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도 까도 양파 같은 네덜란드
나는 여행이 아주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전국 방방 곡곡을 다니며 우리 국토의 숨결을 느낄 수도 있고, 바닷가 휴양지에 가서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도 있고,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고, 자연탐방이나 문화탐방이 될 수도 있고, 구호단체나 선교활동으로 집을 떠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여행이 있을 거다. 여행 가서 수영하고 먹고 잠만 자다가 온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 자체가 교육이 되고, 가족과 친구와 함께하는 관계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때마다 치르던 시험공부를 하며 동해안에서 잡히는 생선 이름, 우리나라의 평야 이름, 산맥 이름을 외우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어이가 없다. 그걸 왜 그렇게 달달 외웠는지. 물론 그 또한 학업의 과정이었겠지만, 외워서 시험 보는 거밖에 방법이 없었단 말인가. 내 경우에는 성인이 된 후에 여행을 다니면서 다양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궁금해서 찾아보다 보니 재미도 있고, 배워야 할게 끝도 없이 깊게 있음을 느끼며 이래서 공부는 평생 하는 거구나 싶다.
어렸을 때 길지는 않았지만 해외생활을 몇 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다른 문화를 접하며 받은 충격과 흡수되는 정도가 얼마나 컸던지를 잘 알기 때문에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해외 생활에서 조금 빨리 눈을 떠서 그런지 새로운 것을 접하고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고 소중하다.
여행을 가기 전에 관련된 책을 사서 읽는데, 한 권 아니고 서너 권 이상 보는 거 같다. 여행지의 정보를 알려주는 가이드책뿐만 아니라 역사 종교 미술 음악등 분야를 넓혀서 다양한 책을 읽으며 다음 여행을 준비한다. 한 지역의 여행책만 보더라도 각각의 책마다 담고 있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권을 보는 편이다. 공들여 멀리 여행 가는데 준비과정에도 투자를 해야 몇 배를 얻을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해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최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자. 여행 전 준비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딸이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입학을 축하하며 뉴욕과 보스턴으로 여행을 갔었다. 보름정도의 일정이었는데 이때 여행 관련 책을 몇 권 사주면서 매일매일의 계획을 잡으라고 숙제를 내줬다. 딸은 신이 나서 스스로 여행준비를 했는데, 그때 딸이 준비한 플랜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책을 지역별로 다 쪼개가지고, 필요한 곳만 선별해서 묶음 편집을 하고, 매일매일의 볼거리 먹거리 카페와 쇼핑목록까지 리스트를 쫘악 만들고 지도까지 오려 붙여서 한 손안에 들어오는 나만의 책으로 새로 만들었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여행 중 가볍게 들고 다니며 손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놓은 것이 참 기특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한번 주도적인 여행을 경험하고 나니까 이후부터는 혼자서도 계획을 짜고 예약하고 짐도 싸서 여행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까운 곳들을 다니며 아기새가 멀리 날아갈 준비를 하는 듯하더니, 이내 멀리멀리 유학을 떠났다.
휴양지에서 가만히 쉬는 여행도 좋아하지만 그건 나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들도 내 스타일을 따르게 된 거 같다. 궁금한 게 많고 보고 싶은 게 많아서 당분간은 좀 더 내 스타일대로 다닐 듯하다. 그렇다고 아예 쉬는 여행을 안 하는 것은 아니고, 적당히 섞어서 계획을 잡는다. 도심에서 너무 많은 걸 봐서 머리가 아파질 즈음에는 한적한 마을로 이동해서 여유를 갖는다. 꼭 동반자 모두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건 아니다. 미술관에서는 약속시간을 정해놓고 흩어져서 각자 보고 싶은 대로 보다가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한다던지, 도심에서도 각자의 취향대로 다니다가 식사할 때 즈음 만난다던지, 따로 또 같이 자유롭게 다닌다. 아침잠 없고 기운이 남는 사람은 새벽부터 나가서 산책을 하고 들어오기도 한다. 우리는 식사 시간에 다 같이 모이면 대화 주제가 너무나 다양하다. 역사와 종교부터 시작해서 패션, 트렌드, 음식, 와인, 옛 기억 소환까지 함께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3대가 함께해도 대화 주제는 무궁무진하고 잘 통한다. 이래서 여행이 좋은 거 같다. 밖에서 만나면 더 반가운 사이가 가족이 아닐까.
우리는 네덜란드는 각자 또는 함께 여러 번 방문했었다. 반고흐 미술관을 목적으로 간 적도 있고, 출장으로 간 적도 있고, 손녀랑 조부모님이 함께 간 적도 있고, 학교에서 필드 수업으로 간 적도 있고, 너무 좋았어서 또 간 적도 있었다. 네덜란드에는 예술 명문 대학교들이 있고, 전 세계에서 미술 애호가들이 전세기를 타고 속속 모여드는 아트페어 TEFAF (The European Fine Art Fair)도 열린다. 미술을 좋아한다면 네덜란드는 여러 번 방문해도, 양파 까듯이 보고 또 봐도 또 볼 곳이 나오는 도시라고 느껴질 거다. 다음 챕터에서는 네덜란드의 두 도시 암스테르담과 헤이그의 미술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보통 여행으로는 헤이그까지는 잘 가지 않는데, 미술을 좋아한다면 헤이그는 빠져서는 안 되는 도시라 꼭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