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주리 미술관 옆 쌍둥이 건물 <주드 폼 국립 미술관>
(리사의 글)
The Art Loss Register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약탈당한 미술품 반환 업무를 담당하는 WWII Recovery 부서에 속해있었다. 하루에 수십 번씩 확인해야 하는 여러 데이터베이스 중 하나는 The Art Loss Register의 자체 데이터베이스였고, 이외에 나치가 약탈한 예술품을 관리하기 위하여 꼼꼼하게 작성한 리스트와 약탈품을 모아둔 수장고의 내용을 담아 둔 카탈로그, 그리고 전쟁 후 약탈품을 반환하기 위하여 작성된 자료들을 확인하는 게 주 업무였다. 꽤나 상세하게 남겨진 이 기록들 덕분에 많은 약탈품이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아갈 수 있었는데, 이 자료의 내용 중에 ‘Jeu de Paume’이라는 장소명이 자주 등장했다.
튈르리 정원에 위치한 오랑주리 미술관의 맞은편에 외관이 거의 동일한 건물이 한 채 더 있는데 그곳이 Jeu de Paume (주 드 폼 국립미술관)이다. 이 건물은 1861년 나폴레옹 3세의 명령으로 테니스장으로 지어졌고, 1909년부터는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22년부터는 독립적인 미술관으로 운영되었고, 현재는 사진과 미디어 아트 위주로 전시하는 현대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오랑주리 미술관과 데칼코마니 같이 닮았지만 오랑주리가 오렌지 온실로 사용되었던 아름다운 기억과는 다르게 주드 폼 미술관에는 어두운 역사가 있다.
1940년부터 1944년까지 나치의 특수 작전 부대인 ERR (Einsatzstab Reichsleiter Rosenberg)은 프랑스의 예술품과 유대인 소유의 미술품을 체계적으로 약탈하였고, 그것들을 독일로 보내기 전에 이곳 주드폼에 보관하였다. 프랑스 로스차일드 가문의 컬렉션과 미술 딜러였던 Paul Rosenberg (1881-1959)의 소장품을 포함한 많은 걸작이 이곳에 저장되었다. 나치 고위 관료 Hermann Göring은 종종 이곳을 방문해 나중에 있을 Adolf Hitler (1889-1945)의 Führermuseum (총통 박물관)을 위해 작품을 선별해서 오스트리아나 독일 등으로 보내거나,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예술품을 고르기도 했고, 주드 폼을 자신의 개인 갤러리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때 주드 폼에서 근무하던 프랑스 큐레이터 Rose Valland (1898-1980)는 자신이 독일어를 이해한다는 사실을 나치가 모르는 것을 이용해서 이만 점이 넘는 약탈품에 대한 정보를 비밀리에 기록해 두었다. 또 작품들을 이동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지면 중요한 기차 운송 정보를 프랑스에 넘겨주어 귀중한 예술품이 실린 기차가 폭격을 맞는 것을 방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 로즈 발랑은 주드 폼에 보관되어 있던 약탈품들이 원주인에게 반환되는 과정을 지휘했고, 나치의 예술품 약탈에 관련된 재판에 증인으로 서기도 했다.
Linz art gallery라고도 불리는 Führermuseum은 히틀러가 그의 출생지인 오스트리아 Lintz (린즈)를 위해 계획했던 상상 속의 미술관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약탈한 예술품으로 린츠에 미술관을 만들어 나치 문화의 중심지이자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기를 꿈꿨다. 그가 혐오했던 비엔나의 역사를 무색하게 만들고, 그가 흠모하던 부다페스트보다 더 아름답고 강한 도시가 탄생하기를 원했다. 그는 1950년에 완성을 목표로 계획을 세웠지만 그의 꿈은 다행스럽게도 산산조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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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는 여러 번 갔어도 주드 폼의 존재는 처음 알았다. 다음번에 파리에 가면 들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