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인턴쉽
출판사에서 제안을 해주셨다. 엄마와 딸이 함께 공동저자로 출판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음.. 물론이지요.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딸과 함께 글을 쓰고 있다. 내 글은 어느 정도 분량이 채워졌고, 딸은 직장인인지라 짬짬이 쓰고 있다. 딸의 첫 번째 글을 올려본다. 경험으로 얻은 소중한 미술세계의 또 다른 면을 알 수 있어서 공부시킨 보람이 있다^^
Sotheby’s Institute of Art 석사 과정의 마지막 학기에는 인턴쉽 과정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오래전에 수강했던 Art Loss Register 소속의 독일 변호사 Amelie Ebbinghaus의 강의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Art Law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타 대학에서 Art Law 과목도 수강하며 지속적으로 관심갖고 있던 차에 Art Loss Register에 인턴쉽을 지원하여 운이 좋게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였고, 이곳에서 새로운 분야를 접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2009년에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Edgar Degas (1834-1917)의 작품 <Les Choristes, 합창단, 1877>가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 위치한 Musée Cantini에 대여 중에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2018년 프랑스 외곽에서 마약류 불시 검문 중 버스의 화물칸에서 발견되었다. 이 작품이 도난당한 후 9년 동안 프랑스를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범인이 작품을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그 도둑에게는 작품을 구매할 고객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물론 없었을 거고, 갤러리나 아트페어, 옥션하우스와는 도난 작품을 거래하기가 무척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서 The Art Loss Register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The Art Loss Register는 세계 최대의 도난 미술품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는 미술품이 도난당하면 후에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오르세 미술관이 캉티니 미술관에 <Les Choristes>를 대여해 주는 경우처럼, 미술관은 소장품을 다른 기관에 대여하기 전에 The Art Loss Register의 데이터베이스에 작품을 등록하여 미술품을 보호하는 장치를 해둔다.
이와 같이 전 세계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소장품을 도난당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The Art Loss Register 데이터베이스에 작품을 등록한다. 또한 보험 혹은 이혼이나 유산상속 등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작품을 협의 없이 쉽게 판매하지 못하도록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기도 하고, 은행에서 작품을 담보로 대출을 제공할 때에도 소유권 변경을 방지하기 위하여 해당 작품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한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전 세계 수백 개의 옥션하우스와 주요 아트페어 (TEFAF, Art Basel, Frieze 등), 아트딜러, 뮤지엄, 경찰, 그리고 은행등에서 활용하게 된다.
갤러리가 아트페어에 참여할 경우에는 출품되는 작품이 The Art Loss Register의 도난품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는 보증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즉 갤러리는 출품되는 작품이 도난신고 된 작품이 아니라는 보증을 해야 한다. 이는 도난품이 판매되어 분쟁이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옥션하우스도 마찬가지로, 경매에 나올 예술품이 도난품이 아니라는 보증서를 사전에 받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The Art Loss Register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미술품 거래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The Art Loss Register에는 도난당한 작품들을 다루는 리커버리 부서와 시계와 보석과 같은 귀중품을 다루는 부서, 그리고 내가 인턴 생활을 했던 나치 약탈품을 전문으로 다루는 제2차 세계대전 리커버리 부서가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리커버리 부서는 나치가 약탈한 예술품을 원래의 소유자에게 반환하는 작업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으며 작품의 소유권 이력인 출처 (Provenance)를 밝히는데 집중한다. 옥션하우스나 아트페어에 작품이 출품되기 이전에 도난 여부뿐만 아니라 작품의 출처에도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절차이다.
만약 작품의 출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소유권이 이전되었던 기록이 발견된다면 그 기록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는 나치에 의해 약탈당한 작품이 새로운 소유주에게 판매되는 경우에 원래 소유자의 후손들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확인해야 하는 필수적인 절차이다.
The Art Loss Register는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의 악기까지도 데이터로 관리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장인에 의해서 악기가 제작되고 가문의 유산으로 물려주고 있기 때문에 나치에 의해서 약탈당한 숫자가 상당하다. 나는 이곳에서의 인턴 경험을 통해서 여러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터득한 리서치 방법은 이후 소더비에서 근무할 때 의뢰받은 작품들의 출처를 조사하는 데에 매우 도움이 되었다. 소더비 경매에 출품되는 예술품의 출처조사는 경매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전 작업으로 추정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The Art Loss Register에서의 경험은 미술시장의 기본적인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