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장의 베르메르 카드 모으기
Johannes Vermeer (1632-1675)를 알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서서히 스며들어온 요하네스 베르메르. 그도 그럴 것이 이 작가의 작품수는 대단히 적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서 세계 몇 대 미술관을 섭렵해도 몇 점 만나기가 어렵다. 그의 작품 중에 진품으로 확인된 그림은 30점에서 37점이라고 하는데, 연구 주체마다 주장하는 작품수가 다르다. 작가의 일생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고 대부분의 그림에 날짜와 서명을 남기지 않아서 작품의 진품여부 확인뿐만 아니라 연대순 정리도 어렵다고 한다. 베르메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가 같은 상황이지 않았을까. 최근 들어 베르메르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조명받고 있다. 물론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모나리자>급으로 유명하지만, 그 또한 <모나리자>와 견주며 홍보한 효과도 있었을 거다. 어찌 됐건 베르메르는 네덜란드의 대표작가이고,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에 가장 많이 소장되어 있으니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4점)과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3점)에 방문하게 되면 꼭 챙겨보자.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베르메르 기획전시가 여러 번 있었다. 2007년도에는 <우유 따르는 여인, 1657-1661> 한 점을 포함한 네덜란드 풍속화를 보러 50만 명이 방문했고, 2008년도에는 베르메르 작품 7점이 포함된 기획전에 93만 명이 다녀갔다. 게다가 반출은 안 한다고 알려진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1665-1667>는 1984년, 2000년, 그리고 2012년까지 무려 3회나 일본까지 날아와서 전시가 되었다. 또한 2018년부터 2019년 초까지 도쿄와 오사카에서 있었던 <베르메르전>에는 그의 작품 9점과 6점이 포함되었는데, 전 세계 미술관 19곳에 흩어져 있는 작품 중에 무려 9점을 빼온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기획력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일찍이 네덜란드와 무역을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교류가 활발한 것이 영향을 끼쳤을까. 일본의 베르메르 사랑은 실로 엄청난 거 같다. 이 즈음에서는 부러운 마음이 든다.
2023년 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Rijksmuseum에서는 이번 생에 두 번 볼 수 없을 거라는 <베르메르전>이 개최되었다. 이 전시를 기획하는데만 7년이 걸렸고 그의 작품 28점을 모아서 전시했다. 오픈하자마자 55만 장의 티켓이 매진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베르메르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요즘 아트페어에서 핫하다는 작품들의 분위기와는 아주 동떨어지게 고루하고 밋밋한 작품이지 않나. 이런 클래식은 너무나 흔한데, 왜 유독 베르메르는 BTS 못지않게 인기가 있을까.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작가가 베일에 가려있어서 신비스러움이 더 해져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자극적인 요소는 희소성이 아닐까.
37개 정도는 마음먹으면 다 찾아서 볼 수 있을 거 같아 엉뚱한 도전심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사실 몇 개를 보고 안 보고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냐만, 이런 소소한 관심과 작은 목표는 삶에 재미있는 양념이 된다. 미술관을 보고 나오면 대부분의 그림은 다 스쳐 지나가서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기 마련인데, 베르메르의 작품은 희소성 때문에 목적이 되고 성취감도 느껴진다. 나는 베르메르라는 작가를 알기 이전에 미술관을 다니면서 분명 그의 작품을 봤을 텐데 몰라봤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너무 아쉽다. 베르메르를 인지한 이후에 열댓 개의 작품을 만나본 거 같다.
베르메르는 큰 사이즈의 그림은 그리지 않았고, 종교화나 신화적인 주제를 담은 그림도 그리지 않았기에 최소 3점 정도는 그의 작품이 아닐 거라는데에 이견이 없다. 또한 그의 서명과 날짜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메르의 분위기가 전혀 풍기지 않기 때문에 그가 그렸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작품도 있다. 모두 연구가들의 의견일 뿐 진실은 알 수 없다. 의견이 분분한 작품조차도 귀한 한 점이기에 여전히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간혹 비전문가인 내 눈에도 엥? 이게 베르메르 그림이라고? 의심이 드는 작품이 있는데, 학자들에게는 오죽하랴.
베르메르의 일생을 집요하게 파고든 연구가들에 의해서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장인, 장모의 에피소드가 모아졌다. 그러나 베르메르에 대해 소설을 쓰기에는 정보가 너무 없었다. 그나마 유아세례를 받은 기록이 남아있어서 1632년생임이 확인되었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가, 1653년에 결혼을 공증받았다는 기록이 발견되었고, 43세에는 사망신고가 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출생, 결혼, 사망으로 매우 심플한 인생이다. 그의 그림 속 디테일들을 통해 그의 생활이 궁핍하지는 않았을 거고 교양도 갖추었을 거라고 추측하며, 수많은 가설이 나오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영화까지 나오게 된 거 같다.
베르메르의 작품이 전부 다 실려있는 도록을 소장하기를 추천한다. 비슷비슷한 그의 작품들을 비교해서 보면 매우 흥미롭다. 그의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델은 몇 명 없었던 거 같다. 비슷비슷하게 닮은 얼굴이라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와 모델 둘 다 의상에는 무심했던지 같은 옷을 여러 번 입는다. 특히 황금색과 블루색 드레스가 자주 반복된다. 모델은 모자와 보석, 특히 진주목걸이를 즐겨 착용한다. 대부분의 그림에서는 창문이 왼쪽에 있어서 빛이 왼쪽에서 들어오고, 창문을 그려 넣지 않더라도 왼쪽에서 빛이 들어온다. 뒷 배경에는 큰 세계 지도나 그림이 걸려있다. 그리고 다양한 악기가 등장한다. 섬세하게 직조된 카펫과 화려한 커튼도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가 젊었을 때 숙련된 원단 직공이었기에 베르메르도 수습생으로 일했을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원단을 소품으로 많이 썼을 거라 추측한다. 와인병과 와인글라스가 자주 등장하고, 그의 고향 델프트의 블루패턴이 들어간 도자기도 자주 보인다. 바닥에는 체크무늬 사선 타일이 종종 사용되어 공간감을 준다. 대부분 그림 속에는 인물이 한 명 내지는 소수만 등장한다. 거의 다 실내 작품이고, <델프트 풍경, 1660-1663>과 <The Little Street, 1657-1661> 두 점만 실외 풍경이다.
미술관 서점에서 책 구경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베르메르에 대한 흥미로운 책들을 발견했다. 베르메르 작품에 등장하는 세계 지도, 악기, 모자에 대해서만 따로 연구한 책들이었다. 한 작가의 그림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 연구 제목을 뽑아낼 수 있다니, 사람들의 호기심이란. 그중에서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출판한 책에는 베르메르 그림에 등장하는 악기와 그 시대 음악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시대 작품들 중에 음악을 소재로 그린 작품은 전체의 12퍼센트나 되고, 특히 풍속화로 분류된 작품들만 따로 따져보면 무려 30퍼센트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베르메르의 작품 중에는 무려 12점에서나 악기가 등장한다. 이전의 음악은 종교를 위해서 존재했지만, 이때는 음악이 일상으로 스며들었음을 엿볼 수 있다.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바뀌면서 오르간 이외의 악기는 금지되었고, 복잡하고 웅장한 바로크 음악도 쇠퇴하게 된다. 그러면서 일반 사람들은 다양한 악기를 생활 속에서 즐기게 된 거 같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차분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용된 악기는 전혀 소박하지 않고 부의 상징이었다. 악기를 조금 더 살펴보면 virginal이라는 건반악기가 여러 번 메인 소재로 등장한다. 소형 하프시코드인 버지널은 건반이 오른쪽에 있기도 하고 왼쪽에 있기도 하는데 베르메르에 등장하는 버지널들은 오른쪽에 건반이 있다. 뚜껑에는 유명 화가에게 의뢰해서 풍경화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한다. 버지널은 Antwerp에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가문이 있었는데, 한 대의 가격은 보통 사람들의 일 년 치 임금보다도 높은 가격이었다고 한다. 악기의 대부분은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졌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이태리, 독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가져온 조금 더 특별한 악기를 수집했다.
그림 속 악기는 어김없이 아름다운 여성이 함께했다. 아마도 이 여성은 교육 수준이 높고 여유로운 생활을 했을 거 같다.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는 남자들은 대체로 중산층 아래였다고 한다. 일상에서 음악을 즐겼다고는 하지만 계층에 따라 역할이 달랐다. 간혹 버지널 그림과 함께 남성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음악 선생님이었을 거다. 여담으로 당시의 엘리트들은 플루트, 레코더, 백파이프와 같은 관악기들을 품위 없다고 연주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호흡을 할 때 얼굴이 일그러지기 때문에 기피했다고 한다. 그림 속에 담겨있는 당시의 생각을 엿보는 것도 재미있다.
네덜란드 황금기 시대 그림을 보면 선술집에서 흥에 겨운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 많다. 베르메르의 그림에도 선술집과 와인잔이 여러 번 등장한다. 여러모로 풍요롭던 시대였기에 소시민들도 굶지 않고 풍족함을 누린 걸까, 그림에 묘사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활기차 보이며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선술집과 와인 등을 소재로 한 그림의 비중은 전체의 몇 퍼센트나 차지할지도 궁금해진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만나러 헤이그를 가는 길에는 비행기에서도 기차에서도 이 그림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관찰해 보았다. 이 작품은 실제로 모델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상상으로 그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일단 나는 이 진주 귀걸이가 조금 이상하다. 진주 사이즈가 말이 안 된다. 베르메르의 생활 수준을 아무리 높게 봐줘도, 어디서 이렇게 큰 진주를 구해 왔단 말인가. 모델의 목이 짧으며 옷깃이 올라와 있고 머리를 갸우뚱하게 옆으로 돌리고 있다지만, 진주가 너무 커서 옷깃에 거의 닿을 지경이다. 이렇게 큰 자연산 진주가 있었을까. 크기도 크기지만 재질도 진주 같아 보이지 않는다. 조개껍질이라면 모를까. 어쨌든 얼굴 사이즈에 비해서 진주가 너무 커서, 자세히 보면 볼수록 비율이 어색하게 다가온다. 나도 이 그림은 상상해서 그렸다에 한 표 던진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을 직접 대면하게 되었을 때에는 진주 귀걸이 크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 자그마한 소녀 그림이 주는 신비로움을 표현하기에는 형용사가 부족하다. 미술관 여행을 계획한다면 베르메르를 기억하고 하나씩 하나씩 모아보는 재미를 느껴보기를 권하고 싶다.
베르메르 작품은 유럽에 22점, 미국에 14점, 일본에 1점으로 총 37점이다.
독일 Frankfurt Städel (1점) Gemäldegalerie Alte Meister, Dresden (2점)
Gemäldegalerie, Berlin (2점) Herzog Anton Ulrich Museum (1점)
영국 National Gallery , London (2점) Kenwood House, London (1점)
The Royal Collection, The Windsor Castle (1점)
오스트리아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1점)
프랑스 Louvre (2점)
Dublin National Gallery of Ireland (1점)
Edinburgh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1점)
네덜란드 헤이그 Mauritshuis (3점) 암스테르담 Rijksmuseum (4점)
미국 뉴욕 Metropolitan Museum of Art (5점) 뉴욕 Frick Collection (3점) 뉴욕 Leiden Collection (1점)
워싱턴 National Gallery of Art (4점),
보스턴 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 (1점-도난당함)
일본 Tokyo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1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