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K-Statens Museum for Kunst
SMK 덴마크 국립미술관의 기획력은 예사롭지 않았다. SMK의 소장품 중에 Henri Matisse (1869-1954)의 좋은 작품도 많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진행된 앙리 마티스의 <The Red Studio> 특별전은 내가 봐 온 전시 중 최고의 기획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전시를 주관한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와 코펜하겐 SMK 국립미술관의 큐레이터들에게 얼마나 신나는 큐레이팅이었을까. 이 전시는 2022년 5월부터 9월까지 뉴욕 현대미술관에 먼저 전시되었고, 2022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코펜하겐 SMK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었다. 이 전시를 통하여 현시대의 큐레이터의 역할, 작가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미술사에 영향을 끼친 후원자들, 그리고 작가의 생애를 함께하며 미술계 발전에 기여한 작가의 가족 등 많은 사람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전시의 대표작품인 <The Red Studio>은 1911년 작품으로 프랑스어로는 <L'Atelier Rouge>이다. 이 그림은 파리 인근의 Issy-les-Moulineaux (이시레물리노) 마을에 있던 마티스의 스튜디오 내부 모습으로, 벽과 바닥 그리고 가구까지 모두 다 빨간색으로 채워져 있다. 테이블과 의자, 시침 없는 시계, 콘솔등의 가구와 벽과 바닥에 있는 여러 점의 그림, 몇 점의 조각품, 그리고 도자기 그릇등 오브제들이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후원자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 빨간색에 대해서 설명을 남겼다. "붉은 황토색보다 조금 더 따뜻한 Venetian red입니다." 지금까지 마티스 작품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는 이 작품은 마티스의 후원자인 러시아 사업가 Sergei Shchukin (1854-1936)에게 판매하기 위하여 1911년에 그려졌으나, 세르게이 슈추킨이 인수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꾸면서 마티스가 16년 동안 작업실에서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뒤늦게 판매가 되었다. 이후에도 소유자가 몇 번 더 바뀌었고 최종적으로 1949년에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서 인수하였다. 흑백 회화도 자리잡지 않았던 시대에 빨간색을 흑백처럼 사용하다니, 마티스의 레드는 가히 혁명적인 시도였다.
전시관의 첫 번째 넓은 방에는 그림이 띄엄띄엄 몇 점 걸려있어서 휑한 느낌이었다. 사전 지식 없이 들어갔던 무지한 나는 우선 쓰윽 둘러보면서 왜 이렇게 휑하지?라고 생각했다. 도슨트도 듣지 않고 설명도 읽어보지 않고 대충 둘러보다가 소득 없이 나오는 대참사를 맞을 뻔했다. 옆에서 같이 보던 딸이 나지막이 설명해 주는데, 귀로 듣고 눈으로 보니 이게 보통 전시가 아닌 거였다. <The Red Studio> 작품 안에 묘사된 오브제들은 전부다 마티스 자신의 실제 작품을 보고 그린 거였고, 우리는 이 오브제 하나하나를 전부 한자리에 불러 모은 전시를 보고 있는거였다. 작품 속에 묘사된 그림들은 작가가 40세 정도이던 1898년부터 1911년 사이에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이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훗날 아뜰리에를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가 거의 110년 만에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재회하도록 기획 된 전시였던 거다. 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제서야 그림 속의 그림들이 한점 한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코펜하겐 SMK 컬렉션에서 3점, 뉴욕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컬렉션에서 1점, 독일 The Wallraf–Richartz Museum에서 1점, 개인소장품에서 회화 1점, 그리고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가져온 <The Red Studio>까지 총 7점의 그림이 이 전시되었다. 이 작품 속의 그림 중에서 실존하지 않아서 가져오지 못한 그림 한 점은 제일 왼쪽의 큼직한 핑크색 바탕의 캔버스에 누드를 그린 <Large Nude, 1911>인데, 미완성 작품이었기 때문에 마티스의 유언대로 사망 후에 파기되었다고 한다. 그림 속 왼쪽 위에 걸려있는 그림부터 보면 <Nude with White Scarf, 1909, SMK 소장>, <Young Sailor II, 1906,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Cyclamen, 1911, 개인소장품>, <Le Luxe II, 1907, SMK>, 바닥에 놓인 왼쪽 작은 그림은 <Corsica, The Old Mill, 1898, Wallraf-Richartz-Museum>, 그리고 아래 오른쪽 그림은 <Bathers, 1907, SMK>이다. 그리고 제일 앞쪽에 묘사된 도자기 그릇은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품이다. 다음방으로 넘어가면 마티스의 회화 작품과 소품을 시기별로 전시해서 작가의 생애와 화풍의 변화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마티스의 오랜 후원자였던 세르게이 슈추킨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제조 및 도매업을 하는 집안의 아들이었다. 당시 러시아 최고 재력가 집안의 후원을 받다니, 마티스에게는 운도 따랐나 보다. 세르게이 슈추킨 집안에는 여러 명의 미술 수집가가 있었는데 세르게이의 형제 Pyotr Shchukin (1853-1912)는 러시아 고대 예술품과 괄목할만한 인상파 걸작품을 수집했고, 또 다른 형제 Ivan Shchukin도 미술품과 책을 수집했다. 세르게이 슈추킨은 1897년 파리를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모네의 작품을 구입하였고, 이때부터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는 모네, 르누아르, 세잔, 반 고흐, 고갱, 앙리 루소, 피카소 등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수집하였고, 특히 오랜 시간 동안 마티스를 후원하였다. 세르게이는 당시 마티스가 작업한 작품 중에서 <The Red Studio>는 인물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이유로 인수하지 않았고 대신에 <The Pink Studio, 1911>를 선택했다고 한다. <The Pink Studio>는 현재 모스크바의 The National Pushkin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