고 전시실의 문도 컸다. 대형 작품들이 여유 있게 공간을 쓰며 전시가 되어있는데, 솔직히 너무 현대 작품들이라서 내가 아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 ARKEN의 소장품 중에는 Anselm Reyle (1970)라는 독일 작가의 작품이 비중 있게 전시되어 있었다. 대규모의 추상화와 설치, 조각등 다양한 시도를 하는 작가이다. Foil 회화 시리즈가 유명하고, 줄무늬 시리즈도 사랑받는다.
권투 경기의 사각 링처럼 생긴 하얀색 매트리스 위에서 흰색 짐볼과 함께 방방 뛰어노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눈에 띄었다. 조용한 미술관 안에 설치된 색다른 놀이 기구의 느낌의 작품으로, 공의 크기는 3미터나 되는 아주 큰 풍선공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Giant Billiard>로 1967년에 비엔나에서 결성된 반항적인 건축가이자 예술가 그룹인 <Haus-Rucker-Co>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건축가 Laurids Ortner, Günter Zamp Kelp, 그리고 화가인 Klaus Pinter가 모여서 만든 그룹으로 전통적인 건축과 고리타분한 사고를 깨고자 했다. 나에게는 당구보다는 권투장으로 보이는데… 현대미술은 해석하기 나름이지 않나. 이 작품은 1970년도에 비엔나와 뉴욕에서 전시되었었고, 50여 년 만에 재창조되어서 ARKEN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그룹의 작가들은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만들기 위하여 상상력을 풍부하게 담아서 의류와 가구 등을 디자인했고, 지금도 각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은 ARKEN의 소장품은 아니고 기획전이어서, 또 다른 장소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ARKEN에는 400개가 넘는 덴마크, 스칸디나비아 전후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은 1996년 바닷가의 인공 해변가에 지어졌는데, 마치 난파선과 같은 건축물로 굉장한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건축 공모전에서 우승의 주인공은 학생이었던 Sơren Robert Lund으로 어린 나이에 대담한 디자인으로 업계를 놀라게 했다. ARKEN은 덴마크어로 ‘방주‘라는 의미로, 바이킹의 나라였던 덴마크의 이미지를 건축에 담아냈다. 건물 내부의 인테리어는 무거워 보이는 큰 철문을 사용하고, 볼트를 노출시켜서 거칠어 보이도록 했고, 철제 계단을 설치하여 선박 내부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이런 차별화된 디자인은 현대 작품과도 잘 어울렸고, 관람객에게도 전혀 새로운 공간에 들어온 듯 기분전환이 돼주었다. 처음 만나보는 작가들의 아이디어와 기획의도를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기만 하다. 계절이 좋다면 바닷가 모래 해안을 산책하며 조각품과 자연을 느끼면 좋을 듯했지만, 우리는 날씨가 안 따라줘서 미술관 2층의 카페에서 모래밭과 마른풀, 먹구름과 비바람 치는 풍경을 감상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뮤지엄 샵도 감각적이고 컬러풀한 서적들로 예쁜 공간이었다. 코펜하겐에서 굳이 외곽까지 나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시간 여유가 된다면 반나절 코스로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