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 하우스로의 출근
런던의 중심가에 명품 매장이 즐비하게 늘어선 New Bond Street에 Sotheby's London 옥션 하우스가 위치해 있다. 소더비는 1744년에 설립되었고 Christie's는 1766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경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낯선 회사이긴 하다. 나는 경매의 프리뷰가 있을 때 미술관을 방문하듯이 작품을 보러 방문하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현장 경매를 지켜보기도 했다. 경매는 테마를 가지고 열렸다. 가령 실크로드 그림이라던지, 어느 가문의 소장품이라던지, 주제를 가지고 있다. 굳이 경매 프리뷰를 보러 갈 일은 없었겠지만 딸이 참여한 프로젝트이니 구경도 할 겸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방문하는 게 목적이었고, 옥션 하우스에서 경매를 준비하는 입장과 작품을 구매하는 고객의 입장을 간접 경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런던 사람들의 경매 문화를 지켜보면서 이방인으로서 신기했던 점을 몇 가지 요약해 본다.
재미있는 점은 개인이 소장품을 경매에 의뢰할 때에 한점 두 점 들고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십 점에서 수백 점, 혹은 집을 통째로, 즉 집안에 있는 가구와 소품, 심지어 벽난로와 조명까지 전부다 판매를 의뢰하기도 한다. 렘브란트, 루벤스, 르누아르의 작품을 개인이 소장하다가 경매에 나오는 게 부지기수다. 미술관에만 걸려있는 그림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겨울에 판매가 많다. 공통적인 이유로는 손주가 대학 갈 때 학비를 보조해 주기 위하여 미리 준비하는 할아버지들이 가을 즈음에 옥션 하우스를 많이 찾아오는가 보다. 요즘에는 와인의 매출이 상당한데 셀럽들이 주말마다 파티를 하는데 파티용 와인을 준비하기 위하여 경매회사에 와서 와인을 구매해 간다고 한다. 명품 가방과 주얼리의 매출판매가 급격하게 늘었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같은 현상인 것 같다.
영국의 역사가 깊고 강대국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옥션 하우스의 이야기는 정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이외에도 1796년에 설립된 Phillips과 1793년에 설립된 Bonhams도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이들 옥션 하우스는 기획력이 뛰어나서 지나가다가 우연히라도 프리뷰가 진행되고 있다면 들어가 보기를 추천한다. 옥션 하우스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현대 작가의 조각이나 조명등 폭넓은 전시를 볼 수 있다. 언젠가 내가 고객이 될 수도 있으니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이재의 스토리) 나폴레옹의 테이블
소더비 옥션 하우스에서 인턴 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에 맡았던 업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provenance (출처)가 불분명했던 앤틱 테이블의 히스토리를 조사했던 일이다. 보통 고객으로부터 앤틱 가구나 소품 판매를 의뢰받게 되면, 그 제품의 족보를 완벽하게 찾아야지만 추정가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리서치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가구의 경우에는 제작자의 서명이 없거나 혹은 가구 제조사의 명판이 여러 개 찍혀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정확한 감정을 위해서는 복잡한 리서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때 의뢰받았던 테이블에 대하여 고객에게서 전달받은 기본 정보는 거의 없었으나, 디자인을 보면서 몇 가지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우선 나폴레옹 (Napoléon Bonaparte, 1769-1821)의 소유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고, 가구 제작자였던 George Bullock (c.1777–1818)의 작품일 수도 있다는 단서를 가지고 리서치가 시작되었다. 조각에 뛰어났던 조지 블록은 나폴레옹이 1815년 10월부터 Saint Helena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었을 당시 나폴레옹의 저택 Longwood House에 들어가는 가구들을 디자인하고 제작했던 가구 장인이었다. 나는 이 테이블의 정확한 출처를 밝혀내기 위한 첫 단계로 조지 블록의 작품 중 비슷한 형태의 테이블을 전부 다 찾아서 비교했다. 조사 과정에서 조지 블록이 Longwood House를 위해 제작한 가구 드로잉과 영국 정부에 가구를 판매한 영수증에서 의뢰받은 테이블과 일치하는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나폴레옹이 죽은 지 2년 후인 1823년, 영국의 군사지휘관이자 세인트 헬레나 섬의 총독으로 나폴레옹을 감시했던 Hudson Lowe (허드슨로, 1769-1844)경이 Longwood House의 가구를 런던으로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나폴레옹을 지나치게 감시하고 조롱하며 악랄하게 대했다고 한다. 최후에 나폴레옹이 병에 들었을 때에는 영국인 의사를 영국으로 돌려보내면서까지 치료도 받지 못하게 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이 죽고 나자 그는 자기 마음대로 나폴레옹의 가구를 런던으로 가져온다. 이 가구 중 일부는 런던 Mayfair의 허드슨 로의 자택에서 약 20여 년간 사용되었고, 그가 죽은 후에는 런던의 경매회사인 Phillips와 Christie's를 통하여 판매가 되었다. 이 테이블은 아마도 의뢰인의 가문에서 그때 구매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당시에 제작된 가구들은 통상적으로 한쌍씩 제작되었다. 그러면 분명 이 테이블과 똑같은 테이블이 한 개 더 있을 거라 추측할 수 있어서 추가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그 테이블은 13년 전에 소더비에서 경매로 판매된 적이 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머지 테이블의 소재도 파악을 하게 되니 출처에 더욱 힘이 실어졌다. 아마도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13년 전에도 조사가 되었을 거다.
이미 나폴레옹이 Longwood House에서 사용했던 가구에 대한 연구 자료도 여러 건 나와 있었기에 기록들을 참고하면서 놓친 부분은 없는지 더 면밀하게 검토하였다. 그러던 중에 도서관에서 읽던 학술지에서 나폴레옹이 말년에 병석에 있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다는 기록 한 줄을 발견하고는 그 그림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도서관을 뒤져서 그 그림을 찾아냈고, 그림 속에서 우리가 조사하고 있는 그 테이블을 발견할 수 있었다. 퍼즐이 완성될 때의 기쁨이란!!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나면 이를 바탕으로 감정을 진행하고 추정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 부분은 specialist의 몫이다. 일반 귀족이 소유했던 테이블인지, 나폴레옹이 소유했던 테이블인지에 따라 추정 가는 천지차이가 된다. 의뢰받은 테이블의 히스토리를 증명하는 퍼즐을 완벽하게 맞추었기 때문에 추정 가는 예상보다 훨씬 높게 올라갔고, 우리 팀의 세일즈 실적도 덩달아 올라갔다.
새로운 앤틱 소품과 가구를 만나게 되면 어떤 숨은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을지 설레고, 경험하면 할수록 리서치 부분은 내가 즐기면서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이 되었다. 인턴과정에서 리서치 부분에서 인정받았고 얼마 후에는 정직원으로 채용되어 다시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정직원으로 출근했을 때 세일룸에 나폴레옹의 테이블이 전시되어 있었다. 의뢰받은 제품의 사진 한 장을 들고 짧으면 며칠 길게는 몇 주씩 리서치로 씨름하던 제품을 세일룸에서 실물로 마주하게 되면 그렇게 반갑고 기쁠 수가 없다. 내가 조사한 자료는 요약되어서 세일 카탈로그의 제품 설명 부분에 실리고, 전 세계의 소더비 회원들에게 우편으로 발송된다. 이 카탈로그는 발행부수가 적어서 매우 귀하게 여겨진다. 로컬 앤틱샵에서 이 카탈로그를 구하고 싶어서 안달이라고 한다. 나는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의 세일 카탈로그가 발행될 때마다 소중하게 한 권씩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