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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golden age May 11. 2024

막시밀리아노 1세의 조각난 그림

Édouard Manet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4 작품

(이재의 글)


Sotheby's Institute of Art 대학원 과정 중에는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현장 수업이 많이 있었다. 4년 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Édouard Manet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1868> 작품에 대한 교수님 수업이 인상적이었다. 그때 남긴 소중한 메모를 바탕으로 내가 배운 것을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Franz Joseph I, 1830-1916)의 남동생으로 오스트리아의 대공이었던 Ferdinand Maximilian (페르디난트 막시밀리안, 1832-1867)은 멕시코 통치를 원했던 나폴레옹 3세의 지원을 받아 1864년에 멕시코의 꼭두각시 황제 막시밀리아노 1세 (Maximilian I of Mexico)로 즉위했다. 그러나 멕시코에는 이미 Benito Juárez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이 있었기에 황제와 대통령이 공존하는 상황이 되었고, 대통령을 지지하는 멕시코 공화파와 갈등이 발발한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 군사 지원을 철회하며 멕시코에서 발을 빼고, 궁지에 몰리게 되자 막시밀리아노 황제의 아내 Charlotte of Belgium (샤를로트)는 유럽으로 건너가 나폴레옹 3세와 교황 Pius IX (비오 9세),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결국 막시밀리아노 황제와 그의 두 장군은 1867년 5월에 멕시코의 국민주의자 및 공화국 세력에 의하여 체포되고, 다음 달 6월 19일에 처형당한다. 


나폴레옹 3세의 정치적 야망과 무능력으로 인해 희생된 막시밀리아노 1세의 죽음에 분노한 마네는 그의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을 4차례 그렸다. 그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은 대형 캔버스로 보스턴 미술관 (Museum of Fine Arts, Boston)과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고, 이후 세 번째로 그린 작은 작품은 코펜하겐 글립토테크 박물관 (Ny Carlsberg Glyptotek)에, 마지막 작품은 독일의 쿤스트할레 만하임 (Kunsthalle Mannheim)에 소장되어 있다.


이제부터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에 대한 설명이다. 이 작품은 그림이 조각이 나 있어서 볼 때마다 의아했었다.


Édouard Manet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1868> 내셔널 갤러리, 런던


(1867) 신 카를스베르크 글립토테크 박물관, 코펜하겐


작품의 주제가 극도로 참혹하기 때문에 살롱 전시회에 출품조차 할 수 없었고, 당시 정치적 사건의 파장이 프랑스의 국제적 명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이 그림의 유통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마네 생전에는 그 누구에게도 팔리지 않았고 마네의 스튜디오 한편에 그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은 점차 훼손되었고, 마네가 세상을 떠날 때 즈음에는 이미 그림의 왼쪽 부분이 손상되어 잘려나간 상태였다. 마네가 떠나고 나서 그의 가족들은 이 그림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서 판매했는데, 당시에는 큰 그림을 여러 조각으로 작게 잘라서 판매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큰 그림보다 판매하기가 쉬웠고 여러 점으로 나눠서 팔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890년대에 들어서 마네의 친구이자 화가였던 Edgar Degas (1834-1917)가 이 조각들을 수집하여 하나의 캔버스에서  다시 조립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이 조각들을 수집하기 위해서 정말로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직접 딜러들을 만나러 다녔고, 많은 컬렉터들을 발로 뛰어 찾아다니며 모은 게 지금의 네 조각이다. 드가가 세상을 떠나고 1917년 그의 컬렉션은 파리의 경매에 나왔고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이 조각들을 사들였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이 조각들은 따로따로 전시가 되었으나, 1970년대 후반에 내셔널 갤러리의 보존 (conservation) 스튜디오에서 이 조각들을 드가가 했던 것처럼 다시 하나의 캔버스에 위에서 조립하여 원래의 한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내셔널 갤러리의 입장에서도 매우 뜻깊은 작업이었다고 한다.



(1869) 쿤스트할레 만하임 (Kunsthalle Mannheim), 독일


(1867) 보스턴 미술관 (Museum of Fine Arts,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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